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자라고 불러주세요.

“아, 저 사람 진짜 정신병자 같네.”

by Youhan Kim

“아, 저 사람 진짜 정신병자 같네.”

거리나 인터넷 댓글 창에서 한 번쯤 들어보셨을 법한 말입니다. 재미로, 혹은 욕설 대용으로 던지는 말이죠. 무심코 쓰는 이 표현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가 될까”는 딱히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뭐 ‘정신병자’쯤은 그냥 욕 비슷한 말 아닌가요? 하지만 저는 오늘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정신병자라고 불러주세요. 그럼 좀 더 속이 후련하시나요?


저는 양극성 장애, 흔히들 조울증이라 부르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사이코패스’도, ‘분열증’도, ‘맹목적 피해망상’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세상 많은 분들은 “아, 너 정신병자잖아”라고 정성껏 분류해주시곤 하죠. 감사합니다, 덕분에 정확히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는 차차 잊어버리고 그저 ‘정신병자’라는 꼬리표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게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오늘은 그 꼬리표가 딱히 싫지도 않습니다. 왜냐고요? 아무리 제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점잖게 말해봐야, 인터넷 댓글 창이나 술자리에서 “정신병자”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제가 무슨 희귀 난치병이든, 감기에 걸렸든, 조울증이든, 우울증이든 다 거기서 거기니까요. 그렇다면 이왕이면 _정신병자_라는 멋들어진 딱지를 더 당당하게 붙이고 다니는 건 어떨까 하는 심사가 듭니다. 그래야 사람들이 그 단어를 욕설이나 비하 목적 이상으로 생각해볼 여지라도 생길 테니까요.




1. 정신병자, 욕으로 제격 아닌가요?


먼저, 사람들이 왜 “정신병자”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지 한 번 짚어봅시다. 대체로 분노경멸, 혹은 비정상적 행동에 대한 반감을 표현하고 싶을 때 쓰죠. 예를 들어, 길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상대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저 정신병자 아니야?”라는 말을 던지면 쉽게 해결됩니다. 상대를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어버리니까요.


그렇습니다, 정말 편리한 단어죠. 두 글자만 붙여서 “정신-병자” 하면, 그 사람을 정상 범주 밖으로 순식간에 추방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사회적으로도 늘 어느 정도 쓰여 왔으니, 참나, 이 단어 왜 쓰면 안 돼? 라고 생각할 수 있죠. 애초에 히스테리, 정신 이상, 또라이라는 표현 모두가 얼마나 오래전부터 일상적으로 쓰였습니까. 그런데 가만 보면, 결국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불편한 상대를 그런 단어로 몰아붙임으로써, 상대를 “정상인”이 아닌 “괴이한 존재”로 격하하려는 건 아닐까요?


한편으로 그 말은, 의학적으로는 정확한 지표를 전혀 담지 못합니다. 우울증, 양극성 장애, 조현병, 불안 장애, 공황 장애 등 정말 다양하고 구체적인 분류가 있는데, “정신병자”는 그 모든 걸 한 데 싸잡아버리는 마법 같은 단어입니다. 듣기엔 “뭐, 그냥 또라이” 정도로 해석하시면 무방하겠네요. 괜찮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그 정도 표현은 흔하잖아요?




2. 내 마음속에서 춤추는 고통들


정신질환이라는 걸 안고 살다 보면,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내가 정말 이상해졌나?” “내가 괜히 민폐를 끼치고 있나?” 하는 식으로요. 조울증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어느 날은 기운이 솟구쳐서 “오늘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 싶은데, 다른 날은 온 우주가 무너진 것처럼 침대에서 기어나오지도 못합니다. 제발 누구든 좀 도와달라고 외치고 싶지만, 말 한마디 꺼내기조차 쉽지 않을 때가 많죠.


그런 나날이 쌓이다 보면, “사람들은 날 정신병자라고 부를지도 몰라” 하는 공포가 생깁니다. 근데 참 재미있는 건, 우리가 피하려고 애쓰는 그 단어가, 정작 화가 난 상대의 입에서는 너무 쉽게 나온다는 겁니다. “너 미쳤어?” “와, 완전 정신병자네!” 뭐 이런 식이죠. 그러면 저는 다시 움츠러듭니다. “아, 내가 정말 사람들에게 불편만 주는 존재구나.” 자책과 무력감이 겹쳐옵니다.


