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룻밤 새 만개한 자두꽃

느닷없는 좋은 일에 곱절 뛰는 기쁨값

by 유희

잠이 덜 깬 아침 씻으려 수건을 챙겨 들고 반쯤은 잠에 묻혀 몽롱히 욕실을 향하는데 엄마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나를 불러 세운다.


"얼른 이리 와 봐. 신기한 일이 있다."


별다를 것 없는 보통의 아침에 뭐 얼마나 유난한 일이 있으랴 싶어 흐느적대며 시큰둥히 발걸음을 옮기니 성질 급한 엄마가 기다리기 답답했는지 후다닥 내 손을 낚아채 베란다 창문 앞으로 잡아끈다.


베란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우리 집 텃밭. 크지도 않은 텃밭에 뭘 그리도 옹기종기 심어 놨는지 날마다 많은 뉴스거리가 생기는 엄마의 애정 대상 1호 공간이다.


들뜸을 한가득 담은 엄마의 손가락이 가리킨 게 바로 그 텃밭. 정확히는 텃밭 한편에 서 있는 하얀 눈꽃 입은 자두나무다.


'어? 잘못 봤나?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꽃이 없었는데?' 잠결에 내가 제대로 본 게 맞나 싶어 눈을 끔벅거려 보는데 "자두나무에 꽃이 싹 다 피었다. 신기하제?"라는 엄마 말이 정말로 꽃이 핀 게 맞다는 사실을 여지없이 확인시켜 준다.


어제까지만 해도 분명 칙칙한 나뭇가지였는데 하룻밤 새 어여쁜 하얀 꽃들로 가득하다. 별 볼 일 없던 텃밭의 엑스트라가 화려한 하이라이트 받는 주인공이 되었다. 환하게 빛나는 눈부신 생명체에 정신이 번쩍 깬다.


카프카는 그의 작품 『변신』에서 멀쩡한 한 인간을 하룻밤 새 벌레로 둔갑시켰는데 우리 집 텃밭 자두나무는 하룻밤 새 어여쁜 꽃을 피워 고운 색시로 변신했다.


"참 별일이다. 원래 꽃이 저리 피는 게 아니거든. 한 나무에 꽃이 핀 것도 있고 안 핀 것도 있고 섞여 가며 피는 거거든. 꽃망울이 앉아서 일찍 피고 늦게 피고 하다가 점차 다 피는 거지 저렇게 한꺼번에 전부 다 피어 버리는 경우는 또 첨 본다. 자 뭐 잘못 먹은 거 아이가."


말은 그러면서도 자두나무가 뭘 잘못 먹었든 말든 하룻밤 새 깜짝 변신한, 만개한 자두꽃 덕분에 오늘 아침 엄마의 얼굴에도 나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었다. 우리는 이게 웬일이냐며 창가에 서서 자두꽃 구경하느라 한참 수선을 피웠다.


느닷없는 만개로 큰 기쁨 준 우리 집 자두나무처럼 느닷없는 좋은 일을 만날 때 기쁨값은 곱절로 뛴다.


사람 마음이란 게 참 간사해서 똑같이 좋은 일인데도 일찌감치 예상된 일은 기쁨값이 적다. 오히려 미리 높은 기대치를 갖다 보면 분명 좋은 일임에도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에 기뻐하지 못하고 실망하게 되기도 한다.


반면 예상치 못했는데 뜻밖으로 생긴 좋은 일은 참 큰 기쁨을 준다. 사람들이 왜 깜짝 이벤트라는 걸 할까. 전혀 생각지 않다 갑작스레 생긴 좋은 일이 더 큰 기쁨을 주고 강하게 각인되기 때문일 테다.


느닷없이 요술처럼 피어난 자두꽃 덕에 사는 기쁨이 두 배가 된 오늘이다. 이런 느닷없는 기쁨이 자주 생기기를, 누군가에게 이런 느닷없는 기쁨을 종종 안겨주는 이로 살 수 있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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