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30대에서 40대 시절이 꽃다웠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다리에 마비가 왔고, 어지럼증이 겹쳐 집에 누워 있어야 하는 날이 더 많았던 나날이었다. 그해 봄 첫째 종호는 4학년이 되었고, 둘째 현정이는 2학년에 올라가는 시기였다. 막내 소연이는 이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3월 2일에는 꼭 막내딸 소연이 손을 잡고 입학식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고 있었다. 마음과 다르게 밤새 다리에 또다시 마비가 일었고, 어지럼증이 더해졌다. 몸과 마음이 마치 따로 노는 것 같았다.
내 사정은 상관없이 막내딸 소연이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다면 엄마부터 설레고, 아이도 엄마의 설렘으로 괜히 어깨에 긴장감이 감돈다. 그런데 소연이는 긴장하지 않았다. 입학식에 엄마가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날 아침, 막내 소연이는 설레는 마음보다는 아픈 엄마에게 괜찮냐 물었다. 아이의 말에 눈물이 복받쳐 왔지만 차마 아이들 앞에서 울 수 없어서 터져 나오는 울음을 꾹 참았다. 소연이는 내 옆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둘째 현정이를 불렀다.
“언니 언니”
“응 왜”
“언니 언제 학교 가?”
“응 언니는 지금 학교에 가고 너는 10시까지 가면 돼”
“언니 나 학교가 어디 있는지 몰라”
“소연아 걱정 마. 언니가 데리고 갈게. 자 이리 와 봐. 이 머리핀 예뻐?”
“응 언니 머리핀 예뻐”
“소연아 언니가 머리핀 꽂아줄게 이리 와 봐. 우와 소연이 너 엄청 예쁘다”
“언니 정말?”
“응 언니가 머리핀 꽂아줄게. 선생님이 엄청 예쁘다고 하겠다”
“정말?”
“소연아, 엄마가 많이 아파. 그래서 너 데리고 입학식 못 가셔. 언니랑 함께 가야 해. 언니가 예쁜 옷도 입혀줄게. 입고 가자”
현정이는 소연이에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머리핀이며 평소 현정이가 제일 예쁘다고 입고 다니는 원피스를 소연이에게 입혀주었다. 소연이는 원피스가 커도 언니가 준 선물이어서인지 투정하지 않고 입었다. 현정이는 골똘히 생각하다 서랍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소연이 오른쪽에 달아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소연아 이리 와 봐. 언니가 연필이랑 신발주머니랑 공책 너 다 가져”
“언니 정말 나 주는 거야?”
“응 학교 가서 울면 안 돼. 선생님이 김소연 부르면 큰 소리로 대답해야 해 알았지? 언니 교실에 있다가 언니랑 입학식에 가면 돼”
“으아앙 으앙 언니 나 학교 안 가면 안 돼?”
“학교 가면 예쁜 친구들이 많아. 그리고 소연이가 학교 안 가면 엄마가 더 아파. 저 봐 엄마 눈에서 눈물 나오잖아”
“언니 알았어. 언니 나 학교 가면 엄마 안 아픈 거야?”
“.... 몰라... 소연아 책가방 매. 운동화 신고 가자”
“언니 알았어”
현정이는 소연이하고 한 살 차이 연년생이었다. 그럼에도 현정이는 하나하나 꼼꼼하게 동생을 챙기더니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시간은 빠르게 흘러 곧 점심 즈음이 되었다. 시계를 보니 입학식을 마치고 집으로 아이들이 올 때였다. 내가 몸이 괜찮았다면 자장면이라도 사 먹이고 돌아왔을 텐데 하는 마음에 괜히 미안한 마음이 더했다.
그때였다.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소연이가 현정이하고 달려 들어왔다. 종호도 동생 뒤를 따라 들어왔다.
“엄마, 엄마, 소연이 선생님 여자 선생님이에요. 엄마!!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보다 훨씬 어려요. 그리고 예쁘셔요. 엄마 그리고 소연이 선생님이 소연이 머리도 쓰다듬어 주시고 내 머리도 쓰다듬어 주셨어요. 나보고 똑똑하고 착하다고 했어요”
“엄마 선생님이 언니 착하다고 했어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종호가 말했다.
“이 바보야 그럼 사람을 앞에다 놓고 안 착하다고 하냐? 착하다고 하지. 아이고 맹꽁이”
“으아앙 으앙 오빠는 바보 맨날 나보고 맹꽁이라 그래. 나 맹꽁이 아니야 오빠가 맹꽁이야”
현정이는 울고 있는 소연이를 꼭 안아주며 말했다.
“소연아 너는 맹꽁이 아니야. 울지 마. 내일도 학교 가서 울면 안 돼.”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종호가 현정이에게 물었다.
“현정아 오늘 학교 가서 소연이 울었대?”
종호는 오빠로서 걱정이 되었는지 소연이 입학식 날이 어땠는지 현정이 이야기를 물끄러미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소연이 안 울었어. 울리지 마 “
현정이는 눈물을 그렁그렁하며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소연이를 토닥이며 말했다. 현정이는 대답을 마치고 소연이를 데리고 거실로 갔다. 소연이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있었다.
