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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중독이 되어 살아가는 여인

by 금옥

처음 그 여인의 집을 찾아갔을 때, 그녀에게 한마디라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침묵이 목을 조여 왔습니다. 여인은 전쟁에서 패배한 상이용사처럼 한쪽 눈을 붕대로 감고 있었습니다. 입술에도 반창고가 더덕더덕 붙어 있었습니다. 옷차림도 가관이었습니다. 떨어진 옷을 꿰맨 듯 찢어지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은지, 자꾸 술을 마시기 시작했습니다. 여인은 소파 끝자락으로 술병을 들고 자리를 옮기며 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그녀의 첫인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올라가기 힘든 언덕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이란 원래 오르락내리락하는 언덕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너무 힘든 언덕을 오르다 보면 숨이 차고, 그 언덕이 끝없이 이어지면 짜증이 나고, 나중에는 분노가 치밀어 오를 수도 있습니다. 온몸이 분노를 이기지 못할 즈음이 되면 결국 술에 의존하곤 합니다.


그녀 역시 그랬다고 말했습니다. 말짱한 정신으로는 용기가 나지 않아 말을 못 하고, 술에 의존해 분노를 토해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모두 떠나고, 그 자리에 술들이 기쁜 미소로 자신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소주, 막걸리, 맥주들이 서로 자신을 반겨 어디에 눈길을 주어야 할지 고민도 했다고 합니다. 한 병을 다 마셔도 그녀는 계속 목이 말랐습니다. 결국 그녀는 알코올 중독 진단을 받았습니다. 알코올 중독이 되어 살아가는 이 여인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배신감을 이기기 위해 술을 마셨습니다.


저는 여인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술 하고 친구 하지 말고 나하고 친구 하자.”

“당신이 나 같은 사람하고 친구? 웃기네.”


여인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비아냥거렸습니다. 화장실에 가려다 소파를 짚고 일어서려다 바닥에 주저앉았고, 부축해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앉은자리에서 소변 실수를 했습니다. 저는 소리 없이 뒷정리를 해주었습니다. 여인이 술이 깰 때까지 옆에서 술주정을 다 받아주며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여인이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술에서 깬 맑은 정신의 여인은 자신의 사정을 토해냈습니다. 남편과의 이별, 사랑하는 자녀들까지 자신을 떠나갔다고 말했습니다. 여인은 부동산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고, 남편은 다니던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했습니다. 남편은 퇴직 후 집에서 게임만 하고,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질렀습니다.


“돈 좀 주라. 내놓지 않으면 우리는 끝장이야.”
“내가 주식해서 멋지게 살게 해 주마.”


남편은 허황한 공상만 했습니다. 끝내 주식에 투자해 돈을 몽땅 날려버렸습니다. 은행에서 독촉장이 계속 날아오자 잠실에 있던 집을 팔아야 했습니다.


고3, 대학교 2학년 딸 두 명은 고시원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부는 지하방으로 이사했습니다. 지하방에 살면서도 남편은 여전히 허황된 공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여보, 잠실 집보다 더 큰 집을 사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 나만 믿어.”

하면서 여인에게 계속 돈을 요구했습니다.


여인은 부동산 사업을 청산했습니다. 사무실을 정리한 돈을 남편에게 모두 주며 말했습니다.

“우리, 이혼합시다.”


여인은 끝내 이혼했습니다. 딸 두 명은 고시원에서 엄마가 찾지 못하는 곳으로 행적을 감추었고, 전화도 결번이라 그 후로 연락이 두절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가족들이 여인 곁을 모두 떠나버리자, 여인은 극단적인 행동을 했고 구급차에 실려 갔지만 번번이 죽지 못했습니다.


“술이 있으니 나를 잠들게 하고, 분노를 멈추게 하고, 생각을 멈추게 하니 술에 취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내가 술에 취해 자고 잊다 보면 내 생의 빛이 꺼지지 않겠습니까?”


여인은 이야기 도중 울분을 폭포처럼 쏟아냈습니다. 다음 날, 술을 사러 가는 여인을 붙잡아 이상한 복지센터로 데리고 왔습니다. 커피를 타서 주었고, 점심도 함께했습니다. 여인과 나이가 같은 희수 요양보호사를 소개했습니다. 여인도 반갑다며 희수 요양보호사에게 악수를 청했습니다. 나는 여인과 요양보호사를 태우고 드라이브를 시켜주며 산책도 함께했습니다.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신앙생활은 해보셨나요?”

