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
앞날을 알 수 있다면 아무 사고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남일처럼 보아왔던 좋지 않은 일이 바쁘게 살아가는 내게 찾아왔다. 시골에 계시는 아버지의 뇌경색이 가족관계증명서에 기록된 이름들을 다 불러냈다.
사이버대학교에서 사회복지학 이론을 마치고, 사회복지 현장 실습을 하던 중이었다. 실습 기관선정부터 시작하여 수 장의 번거로운 서류를 쓰고 시작한 실습. 20일 일정으로 하루 8시간씩 나는 현장 실습을 하고 있었다.
한 주가 지나고 6일째 되는 월요일 오후!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께서 다급한 목소리의 전화가 걸려 왔다. 어머니는 보통 저녁쯤에 전화를 하는데 오늘은 오후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걸려오는 전화에 의아하고 뭔 일인가 싶었다.
“유시나아 느그아부지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의사가 그란디 자식들 다 부르라고 하는디 어째야 쓰겄냐”
“예에! 아부지가요?”
“그래야 의사는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고 한디”
전화기를 든 난, 온몸의 신경이 멈춰버렸다. 오그라드는 심장을 얼레며 막막한 긴 한숨을 폐 속 깊이 삼켜 뱉었다. 무엇 하나 잡아당길 끈하나 없는 바다에 나 혼자 빠져있는 듯했다. 나를 키워준 아버지가 쓰러졌다. 강인한 어머니의 음성도 오늘은 힘없이 슬프게 들렸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 그리고 아버지의 뇌경색, 지금 당장 내려가야 하는데, 여기는 실습현장. 집에서 멀리 나와 있다.
조여 오는 불안감과 덧대지는 초조함이 뭘 먼저 해야 할지 내 머릿속은 허둥지둥 뛰어다닌다.
그래도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나는 실습지도자에게 사정을 알리고, 학교 실습 상담자와 통화했다. 급하게 실습 기간 변경 사유서를 써 메일로 보냈다.
집에 오자마자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날까지 입을 옷가지를 가방에 막 구겨 넣고 핸드폰 충전기를 담았다.
어머니에게는 오늘 밤늦게, 아니면 내일 간다고 말은 했지만, 불안한 내 마음은 나를 고속버스터미널로 이동시키고 있다.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감각 없는 표정으로 난 빠르게 뛰다시피 걸었다.
서울에서 시골 읍내 가는 버스는 하루 3번이지만 내가 서있는 이 자리에 막차는 끊기고 없다.
광주로 가서 택시를 타기로 했다. 광주에 도착하니 밤 10시, 광주에서 장흥 읍내 병원에 들어가니 11시 반이 넘어섰다.
입원실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누워계시고 엄마는 밭일하다 왔는지 갈아입지 못한 옷이 초췌하다. 큰아들인 나를 반갑게 맞이 하지만, 엄마의 힘없는 말속에는 슬픔이 깊이 베여 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내 처지가 원망스러웠다.
"아부지 저 왔어요"
“응 유시니 왔냐?”
눈감은 아버지의 정확한 발음이, 날 순간 안도케 했고, 난 아버지의 다리를 주물러 괜찮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움직이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엄마는 의사가 워낙 큰일 났다며 자식들 다 부르고 준비하라는 말까지 해서 크게 놀랐다고 했다.
지금 아버지는 안정을 취하고 있다. 2주일간 경과를 보면서 주사 치료와 약물치료를 한다고 의사가 말했다. 마비된 곳은 없고 두통도 사라졌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4시간 넘게 달려오면서 걱정했던 마음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일주일간 시골집과 병원을 오가며 아버지 간호와 농사일을 거들었다. 곧 팔순을 앞둔 나이인데도 농사만 짓던 사람이라 일하고, 또 일하신다.
한여름 해가 불처럼 뜨거워져도 부모님은 일을 하신다. 건강 챙기며 소일하며 살면 좋건만 자식 된 자로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지난날 내가 까먹은 작은 사업들과 잘나지 못한 행동들이 희미하게 떠오른다. 알면서 받아준 부모님의 속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여왔다.
오래전 돌아가신 할머니도, 아버지도, 어머니도 그렇다. 소박하고 검소하게 끝까지 자식만을 생각하며 일을 하신다.
그런 나는 도시에서 편리하게 빵사먹고 커피를 마신다. 토요일도 쉬고 일요일도 쉰다.
예측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뇌경색은 형제들 모두를 불러내어 우리를 놀라게 했다. 아버지는 2주간 입원 치료를 받고 그전의 삶으로 돌아와 퇴원했지만, 의사가 처방한 알약을 평생 삼키면서, 주기적 검진을 받는다고 한다.
아버지의 정기 검진보다 나는 이제 아버지를 자주 찾아뵈야겠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첫 번째 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