”소연아 선생님이 내일 준비물 뭘 가져오라고 했어? “
”응 언니 스케치북하고 색연필 가져오라고 했어 “
”언니 것 있으니까 언니가 줄게. 가지고 가. 내일은 언니가 화장실 가는 시간에 소연이 교실로 갈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언니한테 알려줘야 해. 알았지? “
“응 언니, 언니 내 이름 어떻게 써? 선생님이 운동화랑 가방이랑 자기 이름 써 가지고 다니라고 했어”
“소연아 기다려봐 저기 지나간 달력 있네. 지나간 달력에다 김소연 써봐”
현정이는 뜯어 놓은 달력을 가지고 왔다. 달력 뒷면에 김소연 이름을 적어주며 말했다.
“소연아 이게 김자고 이것은 소자고 이것은 연자니까 써봐”
“언니 나 소자는 알아. 소나무 할 때 소자 맞지”
“그래 맞아. 기역에다 이자 긋고 미음 받침 해주면 김자야. 김소연 써봐”
현정이는 소연이에게 김소연을 써보도록 했다. 소연이가 글자를 쓰면 옆에서 잘한다고 말하며 계속 소연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소연아 달력 뒤집어봐 여기 숫자 있지 언니 따라서 해봐”
일 / 일, 이 / 이, 삼 / 삼...
숫자 공부를 알려 주고 있는 것을 듣고 있던 종호가 말했다.
“소연아 오빠 따라서 해봐”
하나 둘 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 아홉열
하나 둘 셋넷다섯여섯일곱여덟 아홉열
소연이 입학식이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등교 날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이 학교 갈 때 식사도 챙겨주고 싶었지만 몸은 여전했다. 상태가 좋지 못해 계속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침잠이 없는 현정이는 그날도 일찍 일어나 등교 준비를 시작했다. 소연이를 머리도 빗겨주고, 옷도 예쁘게 입혀주고 손수건 달아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현정이는 어제 하루 종일 연습했던 ‘김소연’이라는 이름을 가위로 정성껏 오려냈다. 그러고는 식탁 위 밥그릇에서 밥알 몇 알을 떼어 짓이기더니, 손수건 위에 이름표를 붙여주고 가방과 신발에도 꾹꾹 눌러 붙여주었다. 소연이는 언니가 챙겨주는 모든 것이 고마운 표정으로 쳐다보다가 말했다.
“언니 고마워”
“소연아, 언니가 쉬는 시간에 너네 교실에 갈 테니 혼자 집에 가면 안 돼. 언니가 데리러 갈 때까지 있어야 돼. 길 잃어버리면 집에 못 오니까 교실에 꼭 있어”
“언니 교실에 있을게. 언니 꼭 와야 해. 언니 약속해. 복사하고 도장 찍어야 해.”
“알았어. “
소연이는 불안한지 자꾸 도장까지 찍어야 된다고 한다. 현정이는 소연이에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고 꼭 안아주었다. 옆에서 급히 숙제를 하고 있던 종호가 말했다.
”혼자 교문 나가면 거지가 데려간다. “
”으으앙 으앙 언니 오빠 나 무서워 “
”소연아 언니랑 함께 가니까 울지 마 “
”음응 안 울게 언니“
현정이가 소연이를 달래고 있는데 숙제를 마친 종호가 라면을 끓여 왔다. 그리고는 동생들에게 말했다.
”현정아, 소연아 라면 먹어 “
”오빠 엄마는...”
소연이는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가 생각이 났는지 엄마 걱정을 하는 것이었다. 종호는 벌떡 일어나더니 냉장고 문을 열고 누룽지를 꺼내어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동생들에게 말했다.
“엄마 것도 있어. 라면 빨리 먹어. 식으면 못 먹는다”
“오빠 고마워 맛있게 먹겠습니다”
현정이와 소연이는 오빠에게 고맙다고 하고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종호는 라면은 먹지 않고 가스 불로 가서 누룽지를 끓이고 있었다. 이때 현정이가 말했다.
“오빠 빨리 와서 라면 먹어. 다 퍼진다.”
“알았어”
종호는 가스 불을 끄고 와서 라면을 먹기 시작하였다. 식사를 마치고 현정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싱크대 앞에서 까치발을 들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소연이도 현정이를 거들어 주려다 엎질러진 물에 그만 미끄러져 넘어졌다.
“으아앙 으앙 ”
소연이가 소리 내어 울자 종호가 라면을 먹다 말고 달려와 소연이를 일으켜주며 말했다.
“괜찮아?”
“응 오빠 괜찮아”
“근데 왜 울어?”
“소연이 너 자꾸 울면 울보라고 한다. 빨리 화장실에 가서 양치하고 세수해”
“오빠 알았어.”
그 후에도 소연이는 오빠와 언니가 학교에 데리고 가고 데려오면서 새로운 학교에 적응해 나갔다. 소연이는 학교 가는 것을 매우 즐거워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누워 있는 내 옆에 와서 책을 떠듬떠듬 읽어주다 잠이 들었다. 종호와 현정이도 하루 종일 동생을 돌보다가 피곤한지 내 발밑에 와서 잠이 들었다.
잠이 든 아이들 옆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종호야, 현정아, 소연아, 미안하다. 엄마가 너희들에게 빵점 엄마구나. 엄마가 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 미안해. 사랑해, 예쁘게 자라줘서 고마워.’
*메인화면: pinter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