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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결 Mar 08. 2020

관심이 담긴 질문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숨고 싶을 때가 있었다. 내 인생이 싫어서 내 이야기를 남들에게 하는 게 꺼려졌다. 내 눈에도 내가 멋지지 않았으니까. 일상적인 얘기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최대한 티 나지 않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뒤로 숨었다. 상대방의 말만 듣는 편이 편했다. 어떻게 지내는지 묻지 말아줘. 누구를 만나도 마음속 말 중 적당한 말만 골라서 썼다. 대화다운 대화를 해본 지가 언제인지 알 수 없었다.


그날도 마음을 꽁꽁 닫은 채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자기 이야기를 하며 자연스레 나에게 질문을 계속 던졌다. 별거 아닌 질문이었는데 자꾸만 대답하고 싶어졌다. 너는 말을 거는 데 능숙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을 열게 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구나. 오랜만에 말을 많이 했다. 집에 와도 네가 했던 질문이 맴돌았다.


의례적인 질문을 싫어한다. 친척들을 만나면 자주 듣는 질문. 몇 살이니, 남자친구는 있니, 공부는 잘하니. 불편하게 만드는 얘기라 싫은 것도 있지만 무관심이 담긴 질문이 싫었다. 내년이면 또 몇 살이냐고 물어보겠지. 크고 나서야 어른들도 어떤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 그렇다는 걸 알았다. 친척들과 친하지 않은 이유는 자주 보지 않아서가 아니라 적당한 이야기만 나누기 때문일 것이다.


네 질문이 왜 나를 대답하게 했는지 생각해봤다. 친구는 대화의 공백을 못 견디는 성격이 아니다. 빈칸을 채우기 위한 말이 아니라 내게 정말 궁금증을 가지고 물어봤다. 대충 넘기려고 하면 네가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적당한 말 말고 네 속에 있는 말을 듣고 싶어. 나는 네가 되게 궁금한데.' 집에 오는 길에 핸드폰을 꺼내 메모를 적었다. 관심이 담긴 질문은 사람을 무력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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