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2
" 엄마, 나를 더 사랑해? 동생을 더 사랑해?"
내가 여덟 살이 되던 해 남동생이 태어났다. 갓 태어난 남동생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로 엄마의 사랑을 빼앗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나의 질문공세에 엄마는 늘 이렇게 대답했다.
" 어이구. 열손가락 다 깨물어봐라.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지."
엄마의 대답에 나는 생각했다.
' 열손가락을 각각 다른 강도로 깨물면 조금 덜 아픈 손가락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깨무는 사람 마음이겠군. '
엄마가 나를 자신의 목숨과도 같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늘 의심하고 확인하고 싶어 했다.
나의 딸이 태어나고 그 아이가 9살이 된 지금 문득, 밤하늘을 바라보며 '열손가락 다 깨물어봐라~ 안 아픈 손가락이 있는지'라고 대답하는 엄마의 목소리와 표정이 떠올랐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을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은 그런 밤이었다.
딸아이가 말을 하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 때가 된 이후부터 이따금 나에게 이런 질문들을 한다.
" 엄마, 나 사랑해? 얼마큼 사랑해? 아빠를 더 사랑해 나를 더 사랑해? 할머니를 더 사랑해 나를 더 사랑해? "
귀엽고 동그란 눈을 치켜뜨며 속눈썹을 깜빡이고 있는 너에게 내가 너를 얼마큼 사랑하는지 어떻게 표현해줘야 할지 잠시 생각하다 대답했다.
" 온 우주를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이 사랑하지~누구보다 더 사랑하냐는 질문은 엄마한테 의미가 없어. 왜냐하면 너의 존재 자체가 이미 나의 목숨과도 같거든. "
이 말을 딸아이가 어디까지 이해했는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의 눈빛과 표정, 우리의 살결이 서로 맞닿아 서로의 숨소리와 심장소리를 부대끼며 가슴으로 느꼈기를 바랄 뿐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랑해"라는 세 글자로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이미 네가 없는 세상은 나에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네가 태어나기 이전의 삶은 나의 전생 같기도 하다. 네가 없는 세상을 티끌만큼이라도 상상하면 가슴이 날카로운 칼로 난도질당하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너도 나를 이만큼 사랑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너에게서는 그 어떤 것도 바라지 않으면서 나는 너에게 모든 것을 다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일까.
몸속에 흘러 다니는 혈액처럼 이미 너는 나의 모든 것이 되어버렸다. 나의 심장을 가진 너에게 어떤 말로 나의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너에 대한 나의 이런 사랑을 네가 알아주길 바라지 않겠다. 난 그저 너로 인해 나의 존재가 사랑임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의 결정체가 너라는 것을 우리가 함께 하는 매 순간 느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너는 이미 나의 심장을 가졌노라고, 오늘밤 문득 그런 생각에 나 자신이 더 사랑으로 가득 차오름을 느낀다. 나를 사랑의 존재로 낳아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신의 심장을 기꺼이 내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 간다. 문득, 오늘밤 이 세상에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존재자체가 기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어있는 상태보다 살아있는 상태가 더 기적에 가까운 나의 하루를 사랑으로 가득 채워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