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꽤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이야기다. 1980년 초반 우리 가족은 서울로 올라왔다.
남편이 근무하는 경찰서 앞에 살 집을 구해야 했고, 당시 가지고 있었던 돈으로 빠듯하게 전셋집을 얻을 수 있었다. 일본식 다다미가 깔린 이층 집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문제는 그 후에 발생했다. 다다미방 구조상 1층에 엄청난 층간 소음이 발생했다. 아이들이 조금만 신이 나 발을 구르면 그 소음이 1층 주인집에 거대한 소리로 변해 울려 퍼진다는 것. 세를 줄 때, 집주인은 남편이 집 앞 경찰서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안심하고 세를 주었던 것 같다. 어린아이 세 명이 만들어 내게 될 층간 소음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채.
집주인아주머니는 천장 무너지는 소리에 참지 못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가파른 계단을 올랐다. 문을 부서뜨릴 듯 쾅쾅 두드리며 소리쳤다.
씩씩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얘들아, 제발 밖으로 나가 놀렴!!!! 너희 정말 말 안 듣는구나!”
빼액 내지르는 소리가 끝나면 집주인아주머니의 애원 레퍼토리가 이어졌다.
“새댁, 나 정말 시끄러워 못 살겠어. 부동산 중개료 2배로 줄 테니 이사 가면 안 될까?”
하나 당시 그 집보다 저렴한 집을 찾을 수 없었다.
“아주머니, 죄송합니다. 제가 주의시킬게요. 제발 이사 가라고만 하지 말아 주세요”
주인아주머니에게 하루에도 이 말을 열 번도 넘게 했고, 매달리며 사정해야 했다.
궁리 끝에 나는 아이들의 기운을 밖에서 다 빼놓고 집으로 들어가는 작전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삼 남매를 데리고 집 근처 효창공원으로 향했다. 효창공원에는 유난히 비둘기가 많았고, 비둘기 밥도 팔았다. 비둘기 밥을 사서 비둘기 밥도 주고, 비둘기를 쫓기도 했다. 그러다 숲에서 솔방울과 나뭇잎을 주우며 종호, 현정, 소연이 삼 남매가 완전히 녹초가 될 때까지 놀게 했다. 집은 오직 조용히 잠만 자는 ‘정적인 공간’으로 만들어야 했다.
몇 년 동안 내 마음은 아이들의 발소리가 주인집에 들릴까 싶어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렇게 몇 년을 그곳에서 살았다.
다행이랄까. 남편의 발령으로 우리 가족은 용산에서 송파구 오금동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몇 년의 서울살이를 지났지만,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남편이 근무할 경찰서 근처에 있는 전셋집을 찾다 부동산 사장님의 소개로 18평짜리 지하 방으로 이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사한 집은 주택과 빌라가 즐비한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은색 쇠문으로 된 대문과 붉은 벽돌로 쌓은 담장이 있는 2층 양옥집이었다. 문을 들어서면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좁은 공간이 나오는데 왼쪽에 대추나무가 한그루 심겨 있었다. 그 집에는 단층집, 이 층집, 집 오른편과 왼쪽으로 지하 방이 있었다. 그 집에 주인은 살고 있지 않았고, 모두 전세를 준 상태였다.
우리 가족은 그 양옥집 오른편에 있는 18평 지하 방에서 살게 되었다. 양옥 문을 열고 지하로 내려가면 작은 마당(?)이 나왔고, 갈색 쇠로된 문을 열고 들어가면 18평 지하 방이 나오는 구조였다.
이삿짐을 푸는 날, 이제 5살이 된 막내 소연이 기분이 무척이나 들떠 보였다. 매일 같이 호통치는 1층 주인아주머니와 작별했기 때문이었을지도. 마음껏 뛰어도 되는 지하 방에서 자유를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막내 소연이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물었다.
“엄마, 이제 우리가 이 집주인이야?”
희망에 차 있는 소연이에게 차마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가난의 무게로 지하방인 이곳에 살게 되었다고 말할 수 없었다. 엄마로서 아이의 동심을 지켜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짧게 그렇다고 대답해 버렸다.
다만 그 말이 화근이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막내 소연이는 양옥집 왼편 지하에 이미 살고 있던 언니 상하와 오빠 상현이와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즐거운 시간이 지났다. 어느 날 막내 소연은 상하와 상현이에게 우리 가족이 이 집주인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자랑을 했던 모양이었다.
소연이는 상하와 상현이에게 여기는 우리 집이니 신나게 뛰어놀아도 된다고 말하며 신이 나서 골목을 누볐다고 했다. 남의 집 지하 단칸방에 살면서도, 소연이의 마음만은 저택의 주인이라도 된 듯 행복해 보였다. 하지만 그 행복한 마법은 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잠든 소연이의 머리맡에 있는 작은 창문으로 아이들의 목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김소연! 거짓말쟁이! 너희 돈 없어서 거기 지하방에 사는 거래! 집주인 아니래, 이 바보야!”
상아와 상현이 목소리였다. 자고 있는 소연이가 혹여 그 말을 듣고 상처받을까 봐, 서둘러 홑이불을 아이의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덮어주었다. 보이지 않는 가난의 벽이 아이의 꿈을 갉아먹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결국 무거운 마음을 안고 밖으로 나갔다.
문을 열자 상하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원망보다는 부탁을, 서운함보다는 이해를 구해야 하는 것이 당시 셋방살이 엄마의 숙명이었을지도.
