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초대

by 금옥

3학년이 된 현정이에게 친구가 생겼다.


친구 이름은 수경이었다. 우리 동네에서 좋은 아파트였던 아남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수경이는 어느 날 현정이를 집으로 초대했다. 현정이는 설레는 마음으로 수경이네 집에 놀러 갔다.


수경이네 집에 들어서자마자 현정이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레이스가 달린 침대와 피아노, 어마어마하게 큰 냉장고와 책상, 그리고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까지. 그뿐만 아니라 옷장에는 예쁜 옷들이 밖으로 나오려고 다투는 것처럼 가득 차 있었다. 현정이가 넋을 잃고 구경하는데 수경이가 말했다.


“현정아, 이리 와. 이게 내 방이야.”

와, 이렇게 큰 방을 너 혼자 쓰는 거야?”

“응.”


수경이는 냉장고에서 포도를 꺼내 예쁜 접시에 담아 오며 말했다.


“현정아, 가방 내려놓고 포도 먹어. 참, 너 피아노 칠 줄 아니?”

“나 피아노 한 번도 안 쳐봤어. 너는?”

“이리 와 봐, 내가 가르쳐줄게.”

“아니야, 수경아. 나 지금 집에 가봐야 해. 엄마가 많이 아프셔서 죽 끓여드려야 하거든. 다음에 놀러 올게. 오늘 고마웠어.”

“현정아,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돼? 응? 그럼 현정아, 내가 너희 집 가서 놀면 안 될까?”


현정이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수경아, 나는 내 방이 없어서 같이 놀 수가 없어. 오빠랑 동생이랑 같이 자고 공부하거든. 그리고 우리 집은 피아노도 없어. 오늘 잘 놀았어.”


현정이는 수경이네 집을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 수경이도 현관문을 잡은 채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현정이는 수경이의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수경이도 현정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로를 향해 오래도록 손을 흔들어 주었다.


집에 도착한 현정이가 대문을 열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현정이 언니, 왜 이제 와?”

“응, 소연아. 오늘 친구 사귀었어.”

“정말?”

“응, 아남아파트 사는 친구야.”

“와, 언니 좋겠다! 나도 언니 친구 보고 싶어. 우리 집에 데려오면 안 돼?”

“음, 그 친구는 자기 방도 있고, 레이스 침대도 있고, 책도 엄청 많아.”

“언니, 우리도 침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


막내 소연이는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엄마에게 달려가 졸랐다.


“엄마! 현정이 언니 오늘 친구 사귀었대. 그런데 그 친구 집에는 레이스 침대가 있대요. 엄마, 우리도 침대 하나 사주면 안 돼요?”

“우리 막내 소연이가 갑자기 침대에서 자고 싶어 졌구나! 그래,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침대를 만들어 줄게.”

“언니! 엄마가 침대 만들어 준대!”


현정이가 놀라며 말했다.


“소연아, 침대는 엄청 큰데 오빠는 어디서 자라고 그래. 엄마, 침대 지금 없어도 돼요.”

“언니는 왜 그래, 엄마가 예쁘게 만들어 준다잖아! 나는 꼭 만들어 달라고 할 거야. 엄마, 진짜지? 만들어 줄 거지?”

“그럼, 엄마가 꼭 만들어 줄게.”


현정이는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엄마 품으로 달려와 얼굴을 묻으며 쏙 들어왔다.


“엄마, 고마워요!”


나는 아이를 꼭 껴안아 주며 제안했다.


“현정아, 소연아. 우리 엄마랑 레이스 사러 마천시장에 같이 갈까?”

“와, 좋아요!”





아이들의 손을 한쪽씩 맞잡고 시장 골목을 지나 단골 한복집에 들어섰다.


“사장님, 침대보를 만들려는데 여기서 제일 예쁜 레이스로 하나 골라주시겠어요? 현정아, 소연아. 이리 와서 마음에 드는 거 골라봐.”


아이들은 눈을 크게 뜨고 레이스들을 살폈다.


“언니, 이걸로 할까? 아니면 저게 더 예쁜가?”

“소연아, 정말 다 예쁘다. 그렇지?”

“응! 엄마는 어떤 게 제일 맘에 들어요?”

“음, 엄마 눈에도 다 예쁜데? 그래도 우리 딱 하나만 골라보자.”


고심 끝에 고른 레이스를 펼쳐놓고, 미리 재어 온 밥상 크기의 치수를 사장님께 건넸다.


