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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Aug 30. 2024

비울 것이냐 간직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p.1


"사람의 모든 감정과 생각은
라이프스타일로 일관되게 드러난다"

- 알프레드 아들러 -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관심을 갖고 집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마주한 사실 한 가지는 내가 선택이나 결정을 어려워한다는 것이었다. 군가 나에게 '오늘 뭐 먹을까?'라는 질문을 하면 나의 대답은 거의 '아무거나'였다. 이 '아무거나' 속에는 내가 지금 무엇을 먹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잘 모르겠다는 마음도 존재하고, 상대방이 나의 결정을 대신해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존재한다.


신랑과 연애할 때에도 신랑이 '오늘 뭐 먹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내 대답은 늘 '아무거나'였다. 그런 나에게 신랑은 "아무거나 라는 메뉴는 없어."라며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오늘 메뉴는 무조건 네가 고르는 걸로 먹을게." 라며 나에게 선택권을 주려 하기도 했지만, 나는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에 놓인 것 같아 난처한 느낌이 들고는 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들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이 사람은 밥종류를 좋아할 텐데, 그런데 이 주변에 밥종류를 맛있게 하는 곳은 못 본 거 같은데... 그럼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하나... 아니면 밥처럼 먹을 수 있는 다른 메뉴를 알아볼까... 난 뭘 먹고 싶지? 돈가스? 고기? 면종류? 아...... 모르겠어... 그냥 제발 나 대신 하나만 선택해 줘...'


결국 신랑은 내가 좋아할 만한 음식들을 파는 곳으로 알아서 데려가 주거나 내가 그냥 눈에 보이는 가까운 음식점의 메뉴를 먹고 싶다고 말해서 가고는 했다.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가면 항상 시간이 오래 걸리고는 했다. 두부를 사러 두부 코너에 갔는데 수많은 종류의 두부를 보고 일단 머리가 아파왔. 우선 찌개용 두부가 필요하니 찌개용두부로 선택사항들이 좁다. 두부들은 나에게 국산콩인지, 무첨가인지 여러 가지 화려한 문구들을 내세우며 자신을 골라달라고 어필한다. 미묘하게 다른 가격들까지 보고 있자니 숨이 가빠지기 시작한다. 그냥 가장 눈에 익은 브랜드로 하나 집어서 장바구니에 넣는다. 아직 두부밖에 사지 않았는데 시간은 10분이나 지났고 나는 벌써 에너지를 다 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릴 적 엄마가 천 원짜리 하나를 주며 부식가게에 가서 두부한모 사 오라고 시켰을 때가 더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부식가게에 가면 두부는 그냥 네모난 판에 들은 두부들 뿐이었으니 내가 두부의 종류에 대해 알 필요도 무엇을 사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었다. 결혼한 지 8년이 지난 지금이야 어떤 브랜드의 두부가 나은지 비교적 빠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잘 알지 못하는 것을 골라야 하는 상황에서  무 많은 선택지들은 선택하는 것을 어려워했던 나에게 매번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주고는 했다.








선택과 결정하는 것에 있어서 어려움을 겪는 증상을 햄릿증후군이라고 한다. 나는 아마도 햄릿증후군을 앓고 있었던  같다.




햄릿증후군 테스트

1. 메뉴를 고를 때 타인이 선택한 것을 따르는 편이다
2. 쇼핑할 때 친구가 골라주면 바로 구매하는 편이다
3. ott  플랫폼에서 뭘 볼지 고민만 하다 못 볼 때가 많다.
4. 타인의 질문에 "글쎄", "아마도"라고 대답하는 편이다.
5. 선택을 잘 못 해서 일상이 불편했던 적이 있다.
6. 타인에게"이거 사도 될까?""오늘 뭐 먹을까?"등의 사소한 질문을 하는 편이다.
7. 선택을 강요받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5개 이상이면 햄릿증후군



