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화 나는 언젠가 끝날 삶을 살고 있었다.

실존주의 상담을 통해 이야기하는 죽음에 대한 자각과 삶의 유한성

by 유다월
"조직 모양이 좀 좋지 않아 보이네요. 큰 병원에 가서 정밀검사 한 번 받아보셔야겠어요."

이런 말을 들은 시기는, 내가 삶에서 운동을 처음 시작하면서 정말 열심히 하던 때였다.

식단도 병행했고, 유산도 운동도 꾸준히 했다. 몸에 좋은 단백질 위주 식단도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

감량도 순조롭게 이어졌고, 거울 속 내 모습이 점점 가벼워지는 걸 느끼던 즈음이었다.

그저 어느 날 문득, 목 넘김이 조금 불편했다.

감기 기운도 없었고, 큰 통증도 없었지만 묘하게 이물감이 느껴졌다.

별일 아닐 거란 생각에 가볍게 동네 병원을 찾았고, 초음파 검사를 받은 뒤 의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갑상선에 생긴 결절의 조직 모양이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처음이었다. 머릿속을 스쳐가듯, 죽음이라는 단어를 또렷하게 떠올린 것은.

강렬하게 그 말은 내 안에서 죽음의 의미를 체감하게 해 주었다.


결국 조직검사 결과는 양성 결절로 판명 났고, 절개 없이 제거도 하게 되었지만 정기적인 추적 관찰이 필요하다는 소견이 붙었다. 어찌 보면 다행이며 흔한 일이었다. 누구나 한두 번쯤 겪을 수 있는 일이라고도 했다.

그렇다 해도, 그날 이후로 나는 뭔가 제대로 죽음을 자각했던 것 같다.




실존치료에서 말하는 '죽음의 자각'은 삶의 전환점이다.

죽음을 인식하는 순간, 사람은 삶의 유한성을 마주하게 되고, 그 유한성은 곧 선택의 책임, 그리고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는 존재적 요구와 직면하게 된다.


오스트리아 신경학자이자 실존주의 심리학자 빅터 프랭클은 나치 수용소라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도 인간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걸 직접 체험하며 '의미치료(logotherapy)'를 정립했다.

그는 유대인이자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로서 그가 진짜로 직면했던 죽음들을 통해 삶의 로고스(의미, logos)를 찾고 실제 임상에 적용했던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저서 「죽음의 수용소에서」에서 이러한 말을 남겼다.

“인간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자유가 있다.”


프랭클의 의미치료는 인간 존재에 대한 세 가지 근본 전제를 전제로 한다.

첫째, 인간은 어떤 조건 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존재다.

심지어 고통, 박탈, 죽음 앞에서도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으며, 이는 생존 여부와는 별개의 차원이다.

둘째, 인간은 의미에 도달하려는 의지를 갖고 태어난다.

프랭클은 이를 '의미에의 의지(Will to Meaning)'라 불렀고 이 의지가 좌절될 때, 인간은 허무감과 실존적 공허, 무기력 속에 빠져든다.

셋째, 의미를 찾을 자유는 언제나 개인에게 남아 있다.

환경은 선택할 수 없을지라도, 그 환경에 어떤 태도로 반응할지는 오직 자신만이 결정할 수 있다.

결국, 죽음과 마주하는 그 순간은 삶의 끝이 아니라, 의미를 다시 묻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그날 내가 죽음을 떠올린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삶이 나에게 묻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상담사로서, 실존치료가 이렇게 기능한다는 것에 대한 깊은 울림까지 느꼈다.

그때가, 내가 비로소 삶을 제대로 마주하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였다.


사실 이전까지 나는, 죽음은 ‘언젠가의 일이지’라고만 단편적으로 생각하거나 ‘혹시라도’라는 막연한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개념으로 여겼던 사람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제대로 살아야 할 이유들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진정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이 아니라서 그토록 괴로워했던 것인지를 가려보기 시작했다.


그 고민의 연장선에서 나는 내가 오래도록 버텨온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결심했고,

무의식적으로 짊어지고 있던 가족 내 역할의 무게도 조금은 내려놓게 되었다.

그리고 나라는 사람을 깊이 이해해 주는 소수의 사람들을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다시 설계했다.


그렇게 그날의 사건은 단지 진단 하나로 끝나지 않았다. 삶을 변화하는 용기가 되어주었다.

물론, 그 용기를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 그 과정은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 마저도 내 선택에 책임을 지며 나는 진정으로 나를 중심에 놓고 삶을 선택할 수 있게 되었다.




실존상담은 단지 감정을 위로하는 방식이 아니다. 선택마저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으로 존재를 설계해 주는 상담기법이다.

실존치료는 말한다. 죽음을 떠올릴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을 진지하게 설계할 수 있고 자유롭게 살기 위해서야말로 우리는 스스로를 불편한 질문 앞에 세워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겪은 건강 이상은, 어쩌면 작은 해프닝일 수도 있고, 정말 복일 수도 있다. 내 몸의 이상징후를 빠르게 발견해서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것은 분명 나를 멈춰 세웠고, 그 멈춤 덕분에 나는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


그리고 그 방향은 누군가의 기준이나 과거의 계획이 아니라, 지금의 나 자신이 원하는 삶이었다.


죽음은 여전히 무섭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을 피하지 않고,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때 삶은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을 믿는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와 같은 누군가에게 내가 느꼈던 이 울림이 닿을 수 있도록


한 줄씩 글을 적고,

한 발짝씩 더 나를 외면하지 않고 마주하는 중이다.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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