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장애와의 공존: 조절해야 했던 일상, 동료들의 이해와 협업
인턴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저는 예상치 못한 측면에서 스스로를 돌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 주 오리엔테이션과 프로젝트 개요 설명을 들을 때만 해도, 그저 “이제 업무가 시작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새로운 환경과 업무량이 늘어나면서, 제 몸과 마음은 점차 부담을 느꼈습니다. 특히 조울증이라는 정신적 장애를 안고 있으니, 컨디션이 조금만 흔들려도 일상 전체가 크게 영향을 받곤 했습니다. 문제는 해외 근무라는 특수성까지 겹쳐, 대체로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예컨대 한국이라면, 갑작스러운 몸살이나 심리적 압박을 느낄 때 가족이나 지인을 잠시 만날 수도 있고, 병원도 익숙한 곳을 찾으면 되겠죠. 하지만 이스탄불에서는 기본적인 언어 장벽부터 약간의 두려움을 안겨주었습니다. “지금 상태가 급격히 나빠지면 어떻게 하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래서 더 철저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했습니다. 출근 전날 밤엔 가급적 일정이나 날씨 등을 미리 점검했고, 하루하루 컨디션 일지를 적어두기도 했습니다. “오늘은 에너지가 60% 정도 된다”라든가, “집중력이 떨어질 때 쓸 수 있는 대체 업무 리스트” 같은 걸 만들어 마음의 준비를 했지요.
업무가 쌓이면서 가장 어려웠던 건, 조울증 특유의 급격한 기분 변동이 밀려올 때였습니다. 한순간에 기분이 고양되어 “오늘은 뭐든 해낼 수 있겠다!” 싶다가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침대에서 일어나기조차 버거운 상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 사실을 팀원들에게 알리기를 주저했지요. “어차피 인턴이고, 나 때문에 프로젝트가 지연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두려움이 컸습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사수나 동료들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오히려 더 원활한 협업이 가능해졌습니다.
한 번은 주말에 감기 기운과 함께 심한 무기력감이 찾아와 월요일 출근이 불투명해 보이던 적이 있었습니다. 망설임 끝에 사수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데, 내일 오전까지 회복될 수 있을지 불확실합니다. 혹시 늦게라도 출근이 가능하다면 미뤄줄 수 있을까요?” 하는 내용이었지요. 한국이었다면 “인턴이 무슨 월요일부터 사정타령이냐”라는 핀잔이 돌아올까 싶어, 연락 자체를 더 꺼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스탄불 사업부에서는 “몸이 아프면 쉬어야죠. 오후에 괜찮아지면 그때 나오세요. 혹은 재택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도 있으면 알려주세요”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 회사, 이 팀과는 마음을 열고 일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렇듯 팀 내에서 제가 장애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공유한 뒤부터는, 협업 방식 역시 자연스럽게 제 몸 상태에 맞춰 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집중도가 높은 날이면 보고서를 몰아서 작성하고, 오후에 에너지가 떨어지는 때에는 간단한 회의록 정리나 자료 번역 위주로 일정을 짰습니다. 반대로 컨디션이 저조한 날이 이어지면, 팀장님이 “오늘은 좀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어때요?”라고 조언해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매번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 혼자 이 상황을 극복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 부분 해소되었습니다.
동료들의 이해도 커다란 힘이 되었습니다. 팀원 중엔 제가 조울증을 지니고 있음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오히려 “나도 가끔 우울증 기운이 있을 때가 있어요. 인간이니까 당연하지 않나요?” 같은 말을 건네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이런 태도가 정말 진심일까?” 의심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은 제가 안정을 찾도록 실제로 배려해주었습니다. 가령 누가 갑자기 바쁜 업무를 떠맡겨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먼저 “이 일, 지금 감당 가능해요?”라고 물어봐줬습니다. 그 작은 한마디가 주는 위안은 생각보다 컸습니다. “내가 컨디션이 괜찮다고 알려주면 그제야 업무를 분배하는구나. 여기서는 장애가 ‘무시’되어 진행되지 않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죠.
이런 식으로, 제 일상은 몸 상태와 업무 리듬을 맞춰가며 조금씩 조정되었습니다. 매주 주말마다 제가 스스로에게 묻곤 했습니다. “이번 주는 어떤 점이 힘들었고, 어떻게 해결했지? 다음 주에는 그 방법을 좀 더 개선할 수 있을까?” 이런 자기 점검은, 장기적으로 제 기분이나 체력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때로는 아예 시간을 내어 전문 심리 상담사와 온라인으로 짧은 세션을 진행하거나, 한국의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며 정서적 지지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몸 상태에 따라 융통성을 발휘하는 과정이 늘 순탄한 건 아니었습니다. 팀 프로젝트가 막바지에 몰릴 때, 다들 야근을 하면서까지 목표 달성을 위해 뛰어들면 저도 제 한계를 시험하듯 몸을 혹사시키곤 했습니다. 그러다 다음 날 쓰러지듯 쉬어야 하는 상황이 오면,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조차도 “혼자 자책하지 말라”는 동료들의 말에 다시 한번 구원받았다고 할까요. “네가 아니었으면 우리도 여기까지 못 왔어”라는 말 한마디가, 제가 ‘장애인’임을 부정하지 않고도 팀에 기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결국, 장애와 공존한다는 건 제게 ‘어떻게 몸을 돌보면서도 일의 성취를 해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과 매일같이 마주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탄불의 팀원들은 그런 저를 돕는 동행자 역할을 해줬습니다. 만약 회사가 “열심히 일할 수 있어? 없으면 나가”라는 식으로 일방적 태도를 취했다면, 저는 금세 한계를 느끼고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몸 상태를 존중해주고, 오히려 다양한 시각과 성격을 팀의 자산으로 봐주는 그들의 태도 덕분에, 저는 이전보다 더 성숙해진 형태의 협업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몸 상태가 들쭉날쭉할 때마다 괴롭고 서글펐지만, 그 과정에서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훨씬 유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가 있으면 불편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장애가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길이 있구나”라는 대답으로 바꾸게 되었달까요. 이 경험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조직에서 일하든, 제가 ‘장애와의 공존’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않을 수 있는 든든한 기반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