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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Sep 10. 2024

내가 중고거래를 하는 이유

ep.3




미립자들은 우주의 모든 정보, 지혜, 힘을 갖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의 알갱이들이다.

-하이젠베르크-





여덟 살, 나의 유년시절 중 가장 행복한 기억이 많이 남아 있는 시간이다. 늘 일하느라 바빴던 엄마가 집에 전업주부로 있었던 시간, 동생이 태어난 그해 1년간이었다. 학교에 다녀오면 엄마가 맞이해 주었고, 학교에 갈 때도 엄마가 배웅해 주었다. 물론 우리 집 빌런이었던 아빠의 행패는 여전했지만 엄마가 내 곁에 항상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고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다. 엄마가 집에서 쉬게 되니 유일한 수입원은 아빠였는데 아빠의 월급은 일정치 않았다. 특히 아빠의 월급날에는 유독 사건사고가 많았다. 월급을 현금봉투로 받아 든 아빠는 술로 끝장을 보는 사람이었다. 아빠가 과연 이번 월급날에는 얼마를 남겨오는지에 따라 우리 가족의 한 달 생활이 좌우되고는 했다.


아빠가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온 그날 새벽, 우리 동네에는 택시아저씨와 싸우는 아빠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사건을 수습하고 집에 돌아와 신생아처럼 잠든 아빠를 내려다보며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갓 태어난 늦둥이 아들과 여덟 살 딸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땠을까? 그저 흘러내리는 눈물만이 자신을 어루만져 준다는 사실에 얼마나 사무치도록 외롭고 고단했을까? 사실 난 잠든 척했지만 아빠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면 혹시나 엄마아빠가 또 싸우지는 않을지(아빠가 엄마를 또 때리지는 않을지) 불안해서 혼자 보초를 서고는 했다. 아빠가 잠들고 엄마가 잠자리에 들고 난 뒤 집안에 코 고는 소리와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우고 나서야 겨우 잠에 들고는 했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눈을 떠보니 엄마는 안방에서 아빠가 가져다준 월급봉투 속 현금을 세고 있었다. 사실 현금을 센다기 보다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한 방향으로 맞추고 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엄마는 늘 돈에도 눈이 있다고 말하고는 했다. 항상 소중히 다루어 주고 예의를 갖춰 좋은 곳으로 보내줘야 한다고 했다. 월급봉투속에서 아빠의 술값과 택시비로 빠져나간 뒤 남은 구겨진 지폐를 빳빳하게 펴면서 이황, 이이, 세종대왕님의 얼굴을 차례대로 맞춰 정리하고는 했다. 여덟 살이었던 내 눈에는 하나의 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의 그런 모습들은 나에게 스며들어 습관처럼 직까지도 남아있다.


그 당시 우리 동네에는 작은 부식가게가 하나 있었다. 오르막길에 있던 가정집 같은 곳 1층에 위치해 있던 간판도 없는 동네 부식가게였다. 어렴풋한 기억으로는 부식가게 주인아주머니에게 아이 둘이 있었는데 형편이 어려웠던 듯하다. 엄마는 매달 그 부식가게 아이들의 학비를 조금씩 보태주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물었다.


"엄마, 우리도 힘든데 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거야?"


엄마는 찡긋 웃으며 나에게 말했다.


"도움은 여유가 있을 때 주는 게 아니라, 내가 힘든 상황에서도 누군가를 도울수 있어야 내 마음에도 여유가 생기는 거야. 대가를 바라고 도와주는 건 아니지만 좋은 마음으로 돈을 보내면 돈에도 눈이 있어서 우리에게 어떻게든 좋게 돌아오게 되어있어."


달 생활이 늘 빠듯하고 아슬아슬했지만 엄마는 항상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작은 것에 감사하며 지금의 우리가 더 좋은 길로 나아가고 있다는 믿음을 늘 갖고 살아갔다. 사실 그 당시에는 엄마의 이런 생각이나 마음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나도 누군가의 아내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가 나에게 물려준 최고의 재산은 긍정적인 시선감사하는 마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창밖에 핀 꽃은 여유가 있어야지만 바라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여유가 없어도 그 꽃을 바라봄으로써 고된 삶 속에서 여유를 찾게 되는 것일까?


