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니니 Jul 26. 2023

용서

뭐가 뭔지 몰랐고 그러면서 괴롭고 한참 슬펐고 한참 원망스러웠다.

여전히 나는 당신이 밉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그립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다.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들, 들어보지 못한 말들, 느껴보지 못한 감정들을 아이를 통해 마주할 때면 나는 무기력함을 느꼈고 화가 났다. 

그러면서 비겁하게 과거를 그리고 당신을 탓한다. 

당신 탓이라도 하지 않으면 내가 너무 이상한 인간 같으니까...


가장 연약한 그리고 가장 소중한 아이에게 

나의 서운함과 슬픔, 불안 등을 분노로 퍼부어 버렸던 나...

그 벌을 받았다.

왜 그랬을까 왜 그럴 수밖에 없었을까 돌이켜 보고 다시 다짐해 보아도 쉽지 않았다. 

책으로 배운 육아는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기를 제1의 원칙으로 대부분 강조한다.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해 주기라...

아이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낼 때 떼를 쓸 때 아이는 어떤 마음일까? 

마음을 읽어주려니 마음을 모르겠다. 감정을 읽어주려니 감정도 모르겠다. 이해가 안 간다. 

설핏 마음을 읽어준답시고 한마디 던졌는데, 아니란다. 그러면서 화를 낸다. 괜히 넘겨짚었다.



그래서 생각해 본다. 내가 잘하는 것은 감정 읽기가 아니라 생각하기니까... 

나는 왜 아이의 마음과 감정을 모를까? 왜 파악하기가 어려울까?

그렇다면 내 마음은, 내 감정은 뭘까?

모른다. 내 감정이 어떤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 공감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 같다. 


기억에 없지만 마치 내 어릴 적 기억들이 다 떠오르는 거 같다. 

"너 태어나서 1년은 맨날 너 안고 울었어. 어떻게 키우나 싶어서 맨날 너 보면서 울었어. 

그러고 나서 동생 낳고 나서는 일이 바빠져서 너는 젖줄 시간도 없었어. 네가 배고파서 고개를 떨구고 한참 있으면 네 할머니가 애 죽겠다고 젖 먹이라고 데리고 와도 먹일 시간이 없었어."

그때의 내 정서는 뭘까... 온 세상인 엄마가 태어난 나를 보면서 매일 울었다는... 배고파 울 힘도 없는 아이에게 젖도 못 먹였다는...


어릴 적 홍콩할매 귀신이 유행이어서 겁 많던 내가 겁에 질려 이야기했을 때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가서 자." 

깜깜한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거실 한가운데 내 침대가 있어서 너무나도 무서웠는데... 

 

갑자기 비 오던 날, 나만 아무도 데리러 오지 않아서 외롭고 슬프고 억울했는데

"비 쫄딱 맞고 집으로 안 가고 엄마를 만나러 온 못돼 쳐 먹은 애 같으니라고."


자취하느라 잘 못 먹었고 엄마가 해준 음식 중에 육개장이 먹고 싶었는데

"많이 먹지도 않을 거면서 뭘 그런 걸 해달라고 그런데." 등등...


처음으로 내가 원하는 것, 나 자신을 찾아가는 것 그것이 사춘기였다면 단 하나의 사건이 내 사춘기였을까... 유학을 가고 싶다는 말을 하고 처음으로 당신에게 빰을 맞았고 진실로 나쁜 아이가 된 줄 알았다. 

맞을 짓을 한...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싶어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그 일을 통해 다시 한번 더 확실히 익혔을지도 모른다.


예민하고 욕심 많고, 지 밖에 모르고(=이기적이고), 못돼 쳐 먹었고, 예쁘지는 않지만 지적으로는 생겼고(=못생겼다는 말의 다른 표현으로 이해했다), 쓸데없이 맨날 질질 잘 짜고(=눈물 많고)...

당신에게 자주 들었던 말들이다. 

그런데 이제야 알았다. 

나는 당신에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나 자신에 대해서는 둔하고 나 아닌 남에게 사회에 순종적인 아이였다는 것을...

무던히 노력하고 성실했으나 인정받지 못한 안쓰러운 아이였다는 것을...

이제야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떨 때 행복한지... 찾아내보려고 애쓰고 있지만 모르겠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내가 원하는 일인가... 내가 원하는 전공인가... 아니 계속할만한 일인가... 

나는 뭘 할 때 뭘 하지 않아도 어떤 때 기분이 좋은가... 어떤 순간에 행복한가...


지금까지 찾은 답은 남이 인정해 주면 내 행동에 가치가 매겨지고 나에게 행복을 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정확하게는 남의 평가나 결과에 따라 행복한 거 같다고 느낀다. 어렸을 적 왜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을까? 나는 부모님께 인정과 사랑받고 싶었다고 항변했고 당신은 시키지 않아도 네가 좋아서 한 거다라고 했다. 백점을 받는 것으로 나는 선생님들과 친구들에게 좋게 평가받고 싶었고, 그것은 당신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는 당당한 증거가 되는 것이니,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 것이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당신의 기분을 파악하고 슬프거나 힘든 것을 기꺼이 함께 하기 위해, 해결해 주기 위해 애썼고 나의 기분, 나의 취향은 없었다. 당신이 슬퍼 보이고 힘든 것이 싫었으므로...  


아이를 낳고 나는 요리를 열심히 한다. 요리 자체를 즐기나? 좋아하나? 아니다. 요리를 하고 나서 가족들이 또는 손님들이 맛있다고 칭찬하거나 잘 먹으면 그제사 행복하다. 아이가 잘 먹지 않으면? 요리하기가 싫고 불만족스럽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이, 나의 존재 가치가, 가변적이며 만족스럽지 못하다. 잘해야만 그리고 칭찬받아야만 가치가 있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자유롭고 싶고 행복하고 싶다. 그런데 나를 바라보는 현미경을 아이에게도 적용하고 있다. 아니길 바라면서 다르다고 핑계대면서도 결과적으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상한 안경을 쓰고 아이를 바라보고 걱정하고 잔소리하고 불안해하면서 한 마디씩 거든다.

매일 암호처럼 주문처럼 중얼거려본다. 

"you are so worthy, you are so blessed, I love you the way just you are." 

입으로만 중얼거린다고 내 가치가 소중한 것일까? 

아이에게 속삭이기만 하면 아이가 정말로 자신의 가치가 소중하다고 느껴질까?


나를 사랑하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용서하고 싶다. 

내 마음의 미움과 원망, 분노 바구니에 담긴 당신과 내 과거를 비우고 싶다.

당신께 감사하고 싶다. 

나와 내 아이를 이만큼 키워주시고 돌봐주신 것을 

그리고 이제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싶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용서 #사랑




 


 


매거진의 이전글 365달러짜리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