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01
버스를 탈일이 많지 않지만 이따금 버스를 타고 이동할 때면 기분이 좋다. 걷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를테면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의 이동수단을 타고 다양한 목적지로 가는 모습을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다.
그날 나의 목적지는 새로운 일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마음속 미루고 미루어두었던 일을 해보고자 결심한 채 버스에 올랐다.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나를 보고 정차한 버스는 '끼-익-'하는 급 브레이크 소리를 냈다. 탑승 후 교통카드를 찍기도 전에 부웅-하고 출발해 버리는 버스에서 넘어지지 않으려 튼튼한 내 두 허벅지로 중심을 잡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운전기사님은 매 정거장마다 급 정거와 급출발을 해댔다. 옆차선에서 깜빡이를 켜고 들어오려는 승용차에 큰 경적소리로 빵빵 거렸다. 마치 불을 내뿜는 용처럼, 자신이 내뿜는 불길이 어디로 향할지 상관하지 않은 채 여기저기 화풀이를 해대는 사람 같아 보였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꽂은 채 온 버스의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의 큰소리로 전화기 너머의 누군가와 함께 욕을 해댔다. 기분 좋게 시작한 하루의 발걸음이 버스 기사님의 불쾌함으로 슬슬 기분이 나빠지려는 찰나 다행히도 목적지에 도착했다.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급정거를 하며 정류장에 멈춘 버스는 나의 두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출발했다. 나도 모르게 "엄마야!" 하는 소리를 내뱉으며 휘청거렸고 나를 태웠던 버스는 뒷문도 안 닫은 채 출발해 버렸다.
'보통 사람이 내리고 뒷문을 닫은 다음 출발하는 게 순서 아닌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타고 내릴 때도 저렇게 할까? 진짜 너무하네! 저 아저씨!!!!'
멀어져 가는 버스의 번호판을 외우며 씩씩거렸다.
'신고할 거야 진짜......!!!!!!!'
씩씩거리며 걸음을 옮기는 내 발걸음과 쿵쾅거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귀에 크게 울려댔다. 순간 나의 모습이 마치 마구잡이로 불을 뿜는 용처럼 보였던 버스 기사님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버스를 타기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과 기분 좋은 하루를 감사하며 즐거웠는데 버스를 내리면서 소중한 하루를 다 망쳐버린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럴 때, 바로 마법의 주문이 힘을 발휘할 시간이다. 타인으로 인해 나의 감정이 오르내릴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운다. 코로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입으로 길게 숨을 내뱉으며 나지막이 주문을 외운다.
당신에게는
나의 하루를 망칠 권리가 없다.
당신에게는
나의 하루를 망칠 권리가 없다.
당신에게는
나의 하루를 망칠 권리가 없다.
기분이 괜찮아지고 상대방과 내가 온전히 다른 인격체로 분리될 때까지 이 주문을 되뇐다. 무례한 식당종업원을 만났을 때, 조그마한 일로 나를 인신공격하며 꾸짖는 직장상사를 대할 때, 막말을 내뱉으며 괜한 화풀이를 해대는 정신 나간 사람들을 만날 때, 그 사람들의 화나 무례함이 나에게 닿아 스며들지 않도록 나를 지키는 방패막이 같은 주문이다.
주문을 되뇌인후 기분이 조금씩 나아지면 큰소리로 외친다.
반사!
메~~~ 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