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긴 기다림의 끝엔.

ep.07

by 유자씨




기나긴 겨울의 끝자락에서 우리가 미처 봄을 느끼기도 전에 자연은 늘 한걸음 앞서 봄을 준비한다.


차가운 땅속에서, 앙상하게 마른 나뭇가지에서, 하고 보드라운 새순을 틔워낼 준비를 한다. 자연은 고통 앞에서 아무런 내색도 없이 그저 묵묵히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기다림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질 때, 아픔이 지나가기만을 견뎌 야만 할 때,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흘려보내야만 할 때, 나는 자연의 그늘 속에 숨어든다. 그 속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한낱 나뭇잎이 되기도, 발길에 차이는 길가에 돌멩이가 되기도, 자유로이 꽃을 찾아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기도 한다.


부정적 생각에 휩싸일 때면 수많은 나쁜 기억들이 떠오른다. 마치 내 인생이 그런 일들로만 뒤덮여 있었던 것처럼. 머릿속 누군가가 폴더를 꺼내듯 나쁜 기억들을 수집해 온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동동걸음 치는 내 모습이 측은했다가 다시 또 거센 비난의 자책이 돌아온다. 이렇게 나약한 내가 너무 싫어서 내 존재를 부정하고 세상에서 나를 지워버리고 싶어진다.


만개한 벚꽃나무 앞에 섰다. 밤사이 내린 봄비와 봄바람에 떨어진 벚꽃잎들은 마치 벚꽃나무를 밝혀주는 조명처럼 핑크빛을 뿜어내고 있다. 떨어진 꽃잎의 빈자리를 연둣빛 잎이 채워주며 짧은 봄의 화려함이 이내 곧 사라질 것임을 암시한다.


꽃이 뿜어내는 그 모든 것들이 제 아무리 나를 고통스럽게 하여도, 나는 기꺼이 그 아름다움에 무너질 것이다. 기꺼이 그 무너짐을 받아들일 것이다. 긴 기다림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 자신의 때를 만끽하는 꽃들처럼. 혼돈 속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태어난 것처럼. 우주의 일부로써 기나긴 기다림의 끝에서 만날 아름다움을 기꺼이 만끽하고야 말 것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