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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Jun 10. 2017

부산 최초 서양식 병원의 변신

카페로 탈바꿈한 부산 최초 서양식 병원, 브라운핸즈 백제


연휴로 찾았던 5월의 부산. F1963 테라로사에 이어 연달아 예쁘게 꾸며진 카페를 방문하게 되었다. 한 달이나 지나 다시금 정리해보려니 조금은 귀찮지만, 잘 꾸며진 장소를 열심히 찾아다니면서도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데에는 소홀했던 것 같아 포스팅을 해보려 한다.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날 일찌감치 짐 챙겨서 찾은 곳이 바로 부산역 앞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


앞서 소개한 F1963 테라로사와 비슷하게, 이곳 브라운핸즈 백제 또한 오래된 건물을 새롭게 뜯어고쳐 꾸며진 곳이다. 놀랍게도 무려 일제강점기였던 1922년에 지어진 부산 최초의 근대식 종합병원인 백제병원 건물. 이후 이 건물은 음식점, 장교 숙소, 치안대 사무실, 중화민국 영사관 및 임시 대사관으로, 한국전쟁 이후에는 예식장 등 용도를 달리해가며 사용되어 왔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지닌 이 건물의 1층에 지금은 브라운핸즈 백제가 들어서 있다.





붉은 적벽돌로 쌓아 올려진 건물의 외관. 일견 평범해 보이지만, 또 일제강점기 부산역 앞에 들어서있었을 모습을 상상해보면 느낌이 색다르다. 영화 <암살>이나 <밀정> 속 그 건물과, 복식을 갖춰 입고 이 건물을 드나들었을 이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반층 정도를 올라가서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에 들어서면 깊숙한 곳에 카운터와 쇼케이스, 커피 머신이 위치해있다. 음료를 주문하면 스탬프 카드에 도장을 찍어주는데, 방문 횟수에 따라 찍는 도장이 다르고, 도장의 문양이 다르다. 횟수를 채울 때마다 그림이 하나 둘 완성된다고.






커피는 맛났고, 티라미수를 먹으면서는 언제나 그랬듯 바보같이 파우더에 목이 간지러워져서 기침을 멈추질 못했다. 코르크로 된 얇은 코스터와 메탈 트레이에는 브라운핸즈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올려주는 메탈 트레이는 꽤나 묵직하다. 과거 병원이었던 곳을 카페로 쓰고 있어서 그런지, 마치 메스와 각종 의료기구를 올려두는 그 트레이가 연상되기도 했다. 의도한 것일까, 아니면 그저 내 확대해석일까.






자리에 앉아 내다본 풍경. 메인 입구 외에도 큰길로 난 다른 문이 하나 더 있다. 다만 이 곳은 통행할 수 없도록 공사를 해두어 커다란 창문처럼 또 작은 테라스처럼 사용되고 있었다. 병원이었다면 응급실 입구쯤 되었을 테지 하고 상상해보았다.






짚으로 짠 발이 잘 말아져서 걸려있다. 건물의 1층만 카페로 쓰고 있긴 하지만 그 면적이 꽤나 널찍하다. 입구로 들어서면 보이는 널찍한 공간이 아마 병원 대기실쯤 되었을 테고, 그곳을 기준으로 크고 작은 공간들이 구획 지어져 있다. 같은 카페 안에서도 여러 다른 분위기의 공간들을 연출할 수 있는 이유.






 화장실 가던 길에 발견한 창문. 계단 쪽 복도로 난 작은 창문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약국 조제실일까, 저곳에서 접수를 받고 올라갔을까, 아니면 이후에는 장교 숙소나 치안대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었던 만큼 건물의 보안을 담당하는 경비들이 머무는 공간이었을까. 그 역사를 일일이 알 수는 없으니 그저 상상력을 동원해 짐작해볼 뿐이다.






조금 이른 아침에 방문했는데,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이 속속 들어선다. KTX 부산역에서 길을 건너면 곧바로 당도할 수 있는 거리이다 보니, 큼직한 캐리어나 여행가방을 든 사람들도 오가는 길에 많이들 찾는 명소가 되었다. 앞서 적었듯, 널찍하면서도 여기저기 구획 지어진 다양한 공간이 참 매력적이다.
















이름부터가 그 백제병원의 이름을 따왔으니, 옛 병원의 디테일이 살아있지 않을까 큰 기대를 하고 방문했지만 기대가 커서인지 아쉬움도 있다. 위에서 열거했듯, 이 건물의 용도도 또 거쳐간 이들도 너무나 다양한 오랜 건물이다. 그리하여 카페 브라운핸즈 백제에서는 오래된 건물을 개조했다는 사실 이외의 특색을 발견하기는 힘든 거다. 오래된 바닥과 벽의 타일, 접수 공간이나 약국쯤으로 쓰였을법한 - 복도로 난 작은 창문, 지금은 메워진 바닥의 물 빠짐 구멍 같은 요소들로부터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볼 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켜켜이 쌓인 역사의 흔적은 참 귀하고, 그 한가운데 앉아 커피와 케이크를 집어먹고 있자니 속으로 슬몃슬몃 웃음이 난다. 비록 용도는 달라졌을지언정, 이렇게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는 대신 되살려 사랑받는 공간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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