예전의 나였다면 위의 테스트에서 5개 이상 해당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1개의 항목만 해당한다. 바로 3번. OTT 플랫폼에서 뭘 볼지 고민하다가 못 볼 때가 많다. 넷플릭스에서 무엇을 볼지 결정하는 것은 아직도 내게 정말 힘든 선택이다. (뭔가 재미없는 것을 골랐다가 시간을 낭비하게 될 것 같은 느낌에 아무거나 시작하기 싫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어쨌든 미니멀라이프에 대한 관심과 실천의지는 내가 가지고 있던 선택장애를 치료해 준 것임에는 틀림없 생각이 든다. 조금 지루하고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던 물건들을 모두 하나씩 꺼내어 바라보고 버릴 것인지 계속 가지고 있을 것인지를 생각하고 선택하는 과정 속에서 나는 나의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물건들을 구매하고 소유할 때 필요한 사결정에 대해 아주 취약했다. 어떻게 보면 내가 복잡하거나 골치 아프다고 생각했던 선택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적정선에서 합의하는 선택들을 해왔던 것 같다. 이 물건이 왜 필요한지, 어디에 필요한지 스스로 정확한 규정이 되지 않은 채 '그냥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다른 사람들도 다 하나쯤 가지고 있는 것들이니까.' 구매한 물건들이 많았다.


이런 성향의 나에게 치명적인 쇼핑수단 중 하나가 홈쇼핑이었다. 홈쇼핑은 선택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채널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사야만 할 백만 가지 이유들로 설득시켜 주고 심지어 많이 준다. 하나를 사는 것보다 자신들이 소개하는 제품의 구성을 모두 사는 것이 이득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렵게 이것저것 비교할 필요 없이 내가 쉽게 결정할 수 있게 알아서 나를 설득해 준다. 치약을 사기 위해서 마트에 가서 이것저것 비교해 보고 사지 않아도 홈쇼핑에서 추천하는 제품은 다양한 구성으로 많이 주고 제품의 좋은 점들을 알아서 어필해 준다. 내가 비교하고 선택해야 할 에너지를 줄여주니 이보다 편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에는 항상 똑같은 종류의 물건들로 쌓여 있었다. 서랍에는 치약과 샴푸가 한가득이었고 세제도 제 다 쓸지도 모를 만큼 여러 개를 쌓아두고는 했다.


아이를 낳고 나서부터는 집안이 더 많은 물건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육아는 템빨'이라며 육아의 힘겨움을 아이템으로 조금이라도 극복해 보고자 여러 가지 육아용품들과 장난감들로 가득 채워나갔다. 마치 이 모든 것들이 다 필요한 것 같아서 샀다고 하지만 사실 필요에 의한 구매가 아닌 욕구에 의한 구매였던 것이다. 가 좋아해서가 아닌 원해서 구매하게 되는 행위들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데 나만 없다고 느낄 때, 인간은 심리적으로 불편함을 느끼며 강한 구매욕구를 만들어 낸다고 한다. 예를 들어 놀이동산 입구에서 판매하는 12,000원짜리 풍선을 아이들 모두가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갖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사주었다. 그러나 10분 뒤 그 풍선은 손에 쥐어진 짐덩이가 되고 만다. 놀이기구를 탈 때도 밥을 먹을 때도 계속 날아가버릴까 손에 쥐고 신경 쓰인다. 그러다 잠시 더 재밌는 것에 한눈을 판 사이 하늘로 슝 하고 날아가버린다. 모두가 가지고 있으니까 나도 하나쯤 있어야겠다는 욕구에 의한 구매였던 것이다.


그렇게 하나둘 모아간 물건들이 어느새 우리 집의 공간들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집은 휴식과 쉼의 공간이어야 하는데 더 이상 이 많은 물건들 속에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무리 정리해도 돌아서면 다시 또 많은 물건들로 채워져 있는 공간 속에서 질식할 것만 같았다.


골치 아프고 복잡하다는 생각에 회피하듯 무심하게 해 버린 선택들 속에서 나는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었다. 회피는 일시적일 뿐이다. 결국 본질을 마주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곪아서 터져 나오게 되어 있다. 나를 돌보지 않은 채 물건들로 나의 공허함을 채우려 했던 모든 순간의 선택들이 나의 공간에 그대로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현실을 마주한 순간, 그리고 미니멀라이프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하루에 한 공간씩 정해서 그 공간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꺼내 거실에 펼쳐두었다. 비울 것인지, 가질 것인지 물건들 하나하나를 두고 선택하는 연습을 했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자주 사용하지는 않지만 또 없으면 아쉬울 것 같은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나름의 몇 가지 비움 규칙을 만들었다.


1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 중에서 상태가 깨끗하거나 괜찮은 것들은 중고거래를 하거나 나눔을 한다.

