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정이가 맨날 먹는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아."
편식하는 나는 좋아하는 반찬이 없으면 밥을 잘 먹지 않았다. 그래도 배 곪는 것은 성장기 어린이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때마다 고추참치를 찾았다.
흰쌀밥 위에 고추참치 한 캔을 전부 부어준다. 그리고 계란 프라이는 고추참치 비빔밥에서 빠지면 2% 부족하기 때문에 가장자리가 바싹 구워지지 않게 약불로 살살 구워 전체 적인 계란 프라이 식감을 부드럽게 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고추참치 비빔밥에서 계란 프라이는 빠져도 상관없겠지만 나에겐 고추참치 비빔밥에 있어 계란 프라이는 나물 하나 없는 비빔밥이나 다름없다. 고추참치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서 엄마는 항상 고추참치를 사다 두었고,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고추참치에 밥을 비벼먹었던 것 같다.
내가 아빠를 닮았다면 가리는 것 없이 전부 잘 먹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대신 좋아하는 음식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조합을 찾아 먹겠다는 생존 본능 비슷한 능력이 생겼으니 먹을 것이 풍족한 이번 생에서 먹고 살기에는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정말 좋아하는 음식은 있지만 싫어하는 음식은 딱히 없는 우리 아빠. 아빠는 어렸을 적에는 정말 못 살았다고 했다. 엄마는 유년 시절에 먹을 게 없어 감자를 질리도록 먹어 이젠 먹고 싶지 않다고 말할 때마다 아빠는 "감자도 질릴 정도로 먹을 수 있었나?"라고 대답을 했고 그때마다 엄마는 "도대체 얼마나 못 산 거야?"라고 대답을 하곤 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순식간에 경제 성장을 이뤄 부모세대와 차이가 극심한 우리 세대들은 엄마 아빠 이야기들을 100% 이해는 못하지만 어렸을 적 '검정 고무신'이라는 만화 덕분에 당신들께서 말하는 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무튼 엄마보다 힘들게 살아온 아빠에겐 어떤 음식이든 귀했기에 맛없는 음식은 없다고 했다.
아빠는 그 시절보다 먹을거리가 많은 지금, 앉은뱅이 밥상 위에 아무 반찬도 없이 고추참치와 계란 프라이만 얹어 밥을 비벼 먹는 큰 딸을 보며 뭐가 그리 맛있어서 매일같이 찾아 먹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한 번은 출근 전 아침을 먹기 전에 문득 생각이 났는지 엄마에게 딸이 항상 먹던 고추참치 한 캔만 달라고 했다고 한다. 초등학생 딸이 편식 때문에 해 먹는 걸 따라 해 먹는 게 아빠 본인도 머쓱했는지 엄마가 건네준 고추참치를 받으면서
"도대체 뭐가 그리 맛있어서 정이는 그걸 그렇게 매일 같이 먹는 거지?"라고 덧붙였다고 했다.
딸이 항상 먹던 데로 갓 지은 흰쌀밥에 고추참치, 계란 프라이를 얹어 야무지게 슥슥- 비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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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6일제가 흔했던 그 시절 어느 토요일, 아빠는 출근을 하고 없고 엄마와 단 둘이 있을 적에 엄마는 갑자기 무엇이 생각이 났다는 듯 '아 맞다!'거리고선 신이 난 상태로 나에게 다가왔다. 그날 엄마는 나에게 아빠가 날 따라 고추참치 비빔밥을 해 먹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항상 궁금해하더니 결국에 딸을 따라 해 먹는 아빠 모습이 다시 생각해도 웃음이 나는지 엄마는 이야기하는 동안 키득키득 거리며 말했다.
"맛있다고 했어? 뭐라 했어 아빠가?"
아빠에게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쉬운 대로 엄마 입에서 그다음 장면을 말해주길 기다렸다. 아빠가 정말 맛있어했기를, 내가 왜 항상 찾았는지 이해해 주길 내심 바랬다.
아빠가 고추참치 비빔밥을 처음 먹은 그날, 한 숟갈을 꼭꼭 씹어 삼키고 나서 아빠가 엄마에게 한 말,
"왜 정이가 맨날 먹는지 몰랐는데, 이젠 알 것 같아. 맛있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똑같이 좋아해 준다면 그것만큼 신이 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소울푸드, 누구나 재미난 기억 하나쯤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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