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화 열등감을 마주하는 일

개인심리학으로 보는 열등감의 극복과 재해석

by 유다월

대학 시절, 처음으로 개인심리학을 접했을 때 알프레트 아들러라는 인물에 대해 깊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의 이론에서 강하게 받은 인상은, 인간이 꾸준히 열등감을 극복하고 더 나은 목표를 추구하며, 미래에 대한 기대를 품고 능동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이 이론이 지금 우리 사회 구성원들에게도 여전히 통할 수 있을까?'
'개인의 노력만으로 성공과 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낙관적 인간관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일까?'

란 의문도 머리를 스쳐갔다.


아들러가 살았던 시대는 지금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보다 직접적으로 보상받을 수 있었던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오늘날은 인공지능 시대에 AI와도 밥그릇을 놓고 싸워야 할 구조적 제약이 훨씬 복잡하고 깊어졌다.
또한 같은 열등감을 품더라도,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개인마다 너무나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흐르며 나는 아들러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들러는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여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던 시기였고, 그는 자신의 유대인이라는 민족성도 숨기며 살아야 했다.
또한 어릴 적 앓은 구루병으로 인해 네 살이 되어서야 걸을 수 있었으며, 외모 콤플렉스 또한 깊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경험들은 아마도 그가 살아가며 끊임없이 극복하고자 했던 개인적 과제였을 것이며, 동시에 그의 이론을 이끌어낸 내적 동력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러의 이론은 열등감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대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삶의 방향성을 발견하도록 돕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인의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어떻게 성장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통찰.

바로 그 지점에서,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은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강조했던 것은 단순한 의지나 경쟁이 아니고, 아들러 심리학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나는 어떤 인생의 과제를 가지고 살아가는가?',

'그 내 인생의 과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어떤 열등감을 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어떤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은 사람일까.

돌이켜보면, 나는 학창 시절 내내 학업 성적에 대한 강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왔다.

특히 고3 시절에는 학업 문제로 인해 학교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진로에 대한 충분한 탐색도 없이 쫓기듯 어문학부에 진학하게 되었다.

그 시절의 나는 외모와 신체 변화, 그리고 감정 기복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청소년기 특유의 불안정성을 충분히 수용하지 못한 채, 어느새 어른이 되어 있었다.


그 불안정한 자아를 잘 다루지도 못한 채 대학생활을 시작했고, 세상이 조금씩 넓어지며 더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서, 나는 점점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는 습관에 빠지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스쳐 지나가는 표정, SNS에 올라온 평범한 일상조차도 나의 부족함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고, 나는 점점 작아지고, 조용히 움츠러들었다.


꽃 피는 나이 스무 살이라던데, 그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한다던 시기에 왜 하필 여드름이 갑작스레 심하게 올라왔는지 덕분에 피부는 망가졌고, 나는 점점 얼굴을 들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런 나는 매 순간 열등감을 극복하고 싶었고, 그런 내 모습이 싫어서 끊임없이 무언갈 하게 되었다.
1년의 휴학 후 상담학을 전공하겠다고 결심했고, 전과와 복수전공을 병행하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작아지는 나 자신을 견디지 못해 대외활동, 공모전, 자격증 취득 등 다양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이 단순한 스펙 쌓기가 아니라, 스스로를 회복하기 위한 과정이자, 내가 좋아하고 원했던 일들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수년이 지나면서 그 불안정하고 안개 같던 시기들이 조금씩 걷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문득 돌아보니, 나는 생각보다 정말 많은 것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과거의 나처럼 불안정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청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사람이 되었고, 그들 앞에서 나의 경험을 전하는 강사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이 되었고, 오랫동안 품어왔던 글쓰기에 대한 열정은 결국 나를 작가라는 이름 앞으로 이끌어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상담학을 바탕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함께 걸어가는 상담사로 살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많은 시간 동안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날들을 보냈다.

아무리 시간이 흐르고, 조금 더 어른이 되었다 해도 사람은 본래 연약한 존재이기에,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지 열등감이라는 감정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이제는 삶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이 감정 앞에서, 열등감을 부끄럽게 여기기보다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아들러가 말했듯이, 말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가지고 태어났는지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이다.
It is not what one is born with, but how one uses it that matters
- 알프레트 아들러 Alfred Adler


열등감은 결코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성장의 출발점이다. 그 감정을 직면하고, 그것을 극복해 내려는 삶의 태도를 살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그래야 나의 열등감에도 외면하지 않고 타인의 열등감에도 따뜻하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테니까.

오늘도, 이렇게 나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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