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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Oct 03. 2016

한국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기

책 <개인주의자 선언>을 읽고 쓰다



오지랖 싫고 선 넘는 것 싫어한다. 예전부터 인간애 없다며 여기저기서 타박받았던 개인주의자 워너비이다 보니, ‘인간 혐오’라 이름 붙여진 프롤로그만 읽고도 가슴이 두근댄다 히히. <개인주의자 선언>이라니, 특히나 명절 스트레스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추석 연휴에 읽기 좋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문유석 판사의 책 <개인주의자 선언>을 단숨에 읽었다. 독서는 물론이고 여러 방면에 걸친 인풋들을 꼭꼭 곱씹고 버무려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는 저자의 능력이 부럽고 또 놀랍다. 아아, 나도 재미난 글을 쓰고 싶다.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다.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특히나 근대적 의미에서의 합리적 개인주의가 부족한, 전근대적 집단주의 문화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글이고 선언이다. 군대를 모델로 조직되어 상명하복, 집단 우선이 강조된 우리 사회. '개인주의라는 말은 집단의 화합과 전진을 저해하는 배신자의 가슴에 다는 주홍글씨였다'는 글귀에 고개를 끄덕여본다. 이러한 우리네 현실 속에서 개인주의자라는 단어는 자연스레, 일견 차갑고 계산적이며 칼같을 것 같은 인상을 주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글쓴이는 개인주의자로써의 내 영역을 지켜내기 위해서, 반대로 다른 이들의 영역을 존중하고자 노력하자고 말한다. 때로는 양보하고, 내 자유를 자제하고, 타인들과 타협하고 연대하자고 말한다. 결국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라 말하고는 있지만, 이 얼마나 따스한 시선인가. 자신의 자유를 존중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 당연하면서도 우리 사회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덕목이라 따스하고 또 그립다. 그래, 서로가 서로의 몸을 찌르고 아프게 하는 고슴도치가 될 수 있음을 안다면, 조금 더 조심하고 또 때로는 서로 가시를 눕힐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의 현실은 진보라기보단 퇴보에 가깝다. 최근 몇 년간 발생했던 세월호 사고나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에 대처하는 우리 사회의 태도를 보면, 아니 그에 갈 것 없이 공공장소에서의 윤리며 예절에 대해서만 생각해보더라도, 과연 우리 사회는 충분히 성숙한 사회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며 올라가는 열차칸 안에서도, 이어폰 없이 동영상을 시청하는 이, 떠나가라 울리는 벨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전화를 느릿하게 들어서는 심지어 객실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는 이 등 참 제각각이다. 야만적인 본성을 속박하는 문명의 구속력이 우리 사회에서도 약해지고 있지 않나 싶은 걱정이 걱정에서 그치지 않을 느낌이다. 어디 '문명인이 됩시다' 하는 슬로건이 그냥 나왔을라.


그 시작이 따스한 인간애이든 아니면 나같은 불만과 짜증이든, 우리네 현실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참 많다고 느낀다. 그러나 동시에,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왜 개선되어야 하는지 이야기 하는 -즉 앞선 문장에조차 공감해주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요새라서 슬프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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