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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May 12. 2016

본질에 충실한 비즈니스와 브랜딩

책 <인사이드 현대카드>를 읽고 쓰다

#1 현대카드에서의 일년


현대카드라는 이름을 떼어놓고 국내에서 벌어지는 공연과 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까. 가장 최근인 작년에는 거장 폴 매카트니를 현대카드 슈퍼 콘서트의 이름으로 서울에 데려왔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트렌드를 선도하는 아티스트들의 공연과 전시를 소개하는 컬처 프로젝트도 있다. 그 와중에 서울 곳곳에 디자인, 트래블에 이어 뮤직 라이브러리까지 뚝딱뚝딱 완성되었고, 또 조만간 푸드 라이브러리가 들어설 예정이란다. 이런 현대카드의 내부를 외부인의 시선으로 일년간이나 속속들이 들여다보며 펴낸 책이 있다. 현대카드의 마케팅과 브랜딩, 그리고 비즈니스에 대해 더 깊은 호기심을 가져왔던 사람들이라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소식. 잡지 <아레나>의 박지호 편집장이 쓴 <인사이드 현대카드>를 통해, 그간 차려왔던 무대들의 백스테이지를 구경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특별 출입증을 드리겠습니다. 수익을 포함한 모든 대외비 자료까지 다 들여다보십시오. 1년 후 세상에 공개될 극비 프로젝트 관련 회의도 참관이 가능합니다. 단 제게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발동할 수 있는 출판 거부권만 주십시오. 저희를 칭찬하든 비판하든 당신이 느낀 대로 솔직하게 서술하시면 됩니다.”

우리의 약점까지 그대로 다 공개할 테니 상찬이든 비판이든 제대로 쓰기만 해달라니, 이 도전적이면서도 쿨한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작가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현대카드에서 보낸 일주일’ 기사의 모티브가 되었던 <공항에서 일주일을>을 쓴 알랭 드 보통조차도 이런 황홀한 제안에는 바로 넘어갔을 것이라 확신한다.

-26p, 프롤로그 -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는 특별 출입증을 드리겠습니다"



#2 알고 보면, 본질에 충실한 금융회사


현대카드의 재기발랄한 광고와 멋진 디자인, 전시나 공연을 비롯한 여러 브랜딩 활동이 대중적으로 큰 족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현대카드는 창의성과 엉뚱함과 세련됨 등이 공존할 것 같은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근근이 현대카드나 여러 자매회사(캐피탈, 커머셜, 라이프)에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이러한 이미지와 상반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저 외부자1이었던 내 마음속에는 '에이 설마'가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카드의 주요 회의며 미팅을 함께 하며 기술한 책 속의 여러 일화들은 '에이 설마'를 '우와 진짜'로 바꾸기에 충분하다. 아래의 일화처럼, 기록적인 매출 앞에서도 원칙과 본질에 충실할 수 있는 회사라니. 업계 5위권으로, 여유로울 수는 없는 현대카드의 위치를 고려해본다면 더욱 대단한 일이 아닐까 싶다. 익히 알려진 브랜딩 활동들 뿐만 아니라 워크샵과 해외 출장, 채용 프로세스 등 여러 경영활동들을 소개하며 자연스레 그리고 꾸준히 강조되는 포인트는, 이러한 현대카드의 활동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것. 비록 책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많지않으나 여러 사례들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읽다보면 현대카드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해왔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비즈니스와 마케팅 활동이 어떻게 진화해가는지도 엿볼 수 있다.


상념에 빠진 것도 잠깐, 평온하게 흘러가는 듯했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맞다. 상파울루에서도 이랬다. 마치 욕조의 물이 조용히 빠지다 귀를 찢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급격한 소용돌이를 일으키듯 회의장 분위기가 갑자기 뒤흔들렸다.

“내가 안전하게 가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대체 왜 사장 말을 안 듣는 겁니까?"

