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라북도 진안에 위치한 마이산에 다녀왔다. 엄마는 매년 다녀오는 곳이지만 나는 처음 가보는 곳이었다. 딸아이와 신랑 그리고 이모와 엄마까지, 오랜만에 여행 가는 기분으로 마이산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서 마이산 까지는 2시간 30분 정도가 걸리는데 중간에 휴게소에 두어 번 들르니 왔다 갔다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마이산으로 향하는 길에 산청휴게소에 들렀다. 휴게소에서 빠질 수 없는 어묵, 핫바, 호두과자를 사들고 테이블에 앉아 여행기분을 내며 맛있게 먹었다. 비가 온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였는지 휴게소에 있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신나 보였다.
'모두 어디로 향하는 걸까?'
'누군가는 여행을 떠나는 길이기도, 누군가는 볼일을 보러 가는 길이기도, 누군가는 그리운 이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겠지.' 하며 휴게소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그러던 중 뒤쪽 테이블에 앉아있는 20대 초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학생들 무리를 보았다. 풋풋하고 싱그러웠다. 친구들끼리 여행을 떠나는 길인 것처럼 보였는데 모두 얼굴이 한껏 들떠 있었다. 핫바 한입에도 서로의 눈을 보며 웃음이 나고, 친구의 입에 묻어있는 케첩만 봐도 까르르 웃을 수 있는 참 예쁠 나이 같아 보였다. 나의 20대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싱그럽고 풋풋하고 예뻐 보였으리라. 외모가 예뻐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싱그러움과 젊음이 누군가에게는 한창 예쁘게 핀 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매일 가는 수영장에는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많이 오신다. 그분들이 나에게 지나가는 말로 "아이고 참 예쁠 때다."라고 하시고는 한다. 휴게소의 여학생들을 보며 내가 들었던 마음이 수영장에서 만난 어르신들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나의 지금이 누군가에게 젊음일 수도, 그들의 지금이 나에게 젊음일 수도 있다면 나는 지금이 가장 젊을 때가 아닐까. 지금이라는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리울 젊음일 수 있기에 지금이 가장 젊은 날이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되뇌어 본다.
이상은의 <언젠가는>이라는 노래가사가 새롭게 와닿았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하지만 이제 뒤돌아보니 우린 젊고 서로 사랑을 했구나.
눈물 같은 시간의 강 위에 떠내려가는 건 한 다발의 추억 그렇게 이제 뒤돌아보니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했구나.
무엇 때문에 우리는 항상 늦은 것 같은 생각이 들까. 지금이 가장 좋을 때임에도 불구하고 왜 항상 쫓기듯 앞으로 떠밀려 가기만 하는 것일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스무 살에는 대학을 가고, 서른 살에는 결혼을 준비하고 부모가 되고, 마흔 살에는 번듯한 집과 가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짓고는 한다.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대부분은 그렇게 산다고 그 대부분에 나를 끼우려고 한다. 그래야 그 속에서 안정감이 드나 보다.
마흔이 된 지금, 나의 젊음을 뒤돌아보니 늦고 빠름이 아무 의미 없음을 깨닫는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지금이 젊음일 테니까. 아이를 먼저 낳아 키운 누군가는 지금 열심히 사회생활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사회적 커리어를 쌓은 누군가는 지금 아이를 낳아 육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우리 모두에게 각자의 삶에서 '적정한 때'가 있음을 느낀다. 무엇인가 시작하기에 늦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이 가장 좋은 때이며, 나의 삶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것인지 언제든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엄마는 마이산탑사에 매년 기도를 하러 가신다. 그곳뿐만 아니라 남해 보리암, 대구 팔공산, 청도 사리암등 20여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난 후, 신랑과 딸아이와 함께 엄마가 기도 하러 다녔던 곳을 갈 때면 엄마의 지난 시간들이 나에게 와서 살포시 닿는다. 엄마는 과거에 있던 우울한 시간도, 미래를 살아가야 할 불안한 시간도 모두 지금 이 순간을 살기 위해 기도를 다녔던 게 아니었을까. 지금 이 순간을 살아내기 위해 간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냈다. 그 시간들이 이제 나에게 와닿아 엄마의 젊음을 살아내고, 또 나의 지금을 하루하루 정성껏 살아가면 언젠가 딸아이에게 나의 젊음이 와닿을 순간이 오지 않을까.
가수 이상은 씨의 노래가사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언젠가는 우리 다시 만나리.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모르지만."
어디로 흘러갈지 우리는 아무도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명확한 것은 없으며 그 순간들이 언젠가 우리를 다시 만나게 해 줄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오늘, 지금, 여기, 이 순간을 마음껏 행복하고, 감사하고, 사랑하며 즐기려 한다. 어쩌면 한 번씩 이 순간을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해주는 다짐 섞인 말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