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이 일기
연둣빛의 초록은 점차 짙어져 진한 초록이 되었다. 실외 마스크 의무가 해제되었지만 대부분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고 걷는다. 햇살은 뜨거워져 창이 큰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고, 양산을 쓴 사람도 보인다.
어제는 큰 창이 있는 화실에서 2시간가량 그림을 그렸다. 공간의 변화가 주는 힘이 있다고 느꼈는데 '햇빛,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 유화 냄새, 그림 그리는 사람, 전시된 그림들'이 집에서는 누리고 있어도 알지 못하는 것을 다시금 알게 해 주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당연했는데, 다래끼 제거 후 안대를 하니 그릴 수 없었다. 당연한 것이 그렇지 않게 되었다. 흰 종이는 익숙했는데 이젤에 서있는 캔버스는 그렇지 않았다. 익숙한 것이 낯설게 되었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된다. 내 속의 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오늘은 베란다 문으로 해가 들어오는 작업방에서 4시간가량 그림을 그렸다. 흐린 날은 몸부터 찌뿌둥하고 작업도 하기 싫은데, 해가 뜬 날이면 작업 시작이 한결 수월하고, '아! 맞다. 그림 그리려고 작업 집 구해 나온 거지'하며 긍정을 선택한다. 창밖은 오월인데 창 안쪽의 나는 창에 바짝 붙어 5월의 냄새를 맡으려고 애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