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으로는 아마도 6,7살쯤이었던 듯하다. 엄마는 일을 하러 나가야 했고, 나는 집에 혼자 있어야 했다. 그런 나에게 엄마는 '영심이'라는 만화영화 비디오테이프를 틀어주고 나갔다. 영심이의 주제곡이 나올 때면 아직도 그때의 감정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보고 싶고 듣고 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 알고 싶은 것도 갖고 싶은 것도 많은 아이 영심이. 영심이.
보고 싶고 듣고 싶어. 다니고 싶고 만나고 싶어. 해봐. 해봐. 실수해도 좋아.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해봐. 해봐 어서 해봐. 해봐.
그때는 어려서 몰랐지만 영심이 언니는 나보다 7살이나 많은 사춘기 소녀였다. 나는 영심이 언니의 표정이 재밌었다. 축 처진 눈이 표정과 기분에 따라 변화하는 게 우스웠다. 그렇게 만화 속 영심이 언니한테 푹 빠져 있다가도 문득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고 무서움이 느껴졌다. 일부러 집안의 다른 곳을 돌아다니지 않았다. 어디선가 귀신이 훅 하고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앉은자리에서 계속 영심이만 틀어서 보고 있었다. 엄마가 올 때까지.
영심이가 시험 치기 전날 창밖을 내다보면서 별님에게 소원을 비는 장면이 있었다. 영심이를 대놓고 무시하는 월숙이와 은근히 무시하는 경태의 코가 납작해지게 시험에 자기가 공부한 것만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다. 별님은 가장 높은 곳에 있으니 내일이 시험인 것도 알고 영심이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지 않냐고. 영심이가 별님에게 시험을 잘 보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면 나는 별님에게 무섭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영심이 언니와 함께여서.
나는 기다림에 익숙한 사람이다. 좋게 말하면 참을성이 많은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미련하달까. 무섭고 두렵고 외롭고 심심해도 나는 잘 기다리고 혼자 잘 있는 아이였다. 한자리에 앉혀놓으면 그대로 가만히 있는 아이, 아파도 잘 울지 않는 아이, 울어도 소리 내서 울지 않는 아이. 오히려 어른인 지금은아프면 아프다고, 슬프면 엉엉 소리 내어서 울기도 한다. 감정을 느끼고 흘려보내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실에 혼자 앉아 영심이를 보며 엄마를 기다리고 있던 어린 나를 더 이상 가엾게 보지 않으려 한다. 그런 시간들을 통해 내가 배워나간 것들이 있을 테니 과거의 나를 돌보기 보다, 지금의 나를 돌보며 살아가려 노력한다.
이토록 기다림에 익숙한 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기다리는 게 세상에서 제일 힘들게 느껴진다. 울퉁불퉁한 길에서 씽씽이를 기어코 타겠다는 아이를 막아서는 대신 한번 해보라고 하고서는 기다려본다. 씽씽이를 달랑 손으로 들어 아이의 손을 잡고 그냥 걸어서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가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위험하지만 않다면 지켜봐 주려 한다. 색칠공부를 하며 선밖으로 색연필이 튀어나가면 짜증을 내는 딸아이를 보며 색칠공부 다시는 하지 마라고 뺏어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조금 튀어나가도 실수해도 괜찮다고 말해본다. 덧셈과 뺄셈 학습지를 풀다 뺄셈은 어려워서 하기 싫다며 눈물을 보이는 아이에게 그렇게 쉬운 것만 하고 살면 뭘 할 수 있겠냐며 다그치는 대신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틀려도 괜찮으니 엄마와 함께 해보자고 아이옆에 앉아 달래 본다.
사랑은 선택이라는 것을 아이를 키우며 배워가는 것 같다. 오른쪽으로 갈지 왼쪽으로 갈지, 앞에 앉을지 뒤에 앉을지, 빨간색을 고를지 주황색을 고를지, 인생의 모든 선택의 순간들 속에서 대신 선택해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버텨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그것이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한다.
영심이처럼 뭐든 궁금하고, 뭐든 해보고 싶은 그런 호기심을 가진 딸아이에게 실수해도 괜찮다고, 넌 아직 어른이 아니니까 많은 것을 해보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리고 나에게도 말해준다. 어른이 되었지만 뭐든 해보라고. 실수해도 괜찮으니 뭐든 해보라고. 실수하기 싫어서, 틀리기 싫어서, 잘못된 선택을 하고 후회하게 되는 게 싫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 실수하고, 틀려보고, 후회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뭐든 해본다. 수영도 하고 글도 쓰고, 책도 읽고, 클래식 노래도 들어본다. 딸아이와 게임도 하고, 함께 그림책도 읽는다. 늘 가던 길 말고 다른 길로도 걸어본다. 늘 마시던 것 말고 다른 음료도 한번 마셔본다. 늘 먹던 것 말고 새로운 음식에도 도전해 본다. 이런 작은 변화들을 통해서 나는 변화에 익숙해진다. 변화에 익숙해지면 작고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행복해진다. 아주 작은 행복들을 찾아 그것들로 나의 하루를 채워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삶이 감사해진다.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