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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Sep 06. 2024

편리함 속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ep.2



인간은 우주와 분리된 개체가 아니라 우주의 일부이다.

- 아인슈타인 -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나의 관심은 자연스레 환경문제로 연결되었다. 지금 당장 내가 사는 이 공간에서 숨 쉴 곳이 필요해 시작한 미니멀라이프가 거창하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당황스러울 때도 있지만 어쩌면 당연한 의식의 흐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의식주 중의 하나로 우리가 살아가는 작은 단위의 공간이다. 집을 넓혀서 생각해 보면 지역사회가 있을 것이고, 지역사회를 넓혀보면 우리나라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구에 속해있고 지구는 우주에 속해있다. 모든 곳이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 속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고 각자 집이라는 공간 속에서 생활한다. 집의 물건들을 비우고 공간이 여유를 찾아갈 때 자연스레 나의 생각은 지구라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책이나 소셜미디어를 통해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 자신 개인의 미니멀라이프로 시작해 결국 지구의 환경문제로 향하는 제로웨트를 실천하며 살아가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결국 우리가 비움이라는 행다 더 선행돼야 할 것이 물건을 소유하는 것에 대한 우리의 시선이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하며 자신들만의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해 나간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빈기나 개인 텀블러를 가지고 가서 주문한 음식을 담아 오거나, 플라스틱통에 들어있는 액상 샴푸나 바디워시 대신 비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사용하려 한다. 활용이 되지 않는 플라스틱 칫솔 대신 대나무 칫솔을 사용하거나, 플라스틱 용기가 배출되는 액상치약대신 고체치약을 사용하려 한다.


을 정리하면서 사용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내가 이토록 많이 소유하고 있었다는 생각과 함께 가장 먼저 들었던 감정중 하나가 '죄책감'이었다. 어떤 물건들은 누군가에게 나눔 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져 쓰레기로 버려질 때 특히나 더 지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쓰고 버렸던 샴푸와 바디워시가 담겨있는  플라스틱 통, 소스들이 담겨있는 유리병, 칫솔, 치약등 어쩔 수없이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들이 배출하는 수많은 일회용품들을 볼 때마다 묘한 죄책감에 마음이 불편해지고는 했다. 우리는 우주의 일부로써 지구라는 공간을 잠시 빌려 일생을 살다 가는 것뿐인데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속삭임 아래 어쩌면 진짜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생활의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들이 계속해서 만들어져 나온다. 탁기, 건조기, 식기세척기, 제습기, 가습기, 스타일러, 청소기 등 집안의 큼직한 가전들부터 작은 가전들까지. 우리의 삶 속에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큼직한 가구들부터 작은 수납장까지. 집안의 모든 물건들은 우리의 편리와 안락함을 위해 내 곁에 들여놓은 것들이다. 것들이 없던 시절에도 살았지만 있으면 더 좋고 편리한 것 같은 그런 물건들 말이다.


이제 우리는 모두 내 손 안의 작은 세상을 갖고 살아간다. 휴대폰의 보급으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검색하고 알아볼 수 있으며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많은 정보들로 나의 세상이 채워진다. 예전에는 광고나 잡지등으로 엿볼 수 있었던 타인의 삶이 이제는 소셜미디어 속에서 나와 관계없는 모든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 그 사람들이 사용하는 최신식 전자기기, 가전제품, 살림용품들이 우리에게 여과 없이 보이면서 나의 삶 속에도 그 물건들이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착각쉽게 빠지고는 한다. 집안 곳곳을 살균할 수 있는 강력한 스팀을 뿜어대는 청소기, 죽은 빵도 살려준다는 오븐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지옥에서 나를 구원해 줄 음식물쓰레기 처리기, 직접 손대지 않아도 센서로 뚜껑이 열리는 휴지통등 생활 속 불편함들을 해결해 줄 물건들이 나를 유혹해 댄다.


나의 경우 어떤 물건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있으면 편할 것 같아서'였다. 결국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속삭임은 가 물건을 소유하는 행위에 정당함을 부여해 주었다. 활의 '편리함'에 초점이 맞춰져서 그 물건들이 삶의 질을 높여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니멀라이프를 희망하며 물건들을 비워내면서 나는 이런 생각들을 잠시 멈출 수 있게 되었다. 편리함에 맞춰진 초점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나의 진짜 삶으로 옮겨서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편리하다고 말하는 생활 말고 나의 진짜 생활, 나의 라이프스타일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인 나는 워킹맘에 비해 집안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비교적 많다. 나의 하루 일과는 나를 위한 시간, 집안일하는 시간, 아이를 돌보는 시간으로 나눌 수 있다. 물건들을 최소화하니 집안일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다. 집안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 나를 위한 시간이 많아졌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지니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아이를 돌보는 시간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쓰기보다 정말 내 삶에서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에 에너지를 쓸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최소화하는 과정에서 내가 직시한 것은 편리함을 위한 소유가 마치 나의 시간을 여유롭게 해 줄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나의 시간을 여유롭게 해주는 것은 바로 최소한의 소유였다.


