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고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이었다. 전화가 울렸다.
“따르릉따르릉따르릉”
전화가 서너 번 울렸다. 고무장갑을 급히 벗어놓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전화를 하도 안 받으셔서 끊으려 했는데. 여기 정읍입니다. 김형우 할아버지께서 새벽에 돌아가셨습니다. 부탁받고 대신 연락드립니다. 이만 끊습니다.”
청년은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을 전한 후, 급한지 전화를 뚝 끊어버렸다. 시골로 내려가야 했기에 종호, 현정, 소연이를 찾았다. 그런데 종호가 보이지 않았다. 골목을 뛰어다니며 종호 친구들한테 종호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기이하게도 종호를 본 사람이 없었다. 헐레벌떡 뛰어서 종호가 자주 가는 오락실로 갔다. 종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슬픔을 넘어서는 당혹감에 휩싸였다.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들 종호 때문이었다. 버스 시간이 다가왔고, 다급한 마음에 단골 부동산 사장님께 달려갔다.
“사장님, 시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급히 정읍에 가야 하는데 종호를 못 찾았어요. 혹시 종호 보시거든 저희 올 때까지 좀 돌봐주실 수 있을까요? 부탁드립니다.”
사장님은 위로의 말과 함께 말씀하셨다.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세요”
정읍으로 내려가고 있었지만 내 마음은 서울 집에 머물러 있었다.
'어떻게든 찾아서 같이 왔어야 했는데…’
비어 있는 버스 좌석을 볼 때마다 자책이 밀려왔다. 아니나 다를까 정읍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시어머니가 날이 선 목소리로 물었다.
“종호는?”
죄송함에 고개를 숙이고 갈라진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어머니의 질책이었다.
“어미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어떻게라도 찾아와야지!!! 어미 너는 어쩜 그렇게 생각이 짧니.”
종호가 어릴 적 항상 종호 손을 잡고 다니던 할아버지였다. 시아버지는 종호를 누구보다 끔찍하게 아끼셨다. 시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손자가 배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되어 돌아왔다. 슬픔과 자책으로 뒤엉킨 장례식장에서 내 마음이 갈 곳 몰라 방황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이 짧게 진동했다. 부동산 사장님 문자였다.
‘종호 어머니, 종호가 6시 10분쯤 왔어요. 지금 우리 집에서 저녁 먹고 있습니다. 오락실에 다녀왔다네요. 걱정하지 마시고 일 잘 마무리하고 오세요.’
팽팽하게 당겨졌던 끈이 툭 끊어지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제야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고 아버님께 온전한 작별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서울에 올라오자마자 선물 상자를 들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내일 점심 꼭 대접하고 싶어요.”
사장님은 그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치셨다.
“아닙니다. 피곤하실 텐데 얼른 들어가 보세요. 종호가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부동산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돌아온 집. 문을 열자마자 종호가 보였다. 우리가 들어서자 녀석은 아무 말 없이 달려 나와 고개를 숙였다. 푹 숙인 뒷모습 위로 녀석이 삼키고 있을 어린아이의 미안함이 읽혔다. 비록 종호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지 못했지만, 사장님이 베풀어 주신 그 따뜻한 배려는 어쩌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남겨주신 마지막 선물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응, 그래. 잘 있었니?”
일부러 짧게 답하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마음속에서는 두 가지 생각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이 녀석을 호되게 야단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짧은 고민 끝에 매를 들지 않기로 했다. 지금 야단을 쳐버리면 아이는 따끔한 꾸지람 한 번으로 자기 잘못을 모두 탕감받았다고 안도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았다.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조용히 녀석을 불렀다.
“김종호, 엄마하고 이야기 좀 할까?”
종호는 뜨거운 햇빛에 바짝 말라버린 잡초처럼 고개를 숙인 채 다가왔다. 어슬렁어슬렁, 아주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기는 그 모습에 당장이라도 “빨리 안 와!”라고 고함을 지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본래 내 목소리는 유별나게 크다. 화가 나면 대포 터지는 소리보다 더 크게 울려 퍼지곤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을 죽여야만 했다. 감정의 파고를 낮추었다. 가시 돋친 목소리를 깎고 다듬어 가장 나지막한 어조로 물었다.
“종호야, 그날 어디 있었니? 할아버지 돌아가신 날 말이야….”
말이 끝나기도 전에 종호는 울음을 터뜨리며 두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가나오락실에 있었어요. 잘못했어요, 엄마!”
“엄마가 가나오락실에 갔을 땐 오락실은 아주 어둡고 아무도 없던데….”
