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 난 듀얼 모니터

별 볼 일 없는 오늘이 더없이 좋아라.

by 유희

여느 때처럼 컴퓨터 전원을 켜고 책상에 앉는데 모니터 하나가 깜깜한 채 먹통이다.


내 책상 위에는 모니터가 두 대다. 여러 개의 창을 띄워 놓고 작업하기에 편해 컴퓨터 본체 하나에 두 대의 모니터를 연결해 듀얼 모니터로 쓰고 있는데 그중 한 대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아 큰일 났다 이거. 어떻게 한담.' 사방이 꽉 막힌 동굴에 빠진 듯 잠시 앞이 까마득한 순간. 컴퓨터가 말썽을 부리면 잘 알지도 못하는 컴퓨터 연구하느라 한참을 끙끙거려야 하는 사람이라 예상되는 난관에 머리부터 지끈거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아무 문제없었는데 멀쩡하던 모니터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당최 불가사의하다. 모니터를 옮긴 것도 아니고, 케이블을 건드린 것도 아니고, 그야말로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한 거라고는 어젯밤에 아무 탈 없이 잘 사용한 후 '시스템 종료'를 클릭해 끄고는 오늘 아침 일어나 컴퓨터를 켜려고 전원 스위치를 누른 게 다다.


아무것도 안 했다고 불만 품고 나랑 한번 해 보자는 건가. 밤새 우두커니 앉아 있다 보니 심심해 존재감 한번 어필해 보자는 건가.


갑자기 파업을 선언한 모니터 사정은 내 알 바 아니지만 그 사정의 결과가 가져온 파업 상태는 지극히 '내 알 바'다.


불행 중 다행인지 그래도 두 대의 모니터 중 한 대는 멀쩡해 당장 컴퓨터를 아예 쓸 수 없는 지경은 아니니 말 안 듣는 한 대는 모른 척하고 그냥 이대로 써 보자 싶다. 고장 난 한 대를 고치려 골치 썩어야 하는 대신 눈 질끈 감고 일단 방치해 두기로 결심한다.


'언제부터 듀얼 모니터를 썼다고. 예전엔 모니터 한 대로도 잘만 썼어.' 다시 적응해 쓰면 된다고 최면을 걸어 본다.


그러고는 또 금방 '듀얼 모니터로 쓰려고 새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건데.' 제값에 해당하는 수명이 다하도록 우려먹지 못함을 아까워하느라 모른 척하기로 한 깜깜한 모니터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이랬다저랬다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는 생각에 화면에 깜박이는 커서는 제자리에서 멈춘 지 오래다.


날아드는 잡념들을 무시한 채 그대로 써 보려 하는데 듀얼 모니터로 해 오던 작업을 모니터 한 대로만 하자니 영 불편하다. 참고자료를 다른 한쪽 모니터에 띄워 놓고 편히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한 모니터에서 빈번히 창을 바꿔가며 보자니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불편하다가 편해지면 금세 적응하는데 편했다가 다시 불편해지는 건 못할 짓이다. 편한 달콤함을 몰랐으면 모를까 한 번 알아버린 달콤함을 내뱉기가 어렵다.


결과적으로 고장 난 모니터를 해결하지 않은 채 컴퓨터를 쓰는 건 실패다. 오른쪽 시야에 계속 걸리는 깜깜한 먹통 화면이 도무지 신경에 거슬려 하는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헤어진 임도 아닌데 애처롭게 줄곧 나를 붙잡는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모니터를 있는 힘껏 째려보다가 '그래. 내가 졌다.' 두 손 들고 항복한다. 마침내 고장 난 모니터부터 해결할 맘을 먹는다.


다행히 웬만한 정보는 인터넷에서 대부분 찾아볼 수 있는 시대 인프라 덕에 혼자서도 해결을 시도해 볼 법하다. 포털 사이트 창에서의 끝없는 검색이 시작된다.


우선, 모니터 케이블이 빠진 건 없는지 본체와 연결이 잘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란다. 살펴보니 OK. 문제없다.


다음, 모니터가 안 될 때는 모니터 자체 문제보다는 컴퓨터 본체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으니 모니터 문제인지 본체 문제인지부터 파악하란다. 모니터를 노트북에 연결해 보니 잘만 된다. 모니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걸로.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이제 막히기 시작한다. '뭐가 문제일까.' 다시 검색을 시작한다. 컴퓨터 본체 케이스를 열어 먼지 제거를 해주라고 해서 드라이버와 나사랑 한판 씨름 벌여가며 컴퓨터 청소를 해줬는데도 도통 해결될 기미가 안 보인다.


이쯤 되면 정말 지친다. 확 그만둬 버리고 싶다가도 여태껏 들인 시간과 공이 아까워 다시 검색창을 띄웠는데 '어? 이거인가?' 싶은 내용이 있다.


내 컴퓨터 본체에 모니터 케이블이 연결돼 있는 상태로 보면 내장 그래픽과 외장 그래픽 카드를 동시에 사용하는 경우란다. 외장 그래픽 카드를 사용하게 되면 내장 그래픽 카드는 자동으로 비활성화되기에 PC의 바이오스 설정에 들어가 내장 그래픽 카드를 활성화시켜 줘야 된단다.


시키는 대로 바꿔 주고 다시 컴퓨터를 부팅하니 깜깜하던 모니터에 파란 윈도 화면이 뜬다. 매일같이 보던 윈도 바탕화면이 이리도 반가울 수가. 하루 종일 나를 옭아매던 갑갑함이 드디어 풀리는 빛나는 순간이다.


갑자기 왜 내장 그래픽 카드 설정이 필요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동안은 별달리 설정해 주지 않고도 잘 굴러갔는데.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지만 그런 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해결된 기쁨을 만끽하면 그뿐이다.


작동하지 않는 모니터를 고치느라 온종일 진땀을 빼면서 아무 탈 없이 무난한 하루가 얼마나 좋은 건지 새삼 실감했다.


오늘 내 모니터에 생긴 일처럼 잘 돌아가던 게 돌연히 어긋나는 것만큼 난감한 일이 없다.


갑작스레 생긴 변수는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이 일으키는 파문처럼 매끄러운 내 일상을 오돌오돌 거칠게 만들어 버린다. 별 탈 없던 포장도로가 자갈 돌멩이 걸리적거리는 흙투성이 비포장길로 변모한다. 원래대로라면 벌써 갔을 길을 덜컹덜컹 엇나가다 언제 갈지 모르겠다. 할 일들이 연이어 마구 펑크 나기 시작한다. 생활 전체가 삐끗거리기 십상이다.


예상치 못한 삐끗거림은 늘 나를 경악시킨다. 의외의 변수에도 느긋이 웃어 주며 유연히 대처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늘 발을 동동거리며 맘을 졸이는 게 현실이다.


오늘따라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난히 굴러가 주는 모든 게 다 예뻐 보인다. 온통 삐끗거림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낸 데 대한 반대급부이리라. 삐끗거리지 않고, 펑크 나지 않고, 평범히 무사한 매일매일이 참 값지다.


별 볼 일 없는, 무사하고 안녕한, 고장 나지 않은 오늘들에 감사한다. 별 볼 일 없는 오늘이 곧 더없이 좋은 오늘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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