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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My November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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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씨 Nov 05. 2024

깊고 지극한 행복들

11월 5일





수능을 치고 고등학교 졸업을 하기 전에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앱으로 모든 배달이 다 되던 시절이 아닌 전화로 주문을 하고 받던 시절이었다. 처음 전화로 피자 주문을 받던 때가 기억난다. 가슴이 아주 많이 쿵쾅거렸고 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긴장한 내색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 손에 쥔 전화기를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집중했다. 은땀이 흘렀다.


'소를 다르게 받아 적어서 배달이 잘못 가면 어쩌지?'

'피자 메뉴를 잘 못 알아 들어서 다른 걸 만들어 배달하면 어쩌지?'


머릿속에서 오만가지의 걱정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행히도 나의 첫 주문은 실수 없이 잘 배달되었고 나는 금세 그곳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사장님께서 새로 오픈하는 다른 지점에 스카우트 되어 가기도 했다. 물론 중간중간 실수는 있었지만 처음만큼 떨리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일하는 환경과 상황들 사람들에 익숙해져서였을 것이다.


고등학생의 신분에서 성인이 되어 처음으로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아직도 피자집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피자 구워지는 냄새를 맡으면 그곳에서 일했던 기억이 난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면 옷에 한껏 배어있는 피자냄새조차도 좋았던 그 순간들. 가구도 없는 빈집에서 두루마리 휴지 하나를 배게 삼아 지내야 했던 시절이었지만 돈을 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었던 순간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깊고 지극한 행복의 순간들은 항상 고통이나 어려움과 함께였다. 힘든 상황이나 어려움을 버텨내고 지나왔을 때, 아프거나 지칠 때, 슬프거나 괴로울 때를 터널처럼 지나오면 항상 햇살이 나를 반겨주고는 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 속을 걸을 때에도 이 터널이 끝나면 따스한 햇살이 나를 반겨 줄 것이라는 희망을 늘 마음 한편에 품고 있었다. 어쩌면 희망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힘든 순간들을 버티고 그 뒤에 오는 깊고 지극한 행복들로 삶을 버티며 살아나가는 게 아닐까.


깊고 지극한 행복들은 자극과 쾌락의 반대말이기도 하다. 오늘하루 힘들게 일한 나에게 치킨과 맥주를 마시는 행복을 선물해 준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즉각적인 자극과 즐거움을 주는 보상일 뿐이다. 육퇴 후 마시는 시원한 맥주 한잔에 매료되어 '크~ 이게 행복이지~' 하며 나에게 즉각적인 보상을 준다. 사실은 그것이 일시적 쾌락에 불과하다는 것은 몸이 조금씩 망가진 뒤에야 깨닫게 되었다.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며 공부할 때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리포트를 써내야 할 때 달달한 음식들을 옆에 두고 즉각적인 즐거움을 선사하며 나를 움직이게 한다. 하지만 그러한 자극과 쾌락을 더 자주 맛볼수록 내 몸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쇼핑을 하는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그것 또한 일시적이다. 머리를 식힌다는 이유로 쇼츠를 몇시간씩 들여다보고 있는것 또한 일시적 자극일뿐이다. 이러한 자극과 일시적 즐거움 뒤에는 공허함이 찾아온다. 자극과 쾌락은 그저 힘든 상황들이나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버텨낼 잠깐의 도피처뿐인 것이다.


조금 더 깊고 지극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 일상 속 작고 사소한 것들 눈길을 돌다. 매일아침 눈을 떠서 스트레칭과 명상을 한다. 귀찮고 피곤할 때도 있지만 그 마음을 이겨내고 해내면 더 깊은 만족감이 몰려온다. 수영장까지 걸어 올라가기 귀찮아서 하루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을 때, 그 생각을 이겨내고 수영을 하고 온 날에는 더 깊고 지극한 만족감이 몰려온다. 빨리 먹을 수 있고 맛있는 햄버거나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고 싶을 때에도 수영을 하고 왔으니 몸에 좋은 음식들을 넣어주자는 생각이 든다. 귀찮지만 나를 위한 건강한 한 끼를 차려 좋은 음식들로 채워준다. 그로 인해 진짜 나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사랑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서 집안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만든다. 나의 모든 행위에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본다. 그로 인해 우리는 서로의 존재 자체가 사랑임을 깨닫게 된다.


등산로를 걷다 나무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햇살에 손을 비추어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햇살의 따스함이 나를 어루만져 주었다. 아름다웠다. 자연 앞에 하나가 됨을 느낄 수 있었다. 참으로 깊고 지극한 행복이었다.


딸아이의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딸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온 딸아이가 나를 보며 달려와 내 품에 쏙 안겼다. 볼록한 이마, 뽀송한 솜털이 가득한 피부, 조그마한 입과 코, 까맣고 동그란 눈동자 속에 내가 보였다. 야들하고 말랑한 손가락을 조물 거리며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참으로 깊고 지극한 행복이었다.


내가 차린 음식을 신랑은 참 맛있게 먹어준다. 엄지를 치켜세우며 먹음직스럽게 음식을 먹는 신랑을 보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딸아이는 아빠옆에 앉아서 재잘거리고, 신랑은 그런 딸아이가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모른다. (결국 장난을 치다 누구 하나는 울어야 끝나지만...) 신랑은 차려진 음식들을 먹으며 늘 감사하다고 나에게 말한다. 그 마음을 받고 나 또한 감사해진다. 그렇게 우리의 식탁을 감사함으로 가득 채워 나간다. 참으로 깊고 지극한 행복이다.


이따금 자극과 일시적 즐거움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자극과 쾌락 후에 오는 공허함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렇게 알아차림으로써 조금 더 깊고 지극한 행복을 느끼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나의 삶속에서 고통의 순간들이 찾아올 때에도 깊고 지극한 행복을 찾으며 희망이라는 무기로 버텨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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