정답은 없지만 나는 후자 쪽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려 한다. 여유가 있어서 꽃과 하늘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꽃과 하늘을 바라봄으로써 여유가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되어버린 지난 몇 년간 나의 삶 속에서 무수히 헤매고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치열하게 나의 여유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꽃과 하늘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지려 하다 보니 어느새 내 삶의 방식이 미니멀라이프를 향해 있었다. 니멀라이프를 지향했기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여유였을까? 아니면 여유를 찾으려 했기때문에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게 된것일까? 어느쪽이든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통해 삶에 빈 공간을 마련했고 그 빈 공간속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몸의 70%는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매일 마시는 물은 강물을 정수시킨 물이다. 그렇기에 나의 몸에는 강물이 흐른다. 나무는 우리가 뱉어내는 이산화 탄소를 흡수하고, 우리는 나무가 배출하는 산소를 들이마신다. 나는 나무와 호흡을 주고받는다.


나를 포함한 이 세상 모든 만물을 제일 작은 입자로 쪼개고 쪼개면 미립자의 형태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미립자라면 우리는 모두 분명 어떤 공간속에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나는 확실히 MBTI 검사에서 나오는 N의 성향인 이상적이고 몽상가적인 기질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예전에 갤럽(Gallup)에서 진행한 강점검사에서는 연결성테마가 강한 사람으로 결과가 나왔는데 이런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고 한다. 나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이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런 생각은 사실 미니멀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더 확고해졌다.


우리 집 거실에는 이모집에서 얻어온 커다란 통나무 테이블이 있었다. 고가의 통나무 테이블이었지만 아이가 태어나자 거실에 무거운 통나무 테이블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베란다 밖에 내어두고 그 위에 화분을 놔두고 키웠다. 그러나 동향인 우리 집 베란다를 비추뜨거운 오후의 햇빛을 견디지 못하고 식물들은 모조리 메말라갔다. 식물들을 정리하면서 테이블도 중고거래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10만 원에 내놨는데 다음날 바로 어떤 분이 구매하시겠다고 연락이 오셨다. (금액책정은 내가 내놓으려고 하는 비슷한 제품들의 중고가격을 참고해서 조금 저렴하게 판매한다.) 테이블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와 그 친구분께서 수레를 가지고 오셔서 직접 갖고 가셨다. 테이블이 잘 쓰일 주인을 만나서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 생각한다.


그 외에도 집에서 잘 사용하지 않던 착즙기, 김치냉장고를 사면서 받았던 새 김치통들, 주방정리를 하면서 나온 그릇류 및 스테인리스 냄비들 등은 당근에 나눔을 했다. 사실 그냥 돈을 주고 버리거나 재활용할 때 내놓으면 훨씬 편하긴 하다. 그래도 려서 쓰레기가 되는 것보다는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가서 잘 쓰임 받는 것이 나에게도 물건에게도 더 좋은 일 일 것 같았다. 물건을 나눔 한다고 올리면 금방 연락이 오는데 그릇류는 자취하는 학생들에게 나눔 했고, 새김치통은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께, 냄비는 또래의 외국인 주부에게 나눔했다. 각각의 물건들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찾아간 것 같은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딸아이의 물건들도 가능한 깨끗하게 사용하고 중고거래를 한다. 유모차, 전집, 놀이교구등 아이의 물건은 더 소중하게 보내준다. 우리 아이에게 와서 소중한 시간들을 함께해 준 고마운 물건들이니까.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의 작아진 옷은 깨끗이 세탁한 후 스팀다리미로 다려서 중고판매한다. 구매를 원하시는 분에게 처음 내가 받았을 때의 새 옷처럼 소중히 포장해서 택배로 보낸다. 중고거래해서 들어온 돈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아이의 새 옷이나 신발을 살 때 사용한다. 한 번은 딸아이의 옷을 구매하신 분께서 너무 깨끗하고 정성스럽게 보내주어서 고맙다고 물건을받고 다시 연락을 주시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도 덩달아 감사하다. 내 아이가 입었던 옷이 또 다른 누군가의 소중한 아이에게로 전해져 소중한 시간을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중고거래한 딸아이의 옷가지들




그 많던 물건들을 중고거래로 비워내면서 내가 깨달은 것은 물건에도 에너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을 뿐 모든 것은 에너지로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비워내는 과정을 통해서 소유하는 것에 조금 더 신중할 수 있게 되었고, 나에게 정말로 필요한 물건들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었다.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하나는 아무 기적도 없는 것처럼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둠속에 숨겨진 밝은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살아가다 보면 그 밝은 빛이 점점 커져서 어두운 곳을 모두 덮어버리게 된다.


미니멀라이프는 내가 가지지 못한것에 집착하는 삶보다 내가 가진것에 감사하는 삶을 가르쳐 주었다. 그렇게 나는 매일매일이 기적인 것처럼 감사하며 살아가려 한다.











메인사진 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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