“오락실 오른쪽 끝 구석에 있었어요.”
아이의 울음 섞인 고백이 거실의 적막을 채웠다. 쏟아내지 못한 분노는 안쓰러움과 뒤섞여 묘한 갈증으로 남았다.
“응 그래 잘 있었어?”
종호는 야단맞을 준비를 마친 듯 입술을 꽉 깨물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그렁해질 것 같은 커다란 눈으로 올려다보던 4학년 아이, 그 순간 깨달았다.
“아, 엄마가 마음이 너무 바쁘다 보니 아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구나, 엄마한테도 잘못이 있었네”
“엄마! 죄송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입을 떼기도 전에 종호가 먼저 사과했다. 오락실에 갔다는 종호를 혼내는 대신 제안을 건넸다.
“아냐 종호야, 오락해도 괜찮아, 그런데 종일 하려면 돈이 얼마나 드니? 엄마가 줄게,”
깜짝 놀란 종호의 눈이 반짝였다.
“천 원이면…. 천 원만 있으면 종일 할 수 있어요!”
그날 이후, 우리 집 식탁 위에는 매일 아침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올려 있었다. 대신 약속을 하나 했다. 종호야 어디에 있든 오락실에 가든지 꼭 쪽지를 남겨줄래.
“종호야, 오락은 숨어서 하는 도둑질이 아니라 오락은 즐기는 놀이여야 해
“선생님께 들켜도 엄마가 가라고 했다고 해. 당당하게 즐기렴.”
종호는 기특하리만치 약속을 잘 지켰다.
‘오금동 가나오락실, 4시~5시 30분’
삐뚤빼뚤하지만 정직한 글씨가 식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오락을 마치고 돌아온 종호에게 물었다.
“재미있었니? 엄마도 좀 가르쳐줄래?”
종호에게 물으며 함께 게임기를 붙잡았다.
종호는 엄마가 일하러 나간 시간 동안 많이 외로웠다고 말했다. 종호가 느낀 외로움을 게임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중독은 고립감, 외로움에서 온다는 사실을 다행히 알고 있었다.
집에 게임기를 사서 종호와 함께 게임을 시작했다. 종호가 혼자만의 늪에 빠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게임이라는 것을 함께 웃고 떠드는 ‘놀이’로 치환하고 싶었다. 그 순간 오락실은 더 이상 우리 아들을 삼키는 괴물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오락하며 웃었다. 그 시간 안에서 게임의 기술보다 서로 마음을 읽는 법을 함께 배워갔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가 끝나면 오락실로 달려가던 종호가 골목 어귀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종호에게 툭 한마디 던졌다.
“엄마! 나 이제 오락실 안 갈래. 재미없어.”
뜻밖의 말이었다. 아이의 입에서 재미없다는 말이 나왔다.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변함없이 식탁 위에 천 원 한 장을 올려두었다. 그것은 오락을 권하는 유혹이 아니라, 언제든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무언의 약속이었다.
결국 종호는 정말 안 갈 거라며 먼저 손을 내저었다. 단호한 아이의 선언 앞에서 나는 비로소 빙그레 웃으며 돼지저금통 하나를 내어주었다.
“그래, 오락실 가기 싫을 땐 저금통에 밥을 주고, 가고 싶을 땐 언제든 그 돈으로 가렴. 네 마음대로 해봐.”
종호는 오락실 대신 돼지 저금통의 입에 천 원을 쑤셔 넣었다. 그 기특한 모습에 나는 아이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우리 종호 멋지다, 사랑해.”
그때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스스로 돌아오길 기다려 준 자신에게도 나지막이 칭찬을 건넸다.
‘그래, 아주 잘했어.’
그때 저금통에 채워졌던 것은 단순한 동전이 아니라 아이의 자제력과 나의 신뢰였을지도 모른다. 어느덧 세월은 흐르는 물처럼 지나 종호는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쳤고, 늠름한 대학생을 지나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다.
그리고 2026년 2월 20일. 오락기 앞에 앉아있던 꼬마는 이제 학문의 정점인 박사 학위를 받는다. 긴 시간 묵묵히 연구실을 지키며 논문을 끝마친 아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그 골목길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아들아, 건강하게 자라주어 고맙다. 너는 늘 나의 자랑이었다. 이제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그리고 세상에 보탬이 되는 학자로 거듭난 너의 모든 걸음을 엄마는 언제나 믿고 응원한다.
박사가 된 나의 아들 종호야, 진심으로 축하하고 사랑한다!
2026년 2월 20일
엄마가 아들에게
*메인화면: pinte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