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여 년 전, 나는 27살에 노처녀로 시집을 왔다.
결혼한 후 바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시부모님들은 노산이라 말씀하시며 며느리 나이가 너무 많아 아기를 낳지 못할 것이라고 한숨을 쉬셨다. 어르신들 이야기에 나도 아이를 가지는 것을 포기하게 되었다.
어느 여름날이었다. 뱃속에서 지릿지릿 통증이 올라왔다. 가슴 밑이 아프고 살이 찌기 시작했다. 배도 볼록하게 불러왔고 죽을병에 걸린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는 지금과 다르게 젊은 사람들도 알지 못하는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의 어머니는 따뜻했지만 한편으로 자식에게는 다소 극성스러우신 편이었다. 귀한 딸이 아픈 것 같다는 것을 짐작한 친정엄마는 나를 끌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원장님께 물었다.
“신상님, 우리 애가 많이 아픈가유?”
죽상이 되어 앉아 있는 어머니와 나를 보더니 병원원장님은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말씀하셨다.
“임신 7개월입니다”
원장님께서는 임신 7개월이라고 하셨지만 당시 그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시부모님과 친정부모님은 내가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아이를 낳아보지 않았던 내가 보기에 부모님들의 기쁨에 찬 반응은 유난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남편 역시 아빠가 된다는 이야기에 벅찬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뚝뚝하던 남편은 퇴근하면 내 배를 어루만지고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곧 만나게 될 아이를 무척이나 기다리고 기다렸다. 이게 무슨 기분인지 알 수 없는 나의 마음과 다르게 아기는 뱃속에서 무럭무럭 자라 열 달을 채우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왜 그렇게 부모님들이 기뻐하셨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배 안에서 나온 아이는 보물처럼 빛이 났고, 온 세상에 있는 복을 나 혼자 다 받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기분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것이었다.
‘아가야 고맙다. 정말 정말 고맙다’.
나는 세상에 나온 아기를 머리에서 발 끝까지 보고 또 바라보았다. 아기만이 가지고 있는 그 신비하고 빛나는 눈동자들이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았다. 내가 아기를 계속 바라보고 웃자 아기도 웃기 시작했다.
“ 삐죽삐죽 울려다 쌩긋 쌩긋”
아기의 웃는 모습은 마술과 같았다. 아이한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천사 같은 아이에게 두 명의 동생들이 생겼다. 삼 남매가 3살, 4살, 6살이 되었고, 천사 같았던 아기들은 자기주장이 강한 하나의 인격체로 자라났다. 첫째 아이도 동생들이 생기자 마냥 세상에 막 나온 천사 같은 아기로 머물지 않았다. 첫째도 동생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다투고, 동생들 역시 이에 맞서 투닥투닥 다투며 놀았다. 그렇다고 매번 아이들을 호되게 야단칠 수 없었다. 아이들은 하늘이 나에게 보낸 귀한 선물과도 같았다.
그날도 집은 우당탕탕 삼 남매 덕분에 전쟁터 같았다.
도망자와 잡는 자, 잡히고 우는 자, 그리고 방관자의 역할을 맡은 아이들이 있었다. 무슨 전쟁이라도 일어난 듯 삼 남매의 소란으로 아침이 시작되었다. 다다다다 쫓아오는 오빠를 피해 막내 소연이가 전력을 다해 뛰고 있었다. 결국 막내 소연이는 울면서 내 치맛자락에 매달리며 말했다.
“엄~~ 마 오빠가 때렸어요~~~ 앙앙앙”
평소에는 누구보다 의젓하고 천사 같은 첫째 종호가 동생 말을 듣더니 더 화가 났나 보다. 으르렁 거리는 사자처럼 포효하듯 외쳤다.
“엄마 소연이가 맞을 짓을 해서 때렸어요”
이제 제법 오빠티가 나는 종호는 자신이 소연이에게 꿀밤을 준 것은 소연이가 자초한 일이라고 조곤조곤 설명했다. 자신은 꽤나 억울한 상황이라는 말과 함께.
‘요 녀석 봐라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 봐라.’
아이들은 서로 투닥거리면서 자라는데 지켜보다 보면 그런 상황들을 맞닥뜨리면서 아이들은 자라나고 있었다. 나는 종호 이야기를 다 듣고는 작은 방 구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는 현정이를 불렀다..
“김현정 너도 이리 와서 한마디 해야지”
“엄마 저는 책만 보고 있었어요”
현정이는 오빠와 동생이 전쟁을 벌이는 중에도 책만 보고 있었는데 자신을 부르는 것이 영 못마땅한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나는 다시 현정이를 불렀다. 집에 아이들이 셋이 있다 보니 혼나도 같이 혼나고 칭찬을 받아도 같이 칭찬을 받는다고 정한 우리 집 규칙 때문이었다.
“김현정, 그래도 한마디 해야지 오빠하고 동생하고 우당탕탕 뛰어다녀서 책 읽는데 방해가 되었다던가 아니면 또 뭐가 있더라... 이 상황에 대한 생각을 말해주면 좋겠네.”
현정이는 엄마가 하는 말씀을 다 듣고는 말했다.
“엄마 저는 괜찮았는데요. 아시겠지만 다른 친구들도 오빠하고 동생들하고 잘 싸워요.”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것인데 웬 호들갑이냐는 현정이에 말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싸움이 일어나면 바로잡고 가야 하는 것이 또 우리 집의 규칙이자 나의 교육철학이었다.
