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하는 여행은 즐겁지만
공항에 간다는 것은 먼 거리를 날아간다는 것.
흔하지 않은 기회와 시간의 허락은 우리를 설레게 한다. 날이 갈수록 더해지는 행복한 기다림 끝에 활주로를 내팽개치고 날아오를 때, 이별은 슬프지 않고 다가올 만남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몇 달 전부터 여자친구는 제주 여행을 꿈꾸며 관직의 혜택으로 콘도와 호텔, 리조트를 싼 가격에 갈 수 있다고 제주도 구석구석을 훑더니 기어이 일을 만들어 내고 말았다.
2023년 5월 5일 연휴를 맞아 제주의 한 리조트가 한 달 전 예약 되고, 5월 5일 오전 10시 15분 비행기표가 예매됐다.
그런데 5월 3일부터 제주에 큰비가 내리고 있다. 내일이면 그치겠지, 생각했지만 5월 4일도 비는 내리고, 급기야 호우 경보까지 발효됐다. 5월 5일이 되는 00시 뉴스에서도 비가 그친다는 말은 없고 비피해만 말하고 있다.
밤일을 마치고 부랴부랴 달려 여자친구가 있는 상도동에 아침 일찍 도착했다.
항공사 홈페이지에는 예정된 항공편이 오전 10시 40분까지 결항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걸 본 나는 이번 여행이 허무하게 끝나 버릴지 모른다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설마라는 기분과 혹시 예비가 있겠지하고,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공항에 가서 표를 취소하고, 혹시라도 예비 비행기가 있는지 확인하여 있다면 기필코 간다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에 둘은 도착한다.
우리 아가씨라고 부르는 여자친구는 자기가 예약하고 기획했던 즐거운 제주 여행이 이번 큰비로 인해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준비도 많이 했지만 기대했던 만큼 사라질 허탈감을 애써 감추며 오빠 어쩌지 하며 자꾸 되묻는다.
결항이라는 말은 한 번도 우리 앞에 나타나지 않았던 단어이며 결항이라는 소리는 뉴스에서나 듣던 그런 낱말이었다. 그런데 우리에게 그런 결항이 우리를 막았다.
창구에 스마트폰 속 항공권을 내밀며 환불한다고 말하자, 결항이 생기면 자동 취소가 되며 환불이 된다고 한다.
그렇구나. 긴 줄의 기다림이 싱겁게 끝나버리고 나는 기대하고 혹시나 했던 말을 했다.
“오늘 갈 수 있는 제주행 비행기가 있나요”?
“네. 3시간 뒤에 예비 비행기가 있어요”
나와 여자친구는 흑색의 얼굴이 화색의 얼굴로 바뀌어 마주보며 고개를 동시에 끄덕였다. 9시에 도착하여 12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며 후미진 곳을 찾아 기다란 의자에 난 눕고 우리 아가씨는 앉아서 시간을 보냈다.
5월 5일 오전 10시 제주도는 호우경보와 주의보는 해제되었지만 바람은 여전히 많이 불고있다. 서귀포에 사는 아는 형님께 물었더니 엄청난 비와 바람이 불었다고 한다. 오늘은 어제보단 덜하지만 그래도 바람은 세다고 했다.
12시 10분 제주행 비행기를 기쁜 마음으로 둘은 탔다. 뒷좌석에서 어떤 젊디 젊은 여성이 새우깡인지 고구마 깡인지 그와 비슷한 과자를 아자작 아자 작 씹는 소리가 조금은 거슬렀지만 들뜬 기분을 상할 정도는 아니었다.
곧 착륙한다고 안내방송한다. 비행기는 높이 떠 있을 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는데 고도를 낮춰 내려가자 비행기가 제법 흔들린다. 좌우로 밀린 듯하고 비포장을 굴러가듯 터덜터덜 거리기도 한다.
바람이 심한지 비행기가 크게 흔들린다. 우리 아가씨와 나는 평소에 느꼈던 비행기의 차분한 착륙이 아닌 심하게 들썩거리는 상황에 불안이 생기기 시작했다.
설마 어쩌려고, 잘 착륙하겠지 하면서 난 생각했다. 갑자기 비행기 오른쪽 날개가 하늘을 향할 듯 기우뚱 한 방향으로 들리고 있다.
현재 상황이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고 심하게 부는 바람과 조종사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비행기의 평형을 유지하려는 조종사의 마음이 우리 승객에게도 그대로 전달되듯 여러차례 비행기는 바람을 타고 춤을 췄다. 그러는 순간 바다가 보이고 다 내려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비행기가 갑자기 한 방향으로 밀리는가 싶더니, 비행기는 활주로 바닥 직전 날개를 상향하고 엔진을 가속하여 날아올랐다.
좁았던 좌석의 불편함을 참고 기다렸는데, 행복한 제주 여행 시작이 후퇴했다. 비행기는 꽤 길게 선회했다. 함께 탄 공간 안에서 공동의 운명에 처한 승객들의 탄식 소리가 들려왔다.
뒷자석에서 아사작 거리며 과자 먹던 젊은 아가씨는 훌쩍훌쩍 울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이 고조되는 그런 효과음 같았다. 30분은 지났을까 곧 착륙한다는 안내 방송이 다시 나오고 비행기는 다시 고도를 낮춰 내려가기 시작한다.
비행기는 또 흔들리고 비행기는 안정을 유지하려 오르내리며 평형을 맞추려 안간힘을 쓴다.
조종이 쉽지 않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동요하지 않고 조종사를 응원하는 것이다. 청백전의 요란한 응원이 아닌 조종사가 잘 내려가기를 잔잔히 기도하듯 응원했다. 내 안에서 죽기 싫어서일까도 쓱 들었지만 설마 죽을 것 같진 않았지만, 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은 들었다.
조종사는 어떤 심정일까. 이런 일은 한두 번은 아닐 것이다. 비행기는 아주 작은 사소한 것에도 큰 사고가 난다는 것을 조종사가 더 잘 알 것이다.
파일럿은 조종대를 우리 두 사람은 마음으로 응원했다. 아마 타고 있던 승객들도 예쁜 승무원들도 그랬지 않나 싶다.
자갈밭이 나오고 비행기가 비틀 거린다. 옆으로 밀리는 비행기를 다시 가다듬어 평형 잡기를 반복했다. 안전벨트를 맨 승객들은 비행기의 움직임에 의자를 꽉 잡게 한다.
출렁이는 파도가 가까이 보이더니 집과 건물들이 내려다 보였다.
“덜커덩 드르륵” 소리를 내며 비행기 바퀴는 활주로를 꽉 잡아 브레이크가 걸리며 속도가 줄어든다. 승객들은 누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박수를 쳤다.
박수친 사람들은 아마 나보다 더 간절히 응원했던 것 같다.
2023년 5월 5일 어린이날 정오 김포공항발 제주행 비행기를 조종하신 A 항공 파일럿과 승무원들께 감사를 전한다.
밤에 일하는 남자와 낮에 일하는 여자는 짜릿하고 스릴 있게 제주여행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