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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니니 Feb 24. 2023

우리의 일기

우리에게는 뭔가 전환점이 필요했다.

육아서를 읽고 마음을 다 잡고, 하교한 아이를 마주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이를 몰아세우고 있었다.

불안감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잔소리를 하게 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화를 내고 아이도 짜증과 화로 응답했다. 




"엄마랑 같이 일기 써볼래?"

"... 일기? 같이?"

"응, 어렵게나 길게 말고 간단히 몇 줄만 서로 써보자. 엄마도 쓰는 거야."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 좋아."

교환일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아이를 변화시키기 위함이 아니었다. 나를 변화시키기 위함이었다. 아이와 같이 하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아이의 속도와 마음은 무관하게 내 욕심이 아이에게 투영되었다. 그로 인해 우리 가족은 모두가 조금씩 지치고 힘들었다.   


그래서 아이는 하루를 돌아보고 자신이 한 일 중 보람된 일이나 특별히 기억나거나 감사한 일, 뿌듯한 일 뭐든지 몇 줄 정도를 쓰게 했다. (다만 아이는 한 줄씩만 썼다) 

처음으로 교환일기를 열심히 썼어. 꽤 괜찮아 보였어.
한글학교에서 친구와 신나게 이야기했어.
팥빙수, 컵밥을 내가 만들었어.
오늘 학교 시험 준비를 열심히 했어.
게임에서 엔드까지 가서 enderdragon을 죽일 뻔했어(아이의 일기 중)


나는 되도록 칭찬을 구체적으로 했다. 하루를 보내면서 아쉬운 부분에 대한 지적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해낸, 성취한 부분을 살짝 과장해 가면서 의미를 부여해 가면서 적었다. 가끔씩 높임말도 써주면서 아이보다는 많이씩 적되, 긍정적인 멘트 위주로 적어나갔고 오늘로 43일째가 되어 간다. 

교환일기 글감을 잡고 아이에게 물었다. 


"우리 교환일기에 대해서 사람들이 궁금하다는데, 교환일기 계속 쓸 거야?"

"어, 계속 쓸 거야."

"왜? 어떤 점이 좋아? 귀찮아하기도 하잖아."

"좀 귀찮고 까먹을 때도 있는데, 엄마랑 친해진 거 같아. 그리고 이거 쓰면 좋아."

"원래도 친하잖아. 꼭 써야 할까?"

"더 친해진 거 같고, 이거 쓰면 엄마가 좀 순해지는 거 같아. 그래서 나는 계속 쓸 거야." (띵~~)


한 줄 쓰는 게 힘들다고 짜증도 내고, 한 게 없는데 뭘 쓰라는 거냐며 트집도 잡아서 울컥할 때도 있었지만, 한 달을 훌쩍 넘어 우리는 같이 해내고 있다. 

작지만 그렇게 소중한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 올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순해져 가고 있나 보다.


# 사진출처: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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