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본명은 유하이다. 고등학교 때 친한 친구들과 별명을 만들다가 이름 맨 마지막글자를 '자'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유자가 되었다. 별명이 싫지 않았다. 유자라는 과일의 상큼한 느낌도 좋고 실제이름과 비슷해서 더 좋고. 더욱이 이름 끝에 '자'라는 발음의 친근함이 좋았다. 그렇게 우리는 유자, 미자, 감자 이렇게 '삼자'가 되었다.
유자뒤에 '씨'를 붙이니 비타민C, 오로나민C처럼 영양제 같은 느낌도 들고, 누군가 나를 '유자씨~' 하고 불러주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신랑의 휴대폰 속에 나는 'Vitamin'으로 저장되어 있다. 자신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저장해두었다고 한다. 누군가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나의 필명은 비타민씨처럼 누군가에게 힘을 주기도, 나에게 힘을 주기도 하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유자씨가 되었다.
평소 유하는 생각이 많다. 쓸데없는 생각에 자주 휩싸이기도 하고, 일어나는 모든 일들에 의미부여를 잘하는 편이기도 하다. 그럴 때면 유자씨가 출동한다. 생각에 잠식되어 불안이 꼬리를 물고 늘어질 때 유자씨가 그 불안들을 글로 써내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진다. 목마름이 해결된 것처럼 시원하고 살 것 같은 마음이 든다. 일어나는 모든 일들과 말들에 의미부여를 하다 보면 진짜 내 옆에서 일어나는 소중한 일들에 무감각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유자씨가 나타나서 소중한 것들로 눈을 돌릴 수 있게 글을써 내려간다. 돌이켜 보면 이런 나에게 글쓰기는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유자씨는 나에게 비타민씨 같은 영양제이다. 피곤하고 지쳐있을 때 힘을 주기도 하고, 지친 나의 심신을 글로 위로해 주는 유자C 이다.
며칠 전부터 알 수 없는 불안함에 계속 잠을 설쳤다. 불안할 이유도 사건도 없었다. 한 번씩 너무 행복하고 감사할 때면 나에게 이런 이유 없는 불안이 찾아오고는 한다.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될까. 이 행복이 끝나면 어떤 불행이 찾아오게 될까.'
생산적이지도 않고 '지금을 살자'는 나의 다짐과도 거리가 먼 이런 생각에 빠질 때에도 유자씨가 나타난다. 미래나 과거 속을 헤매다 유자씨를 만나면 지금 이 순간으로 다시 돌아오고는 한다.
행복을 느끼는 것도 어둠이 있었기에 가능하고, 슬픔에 의해 균형 잡히지 않는다면 행복의 의미를 잃는다는 것을 글을 쓰며 알아차리게 된다. 비를 바라고 폭풍우를 견뎌온 시간들과 바람을 바라고태풍을 견뎌온 시간들이 어쩌면 나에게 지금의 행복한 순간들을 가져다준 것이 아닐까. 그것들을 견뎌낸 대가가 아닐까. 불안에 잠식될 때면 잠시 거쳐왔던 비바람과 폭풍우 속에서 허우적거렸던 나의 모습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런 나에게 유자씨가 나타나 말을 걸어온다.
괜찮아, 다 지나갈 거야. 지금 이 순간에 귀 기울여봐. 그리고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여봐.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매 순간 우리를 에워싸는 비밀의 음악을 들을 수 있을 거야. 그 음악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불안도 행복의 공명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