당연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가구들과 가전제품을 하나둘 비워내기 시작했다. TV 아래 꼭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실장을 비웠다. 셋톱박스와 인터넷 기기들은 TV 뒤로 부착해서 숨겼고 거실장 속 비상약은 우리 가족들의 동선을 생각해 주방 찬장 속 공간에 영양제들과 함께 보관했다. 거실장 서랍 속 잡동사니들은 대부분 딸아이의 장난감들이었고 딸아이의 장난감을 한 군데 모아서 분류하거나 필요 없는 것들은 비워냈다. 그렇게 물건들을 비워내고 나니 거실장이 전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고 나니 청소가 한결 더 편해졌다.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물건들이 제 자리를 찾고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이 집안에서 사라지자 편리함을 위해 소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더 이상 나의 삶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하루의 피로를 녹여줄 것 같았던 커다란 안마의자도 중고거래로 판매했다. 거실 한편에 크게 자리 잡고 있었던 안마의자는 딸아이의 위험한 놀이기구로 변해있었고, 안마의자를 사용하는 것보다 누워서 폼롤러로 스트레칭하는 게 더 편했기 때문이다. 커다란 안마의자가 거실에서 사라지니 이제 우리 집 거실에는 TV와 소파만 남았다.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커다란 공간이 생겼다.


곧 거실에서 TV도 없앨 생각이다. 이제 거실은 우리 가족에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의 하루를 정리하고 싶은 공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서로 읽고 싶은 책을 읽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워내니 진짜 우리 가족이 원하는 공간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진짜 내가 원하는 삶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딸아이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부산에서 친한 동생들과의 약속이 있었다. 경전철과 지하철을 타고  오랜만에 부산 나들이를 하게 된 것이다. 차를 운전하게 된 후로 지하철 탈 일이 많지 는데 오랜만에 지하철여행을 할 생각에 마음이 설레었다. 휴대폰에 있던 교통카드에 돈이 충전되어 있는지 확인을 하고, 목적지역까지 길 찾기 검색을 했다. 길 찾기 앱은 경전철이 도착하는 시간부터 빠른 환승구역, 남은 역의 개수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내가 가려고 하는 역까지 2번의 환승을 해야 했는데 내리기 한 정거장 전에 알림까지 보내준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반대방향으로 가는 노선을 탑승해서 잠시 길을 헤맸다. 편리함을 너무 믿은 나의 자만 때문이었을까. 그냥 길 찾기 앱을 켜뒀으니 시키는 데로 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고 주의 깊게 보지 않고 휴대폰 속 내가 보던 것에 집중하며 걸었다. 다행히 길 찾기 앱은 잘못된 길을 가는 나에게 또 알람을 보내주었다. 그리고는 딸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에 늦게 되면 어쩌나 싶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며 찾아갔다. 그렇게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니 지하철 속 사람들이 보였다. 모두 하나같이 자신들의 손에 들려있는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 전 나도 그런 모습이었겠지 싶었다. 잡고 있던 휴대폰을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을이 다가오는 계절의 하늘은 높고 푸르렀다. 하얀 구름이 몽글몽글 솜사탕처럼 피어있었고, 초록빛 나무들과 어우러진 하늘빛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 곳곳의 공장과 회사들처럼 보이는 곳에서는 사람들이 열심히 자신의 하루를 채워나가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휴대폰 속에서 보이는 세상에 갇혀서 진짜 나의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언제든지 원하면 그 누구와도 연락할 수 있고, 무엇이든 검색할 수 있고, 나의 지루함까지 해결해 주는 이 작은 기계의 편리함 속에서 진짜 나의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조금씩 잃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교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보면 많은 아이들이 자신의 손에 쥐어져 있는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걷고 있다. 어떤 남자아이는 자신이 횡단보도를 걷고 있는지도 모른 채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바라보며 걷다가 빨간불에 길을 건너버려 지나가는 차에 부딪힐 뻔하기도 했다. 아파트 상가 내 계단을 걸으면서도 자신의 시선을 휴대폰에서 떼지 못했다. 학원차를 기다리는 아이들도 길에 서서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 속 화면의 세상에서 자신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아이들의 손에 무엇을 쥐어준것일까?


편리함이라는 이름아래 아이들의 진짜 세상을 빼앗아 버린 것은 아닐까? 컥 겁이 났다. 다시 한번 나의 세상을 바라본다. 휴대폰을 집어든 내 손을 내려두고 나의 시선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해 보려 한다. 잠시 멈추어 주변을 둘러본다.


내가 희망하는 미니멀라이프는 잠시 멈추는 여유를 갖는 것이다. 잠시 멈추고 주변을 바라볼 수 있기를. 소유를 통한 만족감이 아닌 비움을 통해 진짜 소중한 것을 찾아갈 수 있기를 희망한다. 렇게 진짜 나의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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