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불혹, 미혹함이 없는 나이라는데. 글쎄. 마음에 미혹함은 조금 줄어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내년이면 마흔두 살에 접어드는 나의 몸은 이곳저곳에서 세월의 흔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예전 같았다면 금세 돌아왔을 컨디션이 몇 주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다거나, 부러진 발가락 뼈가 붙고 회복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거나, 초저녁에 잠이 쏟아지다 그 시간을 넘겨버리면 밤새 잠에 들기 어려워 뒤척인다거나, 상처 난 피부가 회복되는데 몇 주가 걸린다거나, 소화기능이 떨어져 예전처럼 음식을 편하게 먹기 힘들어지거나, 이유 없이 이곳저곳 쑤시고 아픈 데가 생긴다거나 하는 그런 흔적들이 마치 내 삶의 이정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세월의 흔적을 느낄 때면 순간 짜증이 났다가도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들임을 깨닫고 이내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불혹인 것일까.
아이의 겨울방학이 두 달이나 된다는 명분과, 남편의 육아휴직 마지막 달이라는 명분을 더해 우리 부부는 19박 20일의 해외여행을 계획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약간의 합리화와 함께.
20대의 신랑이 머물렀던 시간 속의 말레이시아에서 2주를, 20대의 내가 머물렀던 시간 속의 대만에서 1주일을 여행하고 올 계획이다. 아빠와 엄마의 20대 추억이 서려있는 장소에서 10살이 되는 딸아이는 어떤 추억과 감정을 만들게 될지 한껏 부푼 기대와 설렘을 안은채.
동시에 두 개의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처음이고, 도시를 이동하는 여정들도 여러 개 포함되어 있어서 조금 두렵긴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신랑과 함께 모든 일정을 자유여행으로 계획했다. 항공권 예매 총 3회, 내륙이동 버스, 각 지역에서 머물 숙소까지 모두 예약을 완료하고 나서야 이 여행이 실감 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여행을 떠나기 5일 전인 오늘 갑작스러운 항공편 변경 연락을 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대만으로 가는 항공편 일부가 항공사의 비행 일정변경으로 인해 취소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숙소의 일정까지 모두 예매되어 있는 상황에서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계획이 틀어져버린 것 같아서 짜증이 난 신랑과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하는 나의 예민함이 부딪혔다. 싸우지는 않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이번여행의 계획자체가 잘못된 건 아닌지 의심하며 각자의 불안한 마음이 불편하게 바스락거렸다.
어찌 되었든 항공사의 비행편취소는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니 받아들이고 차선책을 찾았다. 취소된 항공편은 전액환불이 가능했고, 다른 비행 편을 찾아보았다. 처음에 예매했던 금액보다 20만 원 정도 비쌌지만, 시간대가 더 좋았고 항공사도 저가항공이 아니라 좀 더 안심이 되었다. 오히려 잘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온갖 긍정적인 이유를 다 가져다 스스로를 안심시키고 있는 모습에 괜히 불혹은 아니구나 싶었다.
여든이 된다 해도 미혹함 없이 살 수는 없을듯하다. 다만 그 미혹함에 빠졌다 헤어 나오는 시간이 조금씩 짧아져가는 것이 나이 들어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몸은 녹슬어갈지라도 마음의 자리가 넓어지고 생각이 유연해짐으로써 몸의 노후됨을 보충하면서 살아가게 되나 보다.
나에게 '너무'는 양극단의 언어였다. 저울의 무게를 맞추기 위해 양쪽 끝에 달려있는 추처럼 결코 만날 수 없지만 동시에 존재해야만 하는 것. 이 글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마음속 눈금표를 만들 수 있기를, 그로 인해 치우치지 않고 나만의 중심점을 찾을 수 있기를 고대했다.
한쪽 저울의 추가 무거우면 다른 한쪽은 가벼워지게 되어있다. '너무' 치우쳐 보아야 얼마 큼이 치우치지 않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쪽에 추를 더 달아보고, 저쪽에 추를 덜어내기도 하면서 균형을 맞추어가는 여정. 그것이 삶이 아닐까.
너무, 쉽기만 한 삶은 재미없으니까. 이따금 어려움이 주어지는 것이 아닐까. 삶 속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겪어볼 수 있도록 교묘하고 정교하게 설계된 신의 계획이 아닐까. 그로써 인생의 아름다움은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아닐까.
너무, 아름다운 나의 삶에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