1년 이내에 사용한 적은 있지만 자주 사용하지 않은 물건은 보류 상자에 두고 조금 더 지켜본다. 만약 6개월 내에 사용되지 않으면 비운다.

자주 사용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물건들은 그 물건의 자리를 만들어 준다.

비움과 정리를 진행하는 기간 동안에는 새로운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


이렇게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두니 조금 더 선택하기가 편안하게 느껴졌다. 너무 많은 선택지는 오히려 선택을 방해하고는 한다. 그렇게 되면 선택한 것에 대한 확신이 줄어들고 선택하지 않은 것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도로 간단한 규칙을 정하고 하루에 한 공간씩 30분 이내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선택과 결정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후회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하나를 고른 후 다른 선택에서 얻게 될 결과와 비교했을 때 후회를 한다. 그런데 '후회'를 하는  행위는 다른 선택지를 상상하고 비교하는 고등동물들만 가능하다고 한다. 고등동물들이 '후회'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다음엔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결국 선택과 결정을 두려워하는 햄릿증후군은 인간이기에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것이지만, 후회하는 것이 두려워서 이런 것들을 자꾸 회피하고 쉬운 길을 찾아간다면 후회의 기능을 담당하는 뇌의 전전두엽을 쓰지 않겠다는 것과 같다고 한다. 결국 나는 후회하는 삶이 인간다운 삶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정보의 호수 속에서 살아가는 지금 이 시대 속에서 선택지가 다양하고 많아질 수밖에 없기에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후회를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빨리 후회해 보고 다음에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것이야 말로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영역일수록 최고의 선택을 하려고 하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는 만족스러운 선택을 하려고 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원피스를 사기 위해서 백화점과 시장의 모든 브랜드와 가게를 돌아보고 계속 고민하는 것은 최고의 선택을 추구하는 것이다. 반면, 백화점 내의 몇 개 브랜드만 둘러보고 '저 정도면 괜찮은데?' 하고 원피스를 구매했다면 만족스러운 선택을 추구하는 것이다. 최고의 선택과 만족스러운 선택 중에 옳고 그른 것은 없다. 각자 생각하는 것의 중요도가 다르고 라이프 스타일이 다르기에 선택의 기준은 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두 선택의 균형이 맞아야 편안한 삶을 살아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두 선택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 중 하나가 '비움'이라고 생각한다. 오래도록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과 옷가지들을 정리하고 나서 나의 공간에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여백 속에서 나는 나를 마주 할 수 있었고, 나를 마주 하게 됨으로써 나의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선택의 기준이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지, 어떤 스타일의 옷이 어울리는지 내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인지 나의 취향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는 누군가 나에게 "오늘은 뭐 먹고 싶어?"라고 묻는다면, "오늘은 뭔가 매콤한 짬뽕이 먹고 싶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도 예전처럼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게 되었다. 마트에 가기 전 집안의 냉장고부터 살펴보고 필요한 것들만 적어가서 재빠르게 골라서 나온다. 이제는 홈쇼핑 채널 자체에 관심이 없다. 필요한 게 있으면 하나씩 사서 쓰려고 하는 편이다. 결국 많이 사두고 오래 쓰는 것보다 하나씩 사서 끝까지 다 쓰는 게 나의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아이가 초등학생이라 장난감이나 육아용품은 필요 없지만, 책이나 보드게임등 무엇인가 원하는 게 생겼을 때 먼저 빌려서 사용해 보고 오래 잘 사용할 것 같은 확신이 생겼을 때 구매한다. 한동안 딸아이가 그리스로마신화에 빠져있었다. 도서관에서 여러 종류의 그리스로마신화 만화책을 빌려 읽어보고 그중에서 유독 아이가 잘 읽고 재밌어하는 출판사의 책을 구매했다. 나의 기준이 명확해지니 선택을 함에 있어서 더 이상 미루거나 대충 하게 되는 일이 없어졌다. 불필요한 곳에 에너지를 쏟지 않고 내가 정말 원하고 좋아하는 것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인 삶 속에서 선택의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나의 삶을 깊이 들여다 보고 최고의 선택과 만족스러운 선택의 균형을 맞추어 가려고 노력하고자 한다. 후회에 대한 두려움으로 회피하기보다 후회를 통해서 앞으로 나의 선택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늠하려 한다. 그 속에서 나만의 색깔을 가진 진짜 나의 삶이 완성된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으니. 이러한 깨달음들이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희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메인사진출처: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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