상황을 5분 전으로 돌려보자면, 단상에는 현대캐피탈 중국법인장이 당당한 목소리로 2013년에 매출 및 수익이 기록적으로 증가했다는 내용을 자랑스레 발표하고 있었다. 그 중간을 정태영 사장이 찢고 들어가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꽤 오랫동안 그를 봐왔지만 이처럼 크게 화를 내는 모습은 본적이 없었다. 곧이어 다소 톤다운된, 하지만 여전히 매몰찬 말투로 질책이 이어졌다.

“중국만 2003년의 현대카드를 보는 듯해요. 자산 확대에 대한 욕심보다는 사람과 기능에 대한 욕심을 먼저 내야 합니다. 내가 급격하게 성장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금융은 기본적으로 안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이 미비할 때 급격히 성장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순간 주변엔 쥐죽은듯 정적이 감돌았고 나 또한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매출 확대와 수익 증대를 존재의 조건으로 하는 금융사의 CEO가 기록적인 매출을 달성한 책임자를 문책하는 현장이라니.

- 85p, Chapter 1. Winter - 기록적인 매출을 올린 담당자가 문책을 당하는 워크숍이라니



#3 알고 보면, 디지털에 집중하고 있는 회사


지난 십년을 플라스틱 카드 형태의 신용카드가 화폐를 대신해온 시대라고 한다면, 현대카드는 이 시대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었던 회사가 아닐까. 카드의 포트폴리오를 알파벳과 색깔로 심플하게 정리하더니, 뒤이어 모서리의 각도와 옆면의 색깔, 심지어는 소재까지도 신경썼던 회사. 여러모로 신용카드라는 새로운 화폐의 물성과 형태를 재정의하는데 공을 들였던 현대카드였다. 많은 카드회사들이 현대카드의 이런 움직임에 휩쓸렸고 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대카드가 앞으로는 비즈니스에서도 마케팅에서도 디지털에 집중하겠노라고 선언했고, 자체 마케팅 플랫폼인 채널 현대카드를 내놓으며 그 행보를 이미 시작했다.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차게 다양한 현대카드의 공연, 전시, 그리고 공간 컨텐츠들을 디지털 미디어로 하나하나 활용하고 또 옮겨내겠지, 어렵지 않게 상상해볼 수 있었다. 실리콘밸리에도 오피스를 두고있으며 최근에는 알고리즘 디자인랩을 신설했다는 현대카드. 코어 비즈니스에서는 어떨까. 수많은 결제들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있는 상황에서 카드회사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 아니 카드의 역할이 과연 있기는 할까. 결제수단의 대표격인 신용카드가 디지털에 기반한 결제 플랫폼들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는 형국이다. 책을 덮자니, 결제수단 시장에서 현대카드가 곧 내놓을 그들만의 대답도, 또 새롭게 도전할 비즈니스 영역도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과연 아날로그의 극단인 라이브러리 관련 프로젝트만 하고 있을까요? 그 반대편에서는 디지털에 집중하고 있어요. 아날로그 콘텐츠를 광범위하게 전달하는 건 결국 디지털이거든요. 몇 년만 지나면 지금보다 훨씬 더 ‘위험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될 거예요. 지금까지는 현대카드가 브랜딩을 잘했다 혹은 디자인을 잘했다, 광고 하나를 만들어도 참 남다르게 만든다, 정도면 충분했겠지만 몇 년 후에는 이런 시대가 끝나요. TV를 보는 사람이 없으면 광고가 무슨 소용일까요? 그때는 콘텐츠를 스스로 만들고 새로운 시대의 미디어를 잘 다루는 사람만이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지금은 콘텐츠가 없는 회사라도 광고권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앞으로는 콘텐츠가 없으면 광고를 실행할 수가 없는 시대가 온다는 거죠. 콘텐츠를 만드는 부서와 콘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을 지원하는 부서.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야 하는 거예요."

- 304p, 에필로그 - 다시, 모든 것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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