“해봤어요. 다 필요 없어요.”

여인은 그런 말 하지 말라며 고개를 돌렸습니다.

‘신앙생활이라도 하면 좋을 텐데….’


희수 요양보호사와 나는 한 달 동안 여인이 술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밤낮으로 그녀를 방문했습니다. 식사도 거르지 않도록 챙겨주었습니다.


여인은 우리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 술 안 마시고 미용 기술 배워서 봉사하면서 살래요.”

그날로 여인은 미용학원에 등록했습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상한 복지센터로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우리는 손뼉을 치며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딸들이 있는 곳을 수소문 끝에 알아냈습니다. 하지만 딸들은 엄마를 만나는 것도, 전화하는 것도 거절했습니다. 나는 딸들에게 사정을 했지만, 그들은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연락처를 엄마에게 알려주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며칠 후 택배가 왔습니다. 보낸 사람 주소는 없었습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보약과 화장품이 들어 있었습니다. 딸들이 보낸 상자였습니다. 여인은 상자에 들어있는 물건을 보자마자 바로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보약과 화장품은 그녀가 오래전부터 써오던 물건이었습니다.


여인은 그것을 던지며 소리쳤습니다.

“다 필요 없어요! 술 좀 마시게 해 줘요!”

그녀는 몸부림치며 우리와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온 힘을 다 쓴 여인은 결국 주저앉아 벽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오른손으로는 소파 등받이에 달린 실을 한 올 한 올 잡아 뜯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사님, 아이들이 아무 사고 없이 잘 있는 것만 알아도 얼마나 다행입니까? 아이들이 지금은 어려서 판단력이 없어서 그래요. 여사님 건강 챙기시고, 딸들이 보내준 화장품으로 예쁘게 하고, 미용 배우고 봉사하면서 지내다 보면 언젠가는 꼭 아이들이 찾아올 겁니다. 기다려요, 꼭 올 거예요.”

“됐어요. 됐다니까요.”

“알았어요. 그럼 너무 힘들잖아요. 자, 누워요.”


나는 여인에게 등받이 베개를 해주며 눕혔습니다.

여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양쪽 눈 끝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여사님, 잠깐 눈 좀 붙이세요.”


여인의 눈에서는 여전히 수돗물을 틀어놓은 듯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때 여인은 갑자기 일어나더니 나를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나는 여인의 뒤를 따라 뛰었습니다. 그녀는 슈퍼로 들어가 소주 세 병을 들고 계산대로 향했습니다. 나는 계산대 앞에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습니다. 소주 세 병을 든 그녀는 비 맞은 암탉처럼 어깨에 힘이 빠져 터벅터벅 걸었습니다.


나도 그 뒤를 한 발 한 발 따라갔습니다.

자동차 옆에 도착했을 때, 나는 여인에게 말했습니다.

“여사님, 나랑 D공원 가서 한잔합시다. 자, 차에 타세요.”


여인은 차에 타지 않겠다며 버텼지만, 결국 설득해 함께 갔습니다. 공원 둘레길을 30분 넘게 침묵 속에 걸었습니다. 약수터에 데려가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떠주었습니다.

여인은 벌컥벌컥 들이켰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않은 그녀의 배 속에서 물 내려가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녀를 데리고 추어탕집으로 갔습니다. 식사 내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눈빛으로만 이야기했습니다.


‘많이 드세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한 것이 가장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철없었고, 경솔했고, 생각이 짧았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없는 자식으로 성장하고 있는 딸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그 여인은 세상을 혼자 사는 것이 두렵고 외로워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알코올 중독 여인 곁에는 항상 우리가 있을 것입니다. 그녀가 건강한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공감하고 이해하며, 곁에서 함께할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한순간 공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 단 한 사람이라도 곁에 있어 준다면, 유혹하는 술과도 멀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어른이지만, 어느 순간엔 누군가의 돌봄이 필요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 돌봄이 어른에 의한 돌봄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요. 그녀 곁에서 그녀에게 좋은 에너지를 주는 좋은 어른들과 친구들이 많기를 희망해 봅니다.


*메인화면 : pinte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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