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을 2 주내 내 먹어본 적 있나요?

[고삐 풀린 망아지는 배달 음식으로 용돈을 탕진해 버렸다.]

by 슬기로운 유자씨네

18년간 부모님과 살아오다가 대학교라는 첫 인생의 터닝포인트로 부모님의 울타리 밖으로 나와 살았다. 구미에서 대전으로, 부모님이 가장 안심하고 나를 가족 하나 없는 타지로 보낼 수 있는 방법은 대학교 기숙사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기숙사는 밤 10시 이후에 출입이 통제되므로 마치 기숙사에 살고 있는 내가 방목해서 키워지는 닭과 같다고 생각했다. 해가 뜨면 풀어주고 해가 지기 전에 주인에 의해 철창으로 막힌 닭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그런 삶을 사는 닭, 마침 내가 또 93년 닭띠라 정말로 기숙사에서 키워지는 닭이 아닌가도 싶었다.


자취를 시작한 것은 대학교 2학년, 기숙사는 답답하다는 이유로 엄마에게 조르고 졸라 시작한 내 생애 첫 독립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자유를 만끽했다. 남들처럼 옷을 사거나 술을 마시는 데에 관심이 없었던 나는 배달음식을 마음껏 시켜 먹을 수 있는 자유에 취해있었고 엄마가 보내주시는 한 달 용돈 30만 원은 돈 귀한 줄 모르던 20대 초년의 나에게 마치 통장에 스쳤다 지나가는 월급과도 같았다.


그러다 용돈을 받기까지 딱 2주가 남은 시점에 통장에 비상사태가 발령이 되었다. 꼴랑 2만 원, 대학교에서 저렴히 파는 주먹밥을 하나 사 먹어도 천오백 원이었다. 예산 내로 버티려면 답은 하나였다. 라면 묶음을 사다 놓고 매 끼니를 끓여 먹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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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봉지 라면을 2 주내 내 먹어본 적이 있었다. 라면을 너무도 좋아하던 초등학생 시절, 엄마는 몸에도 좋지 않은 라면을 자꾸만 찾아 먹는 내가 무척이나 답답했을 것이다. 한 가지 음식에 꽂히면 질리기 직전까지 먹는 식습관은 사실 엄마를 쏙 빼닮았다.


"너는 라면이 그리도 좋니?"


"응, 제일 맛있어."


라면을 더 이상 찾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라면을 질리도록 만드는 게 답이라 생각했던 엄마는 비장한 각오를 하고 나에게 말했다.


"그래, 너 질릴 때까지 끓여줄 테니까 실컷 먹어봐라~!"


한참 클 나이인 자식에게 라면만 먹인다는 것은 엄마에겐 속이 꽤나 아프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라면을 끓여 먹는 내가 라면을 더 이상 찾지 않게 된다면 그 어떤 방법이든 못하랴! 엄마는 정말 매번, 매 끼니마다 라면을 끓여주었다. 건강을 최우선시하는 엄마가 정말로 점심 저녁을 라면을 끓여주다니! 나에겐 횡재나 다름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라면만을 끓인 지 꼭 2주째가 되던 날, 엄마는 나에게 백기를 들었다.


"넌 라면이 안 질리니??"

"응, 안 질리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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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는 이미 과거에 2주 동안 라면만을 먹은 경력자. 그래도 다양하게 먹어보고 싶으니까 종류별로 사보자.'


그 당시 매운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끌던 불닭 볶음면부터 빨간 국물 라면까지 슈퍼에서 한 봉지 가득 사 와서 부엌 찬장을 채우고 나니 든든해졌다. 2주 동안은 굶을 일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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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이 지났을 때 엄마에게 2주 동안 라면을 먹었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엄마, 사실 나 대학교 때 2주 동안 라면만 먹은 적 있다?"

"왜?"

"자취하고 마음껏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는 것에 신이 나서 흥청망청 돈을 다 써버려서 2주 동안 다음 달 용돈까지 버티느라고."


내 이야기를 들은 엄마는 기가 막힌다고 했다. 2주 동안 라면만 먹은 내가 대단하다고도 하고 돈이 없어서 그랬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타까워도 하셨다.


2주 동안 라면을 먹은 나는 어떻게 되었는가 결론을 하자면 나는 라면에 단단히 질려버렸다. 맛에 질렸다기보다는 면을 씹고 삼키는 행위에 질렸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나는 그 사건 이후로 라면을 한두 달 정도 먹지 못했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한 봉지를 다 먹기 전에 질려버린다. 하지만 정말 다행인 건 볶음 라면 양념과 국물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렇게 나는 이 글을 완성하기 전에도 라면을 먹었다. 크림진짬뽕.. 맛있다..❣️


[소울푸드, 누구나 재미난 기억 하나쯤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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