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작문] 나는 오늘 해고를 통보받았다.

제한 시간 1시간 내 하나의 글을 완성해 보는 [1시간 작문]

by 유해나
Q. 나는 오늘 해고를 통보받았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에서 사장을 만났고 1분 30초 후 해고는 번복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상상력을 발휘해보라.

'유해나 님. 그동안 KBS를 위해 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게 되든, 당신의 앞날이 빛나길 기원하겠습니다.'


나는 몇 번이나 읽어 이제는 외운 그 문구를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KBS에서의 15년이 종이 한 장으로 끝나다니, 참 허무하다. 나는 커다란 박스에 내 물건을 담았다. 그 커다란 박스를 다 채울 수 없는 내 15년이 안타까워, 애꿎은 박스 안을 몇 번이나 정리했다. 고개를 들어 동료들을 바라보니 하나같이 나를 외면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다고! 갑자기 분노가 치민다. 내가 해고당한 이유는 내가 연출한 예능에 삽입된 음악이, 현 정부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예능뿐 아니라 드라마, 뉴스까지 개입하여 자신들에게 불리한 장면, 대사, 음악을 모두 통제하고 있다. 나는 예능의 한 장면을 더욱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삽입된 음악 때문에 내가 해고되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인 것을 어떡하겠는가.


"나를 유혹하지 말아요, 꽃은 꽃이 아닌 것을. 진실은 저 너머에-."


박스를 안고 나를 해고시킨 그 노래를 흥얼거리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가벼운 박스가 인생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그때, 사장님이 급하게 뛰어오시더니 엘리베이터에 타셨다. 사장님은 나를 보시곤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셨다.


"흠, 흠. 내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 거 참, 오늘이 아내와 결혼 25주년 기념일인 것을 깜빡했지 뭔가."


사장님 답지 않게 변명을 늘어놓으셨다. 많이 어색하신가 보다. 내가 해고된 것은 사장님 탓이 아닌데. 사장님이 내 눈치를 보시더니 어디론가 전화하셨다.


"여보! 나 지금 가고 있어. 응? 아, 갑자기 방송 사고가 나서. 미안해, 여보."


많이 늦으셨는지 사장님이 당황하며 말을 쏟아내셨다.


"여보, 그때 기억나? 25년 전에 우리가 만났던 레코드 상점. 당신하고 내가 같은 음반을 집었었잖아. 그때 흐르던 노래 기억나? 나를 유혹하지 말아요, 꽃은 꽃이 아닌 것을-."


사장님이 갑자기 미소를 지으며 노래를 부르셨다. 응...? 저 노래는...?


"진실은 저 너머에, 가시나무 아래에-. 나를 유혹하지 말아요..."


사장님은 기분 좋은 듯 계속 노래를 부르셨다. 그러다가 휴대폰에서 들려오는 음성에 이내 당황하셨다.


"응? 노래 제목이 뭐냐고? 여보, 내가 노래를 불러줬음 된 거지. 제목이 중요해? 가시나무 아래에, 그 소녀는 앉아서-. 당신도 기억나지?"


사장님은 당황해하며 식은땀을 흘리셨다. 휴대폰 너머까지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민망해서 엘리베이터 버튼만 쳐다보았다. 왜 중간에 아무도 타지 않는 거지?


"아! <나를 유혹하지 말아요>?.... 아, 농담이야, 여보. 가시나무 아래에, 그 소녀는 앉아서 나를 부르지요-. 여보, 나 잘 부르지?"


나는 사장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진실이라는 소녀는>입니다."


그러나 사장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나는 박스를 내려놓고 사장님의 팔을 붙잡고 사모님께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히 속삭였다.


"<진실이라는 소녀는>입니다, 사장님."


그때, 띵- 하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고, 사장님의 얼굴에도 놀람과 안도의 빛이 나타났다.


"여보! <진실이라는 소녀는>! 맞지? 당신 이름이랑 똑같은 소녀 이름!"


사장님은 기뻐하며 낮게 소리를 지르셨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내리는 사장님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얼른 내려놓은 박스를 들어 올렸다. 그런데 사장님이 내리려던 나를 다시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 넣으셨다.


"자네! 진실, 아니,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내 생명의 은인일세. 내 아내가 성질이 아주 불같다고. 어딜 가나? 얼른 다시 올라가서 진실이 담긴 예능을 만들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응? 여보, 듣고 있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멍한 기분이다. 뭐지? 나는 홀린 듯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고, 이내 엘리베이터가 올라갔다. 머릿속에서 노랫말이 계속 맴돌았다.


'그 소녀는 앉아서, 가시나무 아래 앉아서, 이름이 진실이라고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