근데, 오늘은 좀 달리 생각해보려 합니다. “그래, 마음껏 부르고 싶으면 불러봐. 정신병자라고.” 그럼 적어도 상대는 내가 비정상이라 믿고 있으니, 뭔가 ‘이해해보겠다’는 시도라도 해주겠죠? 혹시나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하지?”라는 지적 호기심이라도 일으킬지 누가 압니까. 어차피 아무 설명도 없이 “저 사람은 또라이다”라고 몰아가면,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잖아요?




3. 나는 정신병자다, 그래서 뭐?


제가 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하면, 열에 아홉은 어색한 미소를 띠며 한 발짝 물러섭니다. “아… 네… 힘드시겠네요…” 하며 대화 끝. 혹은 “그거 그냥 기분 문제 아니야?”라며 남 일 보듯 하기도 합니다. 사실 심신이 안정된 상태에서는 별일 아닌 듯 보이지만, 조울증은 일상에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하루가 좋으면 하루가 싫고, 한 번 컨디션이 바닥나면 며칠이고 방에서 나오지 못하는 경우도 있죠.


그렇다면 그들은 제가 주말 내내 침대에 누워만 있는 걸 보면 무어라 부를까요? “저기, 이 사람 원래 좀 게을러요. 정신병자인 것 같아요.” 라고 할 수도 있겠죠. 네, 그렇게 부르는 편이 아예 ‘조울증인데 잠시 악화 상태’라고 판단하기보다는 훨씬 수월하겠죠. 의학적 이해 없이, 그냥 욕하듯 던지는 게 편하니까요.


놀랍게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저는 “그래, 정신병자면 어때?”라고 비꼬는 태도를 갖게 됩니다. 일종의 자조 섞인 자기방어 기제랄까요. 차라리 내가 먼저 “나 정신병자 맞는데?”라고 선언해버리면, 상대가 사용할 수 있는 공격 무기를 살짝 무디게 만들 수 있다는 묘한 쾌감도 있습니다. “그래, 뭐 내가 좀 이상해. 근데 어쩌라고?”

이걸 ‘자기 수용’이라고 이름 붙이면 굉장히 고상해 보이겠지만, 사실은 제게 달린 ‘빨간 딱지’를 스스로도 부정할 힘이 없기에 나오는 처절한 방어 수단입니다.




4. 단어가 품고 있는 폭력성


이 부분이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마구잡이로 던질 때, 그것은 ‘상대를 비정상적인 존재로 몰아붙이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종종 망각합니다. 그들은 그저 상대를 욕하고 싶을 뿐일 테고, “미친놈”이나 “또라이” 같은 표현을 쓰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여길 겁니다. 하지만 정신질환을 직접 겪고 있거나,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는 이들에게는 그 단어가 콕콕 박힙니다. 마치 “너는 정상인이 아니야”라고 거울을 마주하게 만드는 꼴이니까요.


게다가 이건 단순 혐오 발언이 아니라, 실제 정신질환자들이 사회에서 겪는 낙인(stigma)을 더욱 강화합니다. “정신병자 = 머리가 이상한 사람, 위험한 사람,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사람”이라는 공식으로 굳어지면, 취업부터 사회적 관계, 심지어 의료 혜택까지 모든 면에서 불이익을 볼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요구하고 싶습니다.

“정신병자라고 부르려거든, 제발 조금만 더 신중하게 이유를 설명해주시면 안 될까요?

왜 그런 단어를 써야만 했는지, 그게 어떤 의도였는지 알려주세요.”


하지만 보통 그런 진지한 대화를 원하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그냥 욕하고, 비난하고, 끝. 다음 뉴스 기사나 다음 도로 위 시비를 찾아 떠나겠지요.




