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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Aug 16. 2016

생활인인 동시에 좌파일 수 있다면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을 읽고 쓰다


1. 좌파라는 라이프스타일


신사숙녀라면 정치와 종교, 그리고 야구 얘기로는 논쟁하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가 아마 정치 아닐랑가. 대화에서건 글에서건 진보 보수, 좌파 우파 어쩌고 하는 단어들이 언급되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복잡해졌음을 고백한다. 그런 와중에 만난 이 책, <파리의 생활 좌파들>은 제목이 그러하듯 파리에 거주하는 여러 생활 좌파들의 이야기와 인터뷰를 담고 있는 책이다. 그들의 인생담과 좌파에 대한 각양각색 정의들을 곱씹어 읽어보자니, 굳이 진보니 좌파니 하는 단어에다 지레 거부감을 가지거나 무거운 마음으로 임할 필요가 없다 싶다. 현재보다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상을 원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넓은 의미에서 좌파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나. 이 책에서 그리는 좌파는 격렬한 정치적 행위라기보다는 차라리 라이프스타일에 가깝다.


책 속에 등장하는 파리의 생활 좌파들은 여성과 인종을 비롯한 소수자 문제, 때로는 병역 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도 하고, 심지어 어떤 이는 그들이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거부하며 자급자족하기도 한다. 이렇듯 추구하는 방향성이 조금씩 다르고 또 각각 실천하는 방법이 다를지라도 그들이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북극성같은 목표를 꼽으라면 ‘자유’와 ‘평등’ 그리고 ‘진보’ 정도 되려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할 단어이면서 동시에 참 뜬구름 잡는 소리, 또 때로는 모순되어보이기도 하는 요소들. 이들을 실천의 영역으로 삶의 영역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점이 존경스럽다.




2. 이를 가능케 하는 힘은 시스템으로부터


자유와 평등과 진보에 대한 열망이 아무리 클지라도, 우리나라에서의 선택지는 그다지 많지 않아보인다. 기본적인 인간다움마저 포기하며 - 사람다운 주거와 맛난 음식과 친구들과의 만남을 죄다 포기해가며 - 활동에 전념하던지, 혹은 체제에 순응하고 어디 한 번 열심히 달려보던지. 가까운 주변을 둘러보면 뭐 이런 선택지들이 대다수일텐데, 파리에 사는 생활 좌파들의 모습은 우리와는 참 다르다.


기존의 제도를 뜯어고치자며 목소리를 높이고 때론 제도를 아예 거부하기도 하는 파리의 생활 좌파들.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근간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몸담고 있는 시스템이다. 노후 생활자금 걱정이 없는 국민연금과 법적으로 정해진 낮은 월세 인상률, 가정형편이 좋지 않다면 적당히만 공부해도 받을 수 있는 장학금, 그리고 결혼 제도 밖 커플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연대계약 팍스까지. 이러한 제도들은 단순히 책에서 언급되는데 그치지 않고, 인터뷰이들의 삶에 깊숙히 개입하고 그들이 좌파로써 존재할 수 있게 돕는다. 기본적인 주거와 소비, 생업을 온전히 영위하면서 동시에 각종 협회에 가입하고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것.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시스템의 힘이구나 싶다. 제도권에 반기를 드는 아웃사이더의 목소리마저 용인하는 시스템의 역할이 참 커보이고 부러웠다.




3. 이기는 습관 : 작은 승리의 중요성


‘어쨌거나 미국에 전쟁 포기를 요구한 베트남전쟁 반대 투쟁에서의 승리, 68혁명의 거대한 물결은 나를 비롯한 당시 청년들에게 변혁의 주체라고 하는 자신감과 우리 스스로 만들어갈 이상 세계에 대한 배포를 안겨주었다. 그때 시를 쓰던 친구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이 될 것을, 영화판을 쫓아다니던 친구들은 자신이 위대한 영화감독이 될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아니, 이미 그들은 남들이 알든 모르든 스스로를 위대한 존재라고 인식했다.'



프랑스 68혁명/5월 혁명의 포스터. "The beginning of a prolonged struggle"


시민의 힘으로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려 단두대에서 목을 쳐버린 나라, 프랑스. 책에서도 여러번 언급되는 68혁명을 비롯해 비교적 최근인 사르코지 정권에서의 최초고용계약에 대한 투쟁까지, 연대를 통해 원하는 바를 이뤄내고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에너지. 시민들의 승리감을 원동력 삼아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앞서 언급된 여러 제도들은 결국 연대를 통한 승리를 통해 다져져 온게 아니었을까.


지금의 우리 나라에서도 이러한 승리를 일궈내는 것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조선이니 수저계급론이니 하며 터져나오는 자조와 패배의 언어들도, 그에 대한 비난과 비방도 피곤하기는 마찬가지. 어떤 사회를 열망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덜하고, 또 열망하는 바를 실제로 이뤄내어 본 경험도 손에 꼽는 세대. 하지만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시키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모으고 모아, 작은 승리의 경험이나마 축적해가야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양한 진보의 목소리가 자유롭게 평등하게 터져나올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지. 결국은 따분한 소리로 글을 마무리하는 것 같아 불만족스럽긴 하지만, 누군가 내게 뻗은 손을 덜 뿌리치겠다고 + 더 적극적으로 연대하겠다고 다짐해본다. 아아 나도 생활 좌파 패션 좌파이고 싶은거다!


*독서모임 트레바리 34의 8월 발제 도서, <파리의 생활 좌파들>을 읽고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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