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과 감정의 간극
아이가 학교 다녀온 후 빈둥대기 시작한다. 기다렸다.
조금 놀고 숙제 조금 하고 또 놀기를 반복한다.
짜증이 밀려오지만
자가격리를 끝내고 소소한 일상이 참 감사하다, 행복하다 이런 대화를 나눴던 어제의 우리를 떠올리면서 참아본다.
그런데, 미루던 숙제가 아직 남았는데, 텔레비전을 보더니 당당하게 외친다
"엄마 이제 잘까?"라고,
띠리리......
머리에서 뚜껑이 열리고 나는 폭주한다.
"너 오늘 엄마가 몇 번이나 참았어. 숙제 다 하고 놀라는데, 네가 잘할 수 있다고 놀고 숙제하고 반복하겠다고 했어 안 했어? 근데 이게 뭐야? 지금 자자고?"
"아니야 하고 잘게. 하면 되잖아."
그 이후로 나는 화가 풀리지를 않는다.
아이가 괘씸하고 뭐랄까 배신당한 거 같고, 실망한 거 같고 나도 내 감정을 모르겠다.
밤에 자면서도 한마디 했는데, 아침에 눈뜬 아이를 보니 또 마음에 들지를 않는다.
나는 왜 한번 화가 나면 금방 전환이 어려울까?('전환'을 단시간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아이가 다시 실망시킬까 봐 불안한가? 내가 믿고 기다려준 것이 억울한가? 이렇게 해서 어떻게 공부를 잘하겠냐 싶어서 걱정이 되나? 금방 화를 풀기가 멋쩍나? 자가격리 기간 동안 힘들었던 스트레스 탓인가?
모든 물음표가 맞다고 쳐도,
그럼에도 나는 어른이고 부모니까 '오늘은 뭐가 잘못된 거 같아? 어떻게 해야 할거 같아? 그럼 다시 해보자. 내일은 할 일을 잘 해내 보자.' 이렇게 미래 지향적이면서 긍정적인 태도를 아이에게 보여줄 수는 없을까?
책 읽은 지식이 머릿속에 좀 남았다고 아이를 깨우러 가는 동안 이성이 돌아간다.
'그릿'에 성장형 사고방식과 고정형 사고방식이 나오는데, 성장형 사고방식은 못해도 더 잘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믿는 것,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이 그릿이 높고 대학 진학, 학위 취득 등이 더 높다고 한다(뭔가를 이룬다는 것이지). 이들은 낙관적이며, 역경도 잘 이겨 내고 그릿도 발전한다는... 그래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은 실제 적용인데, '어제는 결과가 안 좋았네. 어떤 식으로 했는지. 어떻게 하면 나을지 이야기해보자.'라는 표현이 맴돌기는 했다.
그러나 방문을 여는 순간 퉁명스럽게 "일어나"하고 말을 뱉어버렸다. 기회를 잃어버렸다. 도약하고 성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날렸다. 현실에서는 친절하고 이성적인 엄마로 돌아오지를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쓴다.
거실에 불이 꺼져 있고, 집안 전체가 고요하다.
"엄마 화났어요?"로 이유를 파악하고, 한참을 정적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잘못을 반성하고 엄마에게 조심스레 다가가 말한다.
"엄마, 내가 뭘 잘못했고,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이고 그러니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대화가 오가고
"그래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면서 엄마가 포옹을 해준다. 그 포옹은 엄마가 해준 것인지, 내가 해달라고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일의 결말은 화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용서하는 자와 죄를 지은 용서받는 자만이 있을 뿐.
나는 용서를 받기 전에도, 용서를 받고 난 이후에도 한참 동안 싸늘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숨이 막혔던 기억이 생생하다. 참 싫었다. 그 분위기가...
하지만 한 번도 엄마는 왜 그렇게 오래 화를 내요? 내가 그렇게 잘못했나요?라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물어봤어도 답보다는 혼이 더 났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그 분위기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도 못했다. 동생은 내버려 뒀고 그런 무심함까지 가끔은 내가 건사해야 했다.
'내가' 잘못해서 엄마가 저런 거고 그런 일은 하면 안 되는, 내가 하지 말아야 하는 또는 더 잘 해내야 하는 투두 리스트에 하나를 추가하고 신경 써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다만 그런 분위기가 너무나 싫었으므로 '다시는' 그런 일은 하지 않기로 또는 '꼭' 해내기로 다짐했었다.
내가 아이와의 관계에서 분위기 전환이 어려운 이유에 영향이 있을까.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해서 아이에게 해줄 수 없다면, 그건 정당한 근거가 되는 것인가.
나는 어른이자 엄마이고 이성은 작동하는데 감정이 허락을 하지 않는다. 아는데 잘 안된다. 자다가 가위에 눌린 거처럼 안된다. 잠에서 깨면 가위눌린 게 해결되지만 날마다 아이와 이런 일의 반복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내가 들어보지 못해서, 아이에게 해주지 못한 말들' 책을 애써 구매하지 않았다.
제목은 딱 내 이야기이다. 장바구니에 담고 결제버튼을 누르려는데 망설여졌다. 읽고 나서 '못 들어 봤어도 할 수 있다면' 실천 못하는 나 자신에 좌절할까 봐, '못 들었으면 당연히 못한다'며 실천 안 하는 나 자신에게 변명거리를 줄까 봐 말이다.
#가족 #육아 #성장형 사고방식 #이성과 감정
사진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