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어느 계절 위에 있나요

프롤로그 : 내 인생의 사계절

by 유희로운

1992년 3월, 봄이 시작되기 전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던 때에 태어난 나의 나이가 어느덧 서른넷이 되었다. 곧 서른다섯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 시점, 하고 있는 프랑스어 강사 일도 어느정도 안정권에 들어섰고, 주위에 나를 있는 그대로 올곧이 사랑해 주는 이들이 있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고 있는 현재 시점, 문득 나는 지금까지의 내 삶을 적당한 거리감으로 조망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초 기억이 있는 내 다섯 살 선교원 시절부터 시작해, 엄마가 하라는 대로 지내며 모범생 생활을 했던 초등학생 시절, 내 자유의지를 찾아 나가는 삶을 추구하기 위해 소심하게나마 분투했던 나의 중/고등학생 시절, 그후 서울 전문대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좋아하지만 앞이 불투명한 공부를 했던 때, 어느 우연한 만남의 계기로 프랑스어를 공부해 6개월 만에 중급 단계 시험에 통과했던 순간을 거쳐, 나의 프랑스 파리 생활 5년의 시기까지. 중/고등학교를 급식 먹으러 다니냐는 부모님의 꾸짖음과 함께 나름의 반항기를 통과해 오며, 2011년과 12년 두 번의 수능을 다 실패하고 낮은 자존감과 불안함으로, 그렇지만 꾸준히 잠재적인 능동성과 당당함으로 삶을 살아 내던 내 20대 초반의 시기까지.


각각의 굵직굵직한 나만의 시대들을 나만의 사계절로 그려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든 건, 지금까지의 내 삶에 봄/여름/가을/겨울이 골고루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누구나 다 각자만의 사계절 이미지가 있겠더라만, 나에게 있어서 우선 봄의 키워드는 '푸릇푸릇' '생생함' '또 다른 시작이 주는 설렘과 불안함'이다. 이를 내 인생에 대입해 보니, 나의 5년 간의 프랑스 생활이 봄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2017년, 내 나이 스물여섯 7월에 처음 파리 샤를드골 공항에 도착해서 처음 택시를 타고 파리 14구 기숙사를 찾아 가던 때부터, 코로나와 자가격리가 번지던 시기에 파리7대학 석사를 성공적으로 마치던 순간의 내 모습은 마치 봄과도 같았다.


여름. 습하고 더운, 견디기 힘든 날씨 속, 도시공원 서늘한 그늘이나 촌캉스 평상 위에 앉아 시원한 과일화채로 입가심하며 내리쬐는 햇볕을 사이사이 비춰 내려 주는 나뭇잎들의 그 청량함. 이는 곧 내 20대 초반, 파리로 넘어가기 전 열심히 살아 냈던 서울살이와 닮았다. 앞으로 무엇을 하며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 많던 때였지만, 그럼에도 20대만이 보여줄 수 있는 젊고 어린 시절의 그 명랑함은 사라질 수 없기에.


그렇다면 가을은 어떨까. 내게 있어 가을은, 선선히 부는 바람 따라 길을 걷는 사람들 또한 편하게 쓸려가듯 살아가게 만드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나둘씩 떨어지는 낙엽들의 쓸쓸함이 공존하는 계절 같다. 그리고 내 소심한 반항기 이전의 초등학생 시절과 가을은 서로 맞닿아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진다. 부모님과 학교 선생님 말씀은 잘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 아래, 학교 끝나면 부모님 시키는 대로 늦게까지 학원 다니고, 내가 원하는 옷과 머리 스타일을 할 수는 없었지만 깔끔하고 정돈했기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다녔던, 그렇지만 6학년이 되면서부터 서서히 내 자존감은 제대로 형성되지 않고 있음을 어렴풋이 깨달아 가던, 그때 그 시절의 어린 내 자아.


겨울은 급격한 기온 하강으로 쓸쓸함을 넘어 쌀쌀함이 한껏 느껴지는 시기이지만, 동시에 몸이 움츠러 들면서 잠에 드는 시간이 주는 쉼으로부터 오는, 또 하나의 인생의 철학이 발전하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반항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초등 6학년 2학기 시절을 지나, 중/고등학생 때의 나는 느닷없이 부모님께 대학 안 가고 방송작가를 하겠다며 선전포고도 해 보고, 때로는 학교에서 자발적으로 친구를 만들지 않기도 했던, 냉랭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생각 없이 저지르는 아이는 다행히 아니었음을, 한 사람이 태어난 이상 그 사람만의 개성으로 살아낼 수 있는 삶을 살다 가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나이에 비해 조금은 어른스러운 삶의 가치관이 조금씩 확장되어 가던 때였음을.


이쯤 되면 이제 현재 내가 살아내고 있는 삶의 모습은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보다 가까울까, 생각에 잠기게 된다. 네 계절 중 단 하나의 계절로 명확히 정의내려질 수 있을까. 혹여나 여러 계절들이 뒤섞여 있거나, 아예 그 어떠한 계절에도 속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


더 나아가 이제 이 글을 읽어 내려 가고 있는 당신에게도 질문을 돌려 보고 싶다. 당신 삶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당신이 바라는, 혹은 당신이 예상하는 미래의 인생은 어떤 색의 계절을 닮아 있을까.


바로 이 지점에서 나의 브런치 스토리는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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