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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 by you Sep 25. 2019

5시 30분

뉘우침의 시간

봉사활동을 다녀왔어요. 위치는 송도에서 한시간이나 넘는 거리인 모래내시장 근처의 어느 지역아동센터인데요.

사실 줄곧 봉사를 해오진 않았지만, 학생경력시스템에 입력할 것들이 하나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에 시작하게 됐네요.

아무렴, 책임감있게 해야할 이유가 마땅히 있어 다행이에요. 학교와 지역사회 연계프로그램으로 마련된 교양과목인지라, 얼떨결에 학교의 얼굴이 되었거든요.

사실, 제가 지역아동센터로 정한건 시간표의 편리성때문이었어요. 더 솔직하게는 결손가정, 한부모, 저소득층 아이들을 교육한다는 것이 중요한 목표는 아니었다는 말이 되겠네요.

그런데 오늘 생각이 들었어요. 미술전공자도 아닌 제가 미술을 지도한다는 것도 웃긴 사실이지만, 미술을 가르치면서도 아이들이 색을 잘 활용한다는 것이나 아이들이 생각을 담아낸걸 보고 놀랐거든요.

너무나도 사랑스러워보이는 부부가 따뜻한 노을이 진 바다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사진. 지역아동센터에 모인 아이들 중 하나가 그린 그림이라는 게 믿기지 않아서, 그림의 주인인 초등학생 3학년이라는 한 아이에게 물었어요. “이 사람들은 누구야?” 그 아이는 이렇게 답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뭐랄까, 3초동안 여러 생각들이 지나갔어요. 이 친구의 가정사, 지역아동센터로 오게된 이유, 바다에서 부모님과 같이 보낸 오래전의 기억일까 하는 추측까지. 줄곧 코드를 입혀보자면 부정적인 낙인으로 생각하려 했나봐요.

그래서 다시 생각하고 말했어요. “그렇구나, 너 근데 색깔을 너무 잘 쓴다. 노을도 그렇고, 따뜻한 태양이 가까운거 보니까 여기는 엄청 따뜻해보여. 하트도 그렇고, 그치.” 그리고는 들려오는 낯선 사람의 말에 타협하려는 눈빛과 일그러지지 않기위해 어색하게 지어내는 아이의 표정을 보니, 제입은 자동으로 이런 말이 나왔어요. “너무너무 잘했어,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다음주에 또 볼게요,우리.” 저는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1분도 안되는 시간 동안, 초등학교 3학년 꼬맹이와 나눈 잠깐의 대화가 이렇게 뉘우치게 할 수 있다는게, 이렇게 머릿속을 울린다는게 말이에요. 보통의 선입견이라고 합리화하려던 편견의 충격이, 보통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부딪히는 바람에 더 강하게 잔상이 남고 있었어요.

그리고 순간 또 생각이 이어졌어요. 아이들이 이 곳을 오는 이유는 대부분 다 비슷한 이유겠지만, 저 같은 사람들도 이 곳에 오면서 드는 생각도 다 저와 비슷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남은 지도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있었지만, 머릿속 생각의 전환과 제 유년의 회상으로 가득차서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더 늦추고 있다는걸 깨달을때쯤, 실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병훈쌤, 오늘은 내일 일정 때문에, 일찍 끝낼게요!” 생각보다 이른 시간에 그곳을 나오는 계단을 걸어가면서 뭔가 모르게 몽글거리고 뜨거운 것이 가득찬 마음이 가볍진 않다는게 느껴졌어요. 터벅터벅 무거운 한걸음마다 제 유년의 기록이 흘러가고, 다른 한걸음마다 오늘이 스쳤어요.

노을이 평소와는 다른 색으로 그을린 모습을 보면서, 좀처럼 파란불이 켜지지않는 횡단보도의 신호를 기다리면서, 저는 결론을 정했어요.

요즘 제 삶은 많은 생각들로 가득 차서 무겁지만, 매주 화요일 5시 30분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가벼워야만 할 것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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