“다른 집 애들도 다 싸우겠지, 하지만 엄마가 보기에 오늘 너희들 3명 다 잘못된 것이 있어 지금부터 종호부터 안방으로 따라 들어와”
한 명씩 안방으로 들어오라는 이야기에 종호가 눈을 크게 떴다.
“엄마 왜요?”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들어보려고”
종호는 나를 따라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종호에게 말했다.
“김종호 너는 오빠야 그리고 어떤 일이 있어도 때리는 것은 나쁜 방법이야 앞으로는 동생뿐만 아니라 손 찍검은 절대 하면 안 돼 알았지”
“네”
“그래 종호 뭐가 속상했는지 들어보자 말해봐”
“엄마, 내가 로봇을 거의 만들었는데 소연이가 블록을 집어가서 로봇 만드는 것을 방해했어요. 속상한 마음에 그랬어요”
“그래 속상했겠구나 로봇을 다 만들었는데 블록을 소연이가 집어가서 속상했겠네”
“엄마 맞아요 정말 속상했어요”
“그래 엄마라도 속상했을 것 같아 다 된 밥에 코 흘려서 못 먹게 된 밥처럼 말이지”
“맞아요 로봇 만들기 얼마나 어려운데요. 그래서 때렸어요 죄송해요”
“그래. 종호가 속상한 것은 엄마도 알겠어 하지만 앞으로 약한 동생을 때리기 전에 멋진 오빠답게 말로 마음을 전해봐 알았지, 자 이것 받아”
“이게 뭐예요?”
“곰돌이 반창고야. 동생이 오빠한테 맞고 아프다고 했잖아. 그러니 손등에다 2개 붙여주면서 미안하다고 해 알았지!”
“네, 알았어요”
종호는 반찬고 두 개를 들고 거실로 나갔다. 종호는 눈물범벅이 된 소연이 손등에 곰돌이 반창고를 두 개 붙여주면서 말했다.
“소연아, 오빠가 미안해”
오빠가 미안하다고 하자 소연이는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금세 히히 웃으며 안방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엄마 오빠가 미안하다고 했어요. 반창고도 붙여주었어요”
“그래 소연이 지금 기분이 어때?”
“좋아요”
“소연아, 오빠가 소중하게 만든 것은 오빠 마음과 같아. 남의 물건을 만질 때는 반드시 허락을 구해야 해. 그래야 소연이 물건도 소중하게 보호받을 수 있단다. 소연이도 오빠한테 사과해야지 미안하다고. 너도 오빠 이마에 곰돌이 반창고 붙어줘. 그리고 소연이는 엄마에게 이르기 전에 먼저 대화로 해결해 보자. 엄마에게 무조건 고자질하기보다 오빠가 왜 화가 났을까?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어 소연이 그렇게 할 수 있지?”
“네, 다음부터는 안 이를게요”
“그래 오빠한테 반창고 붙여주고 현정이 언니 엄마가 오라고 전해줘”
소연이는 문 앞에 서있는 오빠 이마에 곰돌이 반창고를 두 개나 붙여주면서 말했다.
“오빠 미안해. 히히히. 오빠 얼굴이 이상해 웃겨. 언니, 오빠 얼굴 웃기지”
“자꾸 웃으면 나도 니 손등에 붙여준 것 이마에 붙여준다. 웃지 마. 한 번만 더 웃으면 이마에 붙일 거야. 알았지”
“메롱. 우당탕탕. 언니, 엄마가 안방으로 들어오랬어”
문 앞에 엎드려 책을 읽던 현정이는 한 손에 책을 들고 안방으로 들어와서 말했다.
“엄마 왜요?”
“너는 동생을 잘 보살펴 주었잖아. 앞으로 동생 잘 돌봐주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호떡 해줄게. 알았지?”
”네, 엄마말씀대로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
”김종호, 김소연 김현정 서로 안아줘. “
우리 삼 남매는 다툼이 있었거나, 서로 싸우고 난 후에는 서로를 꼭 안아주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 규칙이 긍정적인 결과를 주는 때도 있었으나, 안고 있다가 다시 감정이 불붙어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그래도 스킨십은 흥분된 감정을 누그러뜨리는데 좋은 효과가 있기에 우리 집 규칙으로 정했다.
서로 꼭 안아주기를 한 아이들은 모두 기분이 좋아졌는지 신나게 웃기 시작했다.
”엄마~“
`히히 하하 헤헤~~~“
”사랑해요. “
예전에 우리와 10년 넘게 옆집으로 살았던 가족이 있었다.
어느 날 나에게 신기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어쩜 10년을 봤는데 애들한테 소리 한번 안 지르세요? “
그때가 아이들이 중학교에 들어갈 즈음이었다. 그분의 말에 내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소리 한번 안 지르고 살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아이 셋을 키우면서 화가 나지 않는 경우가 왜 없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그렇게 아이들과 지낼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렇다.
우선 나에게 아이들은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은 존재였다. 또 좋은 사랑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은 지금은 어떠할지 모르더라도 결국은 자신들이 받은 긍정의 씨앗으로 열매를 맺고 잘 자라난다는 사실을 얼핏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친정어머니 역시 나를 그렇게 귀하게 키우셨고, 그 토양에서 내 마음껏 자라날 수 있었으니까.
어쩌면 화내지 않는 엄마가 되는 비법이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온 고귀한 이유에 대해 감사하는 것, 아이들이 내 욕심과 다르게 행동할지라도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읽어주고 그 꿈을 응원해 주는 것이 아닐까.
물론 쉽지 않겠지만, 기억한다면 귀한 인연으로 만난 아이들과 이번 생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차곡차곡 쌓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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