“사장님, 이 크기로 침대보 좀 부탁드릴게요. 얼마나 걸릴까요?”

“네, 알겠습니다. 한두 시간 정도면 되니까 저쪽 테이블에서 차 마시면서 좀 기다리세요.”


사장님은 잠시 밖으로 나가시더니 양손에 아이스크림과 요구르트를 들고 나타나셨다.


“따님들이 참 예쁘네요. 자, 언니 한 입, 동생도 한 입!”


한복집 사장님이 귀엽다며 소연이의 볼을 살짝 쓰다듬으려 하자, 낯을 가리는 소연이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났다.


“소연아, 사장님이 우리 소연이가 너무 예뻐서 그러시는 거야.”


소연이는 쑥스러운지 엄마 옆으로 파고들며 얼굴을 감췄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현정이가 다가와 동생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드르륵, 드르륵—.”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멈췄다.


“자, 다 됐습니다! 얘들아, 침대보 다 됐다. 너희 참 착하구나, 얌전히 잘 기다리고.”

“사장님, 고맙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얘들아, 인사드려야지?”

“감사합니다!”





두 아이는 합창하듯 인사를 하고는 침대 이야기를 꽃피우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자마자 소연이가 오빠를 불렀다.


“오빠! 엄마가 우리 침대 만들어준대! 마천시장에 가서 예쁜 레이스도 해왔어!”

“레이스로 뭘 만들어?”

“침대보!”


소연이가 들떠서 자랑을 늘어놓자, 묵묵히 듣고 있던 종호가 물었다.


“엄마, 그럼 나는 어디서 자요?”

“우리 아들 것도 침대 만들어 줄까?”


종호는 대답 대신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나는 종호에게 도움을 청했다.


“종호야, 엄마 좀 도와줄래? 곳간에서 10인용 접이식 교자상 좀 내와 주렴.”


종호와 나는 커다란 교자상을 방 한가운데에 펼쳤다. 그 위에 내가 시집올 때 가져온 목화솜이불을 반으로 접어 깔고, 방금 사 온 레이스 침대보를 씌웠다. 투박했던 상이 순식간에 화사하고 포근한 침대로 변신했다.


“현정아, 소연아! 침대 다 됐다! 이리 와서 봐, 짠!”

“엄마, 엄청 예뻐요!”


두 아이가 양옆에서 매달리며 좋아할 때, 종호가 한마디 했다.


“엄마, 돼지들이 밥상 위에 올라가서 자다가 상다리 부러지면 다치잖아요. 엄마는 맨날 우리 보고 조심하라고 하면서, 다리 부러져서 뚱땡이 돼지들 다치면 어떡하려고요. 아빠한테 말해서 진짜 침대 사달라고 하세요.”


오빠의 현실적인 말에 소연이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나는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오빠 말이 맞네. 둘이 자다가 다리 부러지면 큰일 나지. 엄마가 생각이 짧았네! 역시 오빠가 최고다. 오빠한테 고맙다고 손뼉 칠까? 짝짝짝!”


우리 가족은 대문 옆에 쌓여 있던 벽돌을 가져와 교자상 밑을 튼튼하게 받쳤다.


“자, 이제 튼튼해! 누가 먼저 누워볼까?”


내가 먼저 눕고, 그 위에 소연이가 엎드렸다.


“언니! 오빠! 솜사탕처럼 포근해. 꼭 엄마 품 같아.”


현정이와 종호도 차례로 누워보았다.


“오빠도 좋지? 오빠도 오늘 여기서 자보고 좋으면 내일 엄마랑 마천시장 가서 침대보 만들어 오자.”


현정이의 제안에 종호는 대답 대신 침대 위에서 굴러보기도 하고 뛰어보기도 하더니 씩 웃었다.


“돼지들아, 상다리 절대 안 부러지겠다. 엄마, 이제 안 부러져요!”

“좋았어! 자, 그럼 우리 모두 다 같이 누워보자.”


아기돼지 삼 남매는 환하게 웃으며 10인용 교자상 침대 위에 나란히 누웠다.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쓰다듬어 주었다. 그날 밤, 아이들은 나란히 누워 꿈나라로 여행을 떠났다. 나도 아이들 옆에 누워 행복한 잠을 청해 본다. 방 안 가득 퍼지는 아이들의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랑이란 대단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아이들의 환한 마음에 유쾌한 작은 벽돌을 괴어주고 싶은 마음 같은 것이라고.


*메인화면: pinterest

일요일 연재
이전 13화나는 빵점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