5. 우아하게 욕하기 (혹은 포기하기)


그래서 결론은, 정신병자라고 불러주세요. 네, 바로 이 말입니다. 누군가 얄밉게 굴어서 화가 나고, 그 대상을 온갖 악담으로 몰아붙이고 싶다면, 굳이 저를 포함한 정신질환자들을 싸잡아 “저거 정신병자네”라고 하지 마시고요. 아, 앞서 “불러달라”면서 왜 또 막으려고 하느냐고요? 사실은 저도 반어법을 쓴 겁니다. “부르고 싶다면 불러라, 대신 그 뜻이 어떤 건지 충분히 알고 불러라”라는, 약간의 속내가 담겨 있죠.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정신병자라는 말이 재미있잖아”라고 답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늘 ‘재미있는’ 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비수가 될 수 있고, 혐오 표현이 될 수 있지요. 차라리 “이해 안 되는 사람”이라든지,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같은 조금 더 구체적인 욕(?)을 하시면 어떨까요? 그렇게 하면 적어도 정신질환자를 싸잡아놓는 폭력성은 조금 덜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6.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실 우리 사회가 제도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정신질환을 온전히 수용하고 있지 못하는 건, 단순히 언어 문제만은 아닐 겁니다. “정신병원 갔대”, “약 먹는다더라” 같은 소문만으로도 사회적 낙인이 찍히고, 취업이나 인간관계에서 배제되는 예는 수도 없이 많죠. 그렇다고 용기를 내어 “사실 난 치료를 받고 있어요”라고 고백하면, ‘잘못 건드리면 무슨 일이라도 날지 몰라’라는 식으로 피하는 이들도 있고요. 여기서 “정신병자”라는 말은 그저 사람들이 아주 쉽게 선택하는 일종의 지름길—혐오와 무지를 압축한 단어—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단언컨대, “정신병자”라는 말이 이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지진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저 조금 더 조심스럽게 쓰이거나, 아니면 저 같은 사람이 스스로 재appropriation(재전유)해서 “그래, 난 정신병자다!”라며 당당하게 선언하는 과정을 거칠 뿐이겠죠. 불편한 진실이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7. 마치며: 그래도 말을 뱉을 때 한 번쯤은 생각해보자


이 아티클이 10분간 당신의 시간을 빼앗았다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이 누군가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야, 너 정신병자 아니야?”라고 할 때 조금이라도 멈칫해주길 바랍니다. 나와 다른 이가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할 때, 굳이 “정신병자”라고 욕을 던지는 대신, “대체 무슨 이유로 저럴까?” 하고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제가 정신병자라고 불리게 된다면, 이제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맞아요, 제가 정신병자입니다. 그런데 어떤 정신병자인지 알고 계시나요? 양극성 장애라고 들어보셨나요?”

이걸 계기로 상대가 조금이라도 제 상태나 병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면,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질 겁니다. 그럼 서로 _‘그래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어떻게 다르게 대화할 수 있는지’_를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그저 욕을 하고 싶어서 쓴 말이겠지만요. 그래도 기대해봅시다. 세상을 바꾸는 건 언제나 작은 의문과 사소한 생각에서부터 시작하니까요. 욕하고 싶어서 던진 말이, 때론 욕먹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되짚어보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부디, 이 글을 읽은 분들이라면 “정신병자”라는 말을 정말 쉽게 꺼내지 않길 바랍니다. 혹 꺼내더라도, 그 말이 상대를 얼마나 할퀴고 상처 낼 수 있는지, 누군가를 비정상의 틀에 가두는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한 번쯤 떠올려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면, 저 같은 ‘진짜 정신병자(양극성 장애 환자)’가 세상에 좀 더 편하게 숨 쉴 수 있을 테니까요.


부디, 제발 저에게 “정신병자”라고 부를 때는 “내가 잘 모르고 있지만 혹시나 그 사람에게 상처가 되진 않을까?” 하고 한 번쯤은 멈춰주세요. 그래주신다면, 저도 오늘 이 말을 당당히 되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맞아요. 정신병자라고 불러주세요. 다만, 그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한 번쯤 생각해보시면 더 좋겠네요.”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오늘은 ‘정신병자’라는 단어를 빌려 조금 매콤한 풍자와 비판을 해봤는데요, 저도 덕분에 마음이 한층 후련해진 기분입니다.

앞으로는 모두가 서로를 좀 더 솔직하고 건강하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그날이 분명 오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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