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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Jun 13. 2016

더 불편하도록,
그 불편함을 외면하지 않도록

책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쓰다


나는 한국에 살며 목숨을 걱정해본 적은 없었다. 밤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고, 마음껏 술에 취해도 되었고 그런 채로 화장실을 들락거려도 상관없었다. 도서벽지에 발령을 받는다 해도 성폭행의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된다. 데이트 폭력이나 이별범죄에 대한 걱정을 해본 적도 없고, 취업시장에서도 면접 과정에서도 별 불편함이 없었다. ‘여자를 뽑으면 남자들끼리 하는 얘기를 못해’라던지 ‘여자 중에서는 그래도 IT에 대해 많이 아네요’ 소리를 면전에서 듣고 나온 가까운 여자 사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기가 차기도 하면서 동시에 구경해본 적 없는 딴 세상 얘기 같기도 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남성들은 불편함 없이 밤거리를 활보하고, 별 고생 없이 취업을 해내고, 남녀 간 임금 격차가 36.6%나 난다는 우리나라(무려 14년 연속 OECD 회원국 1위!)에서 더 많은 임금을 받으며 살게 될 테다. 개중에 일부는 가사노동을 아내에게 전가시키기까지 하는 무책임한 남편이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다들 별 일 없이 편하게들 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남성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로 나는 이미 크나큰 기득권을 가진 셈이다. 아니, 기득권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너무 배부른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기득권은커녕 생존권을 걱정해야 하는 수많은 여성들이 가까운 우리 주변에 있으니까. 한창 이슈가 되었던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살인과 강간, 폭행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수많은 여성들을 생각해본다. 만연한 남녀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에 앞서서, 가장 기본적인 생존의 문제를 - 살인과 강간과 폭행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불평등하고 한쪽으로 권력이 치우친 사회일수록, 더 약자들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밤거리에서 늦은 밤 화장실에서 또 심지어 일상생활에서 얼마나 위협과 두려움을 느끼는지, 평소에 횡행하는 차별이 얼마나 많고 많은지에 대해서 더 목청 높여 떠들어야 한다. 그저 일부 또라이, 미친놈, 정신병자의 소행으로 치부하기에는 그 수가 너무나도 많고 많지 않은가. 남성들이 더 많이 불편함을 느끼도록 -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깨닫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들이 느끼는 불편함이 그저 불편함에서 그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남성들 또한 더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한다. 약자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느끼는 불편함을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듣고 공부하고 배워야 할 테다. 그리고 주변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혐오의 목소리와 행동을 방조하지 말아야 한다. 내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존의 구조와 문화를 답습하는 순간, 우리는 기울어진 남성중심사회의 방조자이자 동조자이자 가해자가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게으르지 말고 멍청해지지 말자고 생각했다. 책임의식을 느끼며, 또 나와 내 주변부터 바꿔보자 다짐하며 책을 덮었다.


*독서모임 트레바리 34의 6월 발제 도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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