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지인들과 와인을 몇 잔 들이켰다.
잠깐잠깐씩 기억이 나고 연결이 되지 않았다.
이런 경험이 잘 없는데 말이다.
다음 날 눈을 뜨니 어지럽고 속도 묵직하니 몹시 불편했다.
남편과 아이가 괜찮냐며 연신 물어댄다.
오후까지 정신이 혼미한 채로 누워 있었다.
아침에 한번 깨면 잘 눕지 않기 때문에 누워있다는 의미는 상태가 메롱(좋지 않다는)이라는 의미이다.
핸드폰에 사진도 찍혀 있는데, 기억이 없다.
내가 아프다고 아이가 자꾸만 안아주고 머리도 짚어주고 배도 만져준다.
조금 나아진 오후가 되니 남편과 아이가 서로 어제의 상황에 대해 '굳이' 증언을 한다.
이제는 남편이 술에 취했나 싶게 했던 말을 또 한다.
자기가 정신없는 아내를 위해 물티슈로 발을 닦아줬다며 당당히 말하고
아이는 엄마가 넘어지려고 해서 잡아주고 잠 잘 때도 불편할까 봐 멀찍이 떨어져 잤단다.
평소에는 심부름을 귀찮아하는데 흔쾌히 물도 자발적으로 갖다주고 부축도 해주고 이불도 계속 덮어주었단다. 그러면서 술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따끔한 경고까지 잊지 않았다.
학교에서 술과 담배가 건강에 주는 위해에 대해 배운 뒤로는 와인 한잔에도 잔소리를 곁들였었다.
간섭과 잔소리 대신 칭찬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시작한 교환일기에다 아이는
엄마가 아파서 아빠와 엄마를 간호했다.
라고 적었다면서 귓속말로 덧붙인다.
"엄마가 술 많이 마셔서 아프다고 안 쓰고, 그냥 아파서라고 썼어."
교환일기 인증 코너에서 아픈 게 얼른 낫길 바란다, 많이 아프냐, 아이가 마음이 따뜻하다 등등의 댓글을 받은 것을 보니 아픈 이유가 술병이란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아이의 세심한 배려에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이 글의 독자는 정해져 있다.
바로 아이다.
지난 글에서 '나와 아이는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대목을 시무룩하게 읽었던 아이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아이가 나를 위해 애써주고 기여한 부분에 대해 고마움과 사랑을 전하기 위해 글을 긁적여 본다.
아들~ 네 덕분에 금방 나았네. 고마워~ 사랑해~
#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