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화 내 마음이 잠드는 법을 배운 밤들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보는 완벽주의와 불면, 그리고 점진적 행동 변화

by 유다월

한때 나는 MBTI 성향에서 P형으로 분류될 정도로 자유롭고 유연한 행동양식을 지닌 사람이었다.
성향상 철저하게 세운 계획보다는 그때그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즉흥성과 창의성 속에서 나름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삶이 더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고, 특히 복잡한 사업 예산과 회계, 행정 업무까지 아우르는 프로그램 운영자가 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사회 초년생이던 나는 ‘실수해서는 안 된다’는 압박감을 등에 지고, 실무 하나하나를 완벽히 해내야 한다는 강한 책임감 아래 움직이기 시작했다.
수십 명을 인솔해야 하는 자리에서는 작은 실수 하나도 누군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더 철저함을 스스로에게 요구했고, 여유롭던 태도는 점차 경직되고 계획 중심적인 행동양식으로 굳어져 갔다.



그렇게 완벽을 향해 달리던 어느 날부터였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으려는 내 마음은 점점 강박에 가까워졌고, 수면 전 극심한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에서는 불면증과 신경성 증상을 진단받았다.

처방받은 안정제를 복용하면 잠들 수는 있었지만, 약물 부작용으로 체중이 점점 늘었고, 약을 끊으려 하면 다시 불면과 불안이 되살아났다.

그 모든 원인의 뿌리에는 결국, 완벽해야 한다는 불안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선 내 생각의 흐름뿐만 아니라 습관화된 행동부터 바꿔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다.





행동주의 심리학으로 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행동주의에서는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선택하는 행동 패턴을 바꾸면, 그에 따라 감정과 신체 반응, 인지 패턴까지 변화될 수 있다고 본다.


이 원리를 바탕으로, 수면 장애를 이겨내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 변화부터 시도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수면 어플을 활용한 심호흡 훈련과 이완 반응 유도였다.
긴장된 몸을 천천히 이완시키고, 불안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짧은 명상을 매일 잠들기 전 실천했다.


그리고 핸드폰을 침대 밖,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두려 노력했다. 손에 잡고 있으면 계속 불안감에 글을 쓰거나 생각이 끝나지 않아 밤을 새우는 일이 허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행동주의 상담에서 말하듯, 불안을 회피하지 않고 노출시키는 것이 불안을 약화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길이라는 걸 알기에 그 불안함을 조금씩 견디는 연습을 시작했다.


행동주의에서 활용하는 체계적 둔감법의 일환처럼 말이다.

불안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 많이 쓰이는 이 체계적 둔감법과 점진적 노출의 원리를 설명하자면,

불안 자극에 점차적으로 노출되면서 동시에 이완 반응을 학습하는 과정을 말한다.


예를 들어, 수면에 대한 불안이 심한 사람은 처음부터 약 없이 잠들려고 애쓰기보다는

"불 끄고 누워 있기" → "자기 전 심호흡 3분 실천하기" → "스마트폰 없이 잠드는 연습하기"

처럼 불안을 덜 자극하는 수준의 과제부터 시작해, 점차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가는 과정을 밟는다. 불안을 유발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긴장을 풀 수 있고, 감정을 다룰 수 있다는 이러한 경험을 학습하여 그렇게 점차, 우리 몸과 마음은 더 이상 그 상황을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게 된다.




처음에는 무조건 스스로를 자책하고 오히려 더 극한으로 몰려 강하게 압박하며 병을 키워가기도 했었다.

그렇게 시들시들 마른풀처럼 나는 아파오기만 했다.

하지만 5년이 넘도록 이 연습을 지속한 지금, 나는 완벽하지 않지만 이제는 그런 나를 조금은 이해하고 조절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이제 나는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전보다 조금 더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불안을 마주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는 않지만, 최소한 이제는 그 불안에 휘둘리지 않고 조금씩 함께 걸어갈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변화는 단번에 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몸은 매일의 행동을 기억하고 반응한다. 그래서 하루 한 걸음씩이라도 편안한 하루를 위한 행동을 연습하다 보면, 그 작은 실천들이 언젠가 깊고 단단한 회복의 길로 이어진다는 것을 나는 믿게 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 모두는 삶 앞에서 충분히 노력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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