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야, 우리 처음 사귀기로 했던 날 기억해?"
"응. 1월 19일"
"몇 년도였는데?"
"2004년."
나는 기념일이나 처음 만난 날, 혹은 만난 지 백일인지 천일인지 크게 개의치 않는 사람이다. 결코 신랑을 테스트하기 위해서 물어본 질문이 아니었다. 스무 살 때 만난 우리는, 아니 정확히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몇 주 전 만난 우리는 6년간 연애하다 6년간 헤어졌다 다시 만나 결혼했다. '우리의 1일은 언제였을까'를 생각하다 글을 쓰려고 자판을 두드리면서 신랑에게 물어본 질문이었다.
신랑은 대체적으로 숫자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1월 19일을 119로 생각하고 기억했다고 한다. 숫자에 취약한 나에게는 놀라운 생각회로이다. 그러고 보니 연애할 때도 신랑은 우리가 만난 지 며칠째인지 곧잘 계산하고는 했다. 나는 D-day 계산기로 입력해 봐야 계산이 되는 사람이다. 나의 기억저장소에는 며칠 전, 몇 개월 전, 몇 년 전이라는 숫자의 개념보다, 그날의 공기, 냄새, 소리, 촉감등으로 보관되어 있다. 신랑과 연애할 당시 만나러 가던 길에 들었던 음악, 그날의 기온, 바람, 바깥풍경, 공기 중의 냄새 같은 것들이 먼저 떠오르고는 한다.
숫자 '1'은 참 묘하다. 어떤 관계에서든, 어떤 일에서든 숫자 1을 보면 시작한다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1 다음 오는 2에 대한 기대감이 들기도, 그다음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첫 번째가 되어 내가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어떤 일을 함에 있어서 잘 해내어 1등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도 한다. 시작이 느린 나에게 '1'이라는 숫자는 참으로 힘든 숫자이다. 완벽함이라는 것이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완벽하고 싶어 시작하는 게 힘든 나는 처음 시작이라는 느낌을 주는 숫자 '1'이 참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을 시작해야 '2'가 올 수 있음을 알기에 조금 내려놓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의 1일을 시작해보려 한다.
'매일 하루에 글 하나씩, 혼자 보는 일기가 아닌 발행할 글들을 써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운 생각에 '그냥 하지 말자, 그만두자'라는 마음이 들다가도 머릿속에서 계속 나의 11월을 기록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들이, 가보지 않으면 모를 길들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에, 두렵기도 하지만 '우리 오늘부터 1일'이라는 생각으로 설레는 마음을 안고 시작해보려 한다.
'오늘부터 1일이야.'라고 단정 짓는 순간 모든 이해관계가 명확해진다. 해야만 한다. 그리고 가보아야만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있다. 11월의 끝자락에서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한 뼘 더 성장했을까? 새로운 것을 발견했을까? 궁금하다. 우리는 늘 인생에서 답을 찾고 싶어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답을 찾는 행위보다 좋은 질문하나를 던지는 것이라고 한다. 나는 어떤 질문을 나에게 던질 수 있게 될까?
마치 차가움과 따스함이 공존하는 가을 날씨처럼,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11월의 첫째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