“상하 엄마, 나하고 오금공원에 잠깐 걸을까요? 드릴 말씀도 있고, 부탁도 좀 있어서요.”
오금공원으로 향하는 길, 내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찬 듯 무거웠다. 아이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 ‘거짓말’이 되어버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밤새 소연이가 덮고 있던 이불처럼 어떻게 해서라도 차가운 현실 속 온도를 조금이라도 높여주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지하 방에 살지만, 아이의 마음만큼은 햇살이 잘 드는 마당 넓은 집주인으로 남게 해달라고 말이다.
오금공원 산책길이 유난히도 길게 느껴졌다. 6월의 녹음이 짙어가는 공원은 싱그러웠지만, 마음은 가슴 한구석이 베인 듯 아렸고 쓰라렸다.
"저, 상하 엄마. “
어색한 침묵을 깨고 입을 뗐다. 조금 전 아이들이 창문 앞에서 소리치던 '거짓말쟁이'라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아까 아이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소연이가 자기가 집주인이라고 거짓말했다고. 사실은 제가 소연이한테 우리가 집주인이라고 말해버렸거든요. “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상하 엄마에게 용산에서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 열여덟 평 남짓한 어두운 공간을 보고도 "이제 우리가 집주인이냐?"며 눈을 반짝이던 다섯 살 딸아이의 모습. 그리고 그 아이에게 "그래, 우리가 주인이야"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가난한 엄마의 비겁하지만 절박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소연이는요, 상하랑 상현이가 우리 집에서 마음껏 뛰어놀게 해주고 싶었나 봐요. 집주인이 아니면 친구들을 마음 편히 못 부를까 봐 걱정했던 것 같아요. 그 어린 게 벌써 눈치를 보고 배려하려다 보니…. “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상하 엄마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상하랑 상현이에게 소연이가 거짓말쟁이가 아니라고, 그냥 소연이가 우리 집을 너무 사랑해서 그렇게 믿고 싶어 했다고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속에 '가난'이라는 잣대가 상처로 남지 않게 도와주세요. “
공원 벤치에 잠시 앉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소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은 지하 방의 습기마저 말려줄 듯 따스했다. 상하 엄마는 내 손을 꾹 맞잡으며 미안함과 이해가 섞인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여전히 잠들어 있는 소연이 머리맡에 앉았다. 이불 밖으로 삐죽 나온 작은 손을 어루만지며 다짐했다. 비록 지금은 이 낮은 곳에 머물러 있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소연이의 마음만큼은 세상 어느 높은 곳의 주인보다 귀하게 지켜주겠노라고.
일은 어느 정도 일단락되는 듯싶었다. 어느 날, 3층에 사시는 미술 선생님의 날 선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 상하야, 상현아 좀 조용히 하지 않을래”
3층에 사시는 미술 선생님께서 상하와 상현이가 방에서 뛰어노는 것을 꾸짖는 소리였다. 그 광경을 목격한 소연이가 작은 몸을 바르르 떨며 선생님 앞을 가로막았다.
“할머니, 우리 엄마가 오빠들이랑 뛰어놀아도 된다고 했어요! 야단치지 마세요!”
“소연이 너희들도 시끄럽게 하면 혼난다. 알았지!”
3층 미술 선생님의 호된 꾸지람이 소연이에게까지 번지자, 소연이는 울음을 터뜨리며 내게 달려와 매달렸다.
“엄마! 우리가 집주인이잖아. 그러니까 3층 할머니한테 상하랑 상현이 오빠랑 야단치지 말라고 빨리 말해줘! 엄마~~ 엄마”
“그래 그래 알았어”
나는 소연이를 끌어안은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소연이에게 지하방은 가난의 상징이 아니라, 드디어 마음껏 발을 뻗고 살 수 있는 ‘우리 집’이었던 것이다.
나는 박카스 한 박스를 들고 3층 선생님을 찾아가서 말씀드렸다.
매일 같이 집주인의 호통으로 고달팠던 이 층집 생활, 그리고 아이가 왜 이곳 지하방을 ‘주인의 방’으로 믿게 되었는지. 그리고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선생님, 상하 어머니께도 부탁을 드려놓았어요. 아이들이 상처받지 않게, 당분간만 소연이네가 이 집주인이라고 맞장구쳐 주실 수 있을까요?”
가난은 숨길 수 없는 것이라지만, 아이 세상에서는 조금 더 늦게 깨달아도 좋을 비밀이었으면 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소연이에게는 절망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당당한 주인이 되는 통로이길 바라는 엄마의 간절한 기도였다.
그날 이후, 마법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 길에서 소연이를 마주칠 때마다 미술 선생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셨다.
“아이고, 우리 집주인님! 엄마랑 어디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그러면 소연이는 기다렸다는 듯 어깨를 한껏 으쓱하며 대답하곤 했다.
“네, 할머니! 곰돌이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다 오는 거예요!”
열여덟 평 남짓한 지하방이었지만, 소연이는 그곳의 ‘집주인’이 되었다. 자기가 주인이라는 책임감 덕분인지, 소연이는 상하와 상현이 오빠가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배려했다. 소연이는 그런 스스로를 무척이나 대견해했다.
나는 그때 아이의 작은 어깨에 내려앉은 그 근사한 자부심을 보았다. 진정한 주인이 가질 수 있는 마음은 소유의 크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타인을 품어주는 넉넉함에서 오고 있었다. 그 둘레에는 진짜 어른들이 품어주는 어린아이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울타리가 되어 조용하게 숨 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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