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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Jun 24. 2017

당신에게 여행이란?

루이 비통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에 다녀오다


신기하게도 여러 럭셔리 브랜드들의 전시가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동대문 DDP에서는 루이 비통의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가, 한남동 디뮤지엄에서는 '마드모아젤 프리베'라는 이름으로 샤넬의 전시가,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까르띠에의 '하이라이트' 전시가 열린다고 한다. 루이비통, 샤넬, 그리고 까르띠에까지. 프랑스의 럭셔리 브랜드들이 동시에 2017년 여름의 서울로 몰려들어 판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하여 DDP에서 열리고 있는 루이 비통 전시회에 다녀왔던 주말이었다. 여러 종류의 여행에 함께 해온 루이 비통의 여행용 트렁크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꽤나 흥미롭다. 전시의 백미는 사막과 창공, 그리고 대양을 누비는 크루즈 갑판과 대륙 횡단 열차에까지 이르는 공간 재현이 아닐까. 천장고가 높고 공간 배치도 독특한 DDP의 특징을 잘 써먹은 느낌이고, 그 여행지 속에 빠짐없이 자리 잡은 루이 비통의 트렁크가 멋스럽다. 그간 만들어온 제품을 멋지게 늘어놓으니 전시가 되고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브랜드의 힘이라니.


이 전시의 제목인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는 1965년 진행된 루이 비통 광고 캠페인의 카피에서 따온 것. 루이 비통의 그 유명한 모노그램 트렁크 뒤 벽에는 당시의 인쇄광고를 그려두었다. 오랜 역사뿐만 아니라, 그 역사에서 가져온 카피가 현재이고 또 현실이 될 수 있는 브랜드의 일관성이 참 멋지다.








클래식 트렁크와 함께





사용자의 특성에 맞게 제작된 - 의복뿐만 아니라 신발용, 모자용, 장서용, 심지어는 차와 찻잔용 등 종류도 다양한- 루이 비통의 맞춤형 트렁크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는 한 사람만을 위한 가방이 만들어지고 있으리라. (김연아 선수를 위해 제작된 피겨 스케이트용 루이 비통 트렁크의 우아한 자태란!) 그저 럭셔리 브랜드 정도로 생각해왔고 그 기성품조차 갖기 어려워 잊고 있었으나, 그 뿌리는 기성품이 아닌 오뜨 꾸뛰르였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비행하라, 여행하라, 항해하라





익숙한 패턴의 루이 비통 가방들을 구경하다 천장이 높은 전시실로 들어서면 고개를 치켜들게 되는 순간이 있다. 높이 치솟은 돛대와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진 갑판 위를 재현해놓은 이 전시실에 들어서서, 백화점 쇼룸이나 런웨이가 아니라 정말이지 '여행'을 위해 존재해왔던 루이 비통의 제품들을 감상해보자.





같은 전시실의 반대편에서는 사막을 탐험하는 탐험가들의 동반자로 함께 했던 루이 비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여러 크기의 가방이며 트렁크며, 심지어는 저 캠핑용 침대마저도 트렁크에 쏙 들어가는 루이 비통의 제품이라고 하니, 여행자를 위해 고안된 그들의 컬렉션이 참 대단하다.





공간을 옮겨, 우리는 가로수가 양쪽으로 시원하게 뻗은 도로로 들어섰다. 자동차를 타고 스쳐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며 목적지로 향하는 여정. 어쨌거나 이 곳에서도 전시물들을 보면서 상상해본다. 멋진 코트와 드레스를 차려입고 차에 올랐을 사람들의 모습을, 반짝이는 온갖 실버웨어가 가득 든 피크닉 트렁크를 신나는 마음으로 펼쳤을 사람들의 모습을.





항해와 사막 탐험, 자동차 여행에 이어 이번엔 하늘이고 비행이다. 쭉 뻗은 가로수길 전시장에서 살짝 옆으로 빠져나오면, 20세기 초반의 창공을 누볐을 것만 같은 거대한 복엽기가 벽을 뚫고 날아드는 모습을 마주한다. 아마도 이 곳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은 공간이 아닐랑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이번에는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칸에 들어서있다. 멋진 조명과 푹신한 소파, 그리고 벨벳과 실크 등의 소재로 마감된 내장의 고급스러운 열차를 타고 하는 여행을 꿈꿔본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 나올 오리엔트 특급열차가 이런 풍경이었을까. 기차역에 내리고 호텔로 들어서는 길은 피곤하지만 즐거운 여정이겠다. 열차칸 한쪽 벽에는 전 세계 여러 호텔의 심벌들이 장식되어 있다.




집필가, 예술가, 배우, 아니 모든 크리에이터를 위하여





각양각색의 여행과 그 여행 속 루이 비통을 간접 체험하고 다시 돌아가, 여러 종류의 색다른 트렁크들을 마주한다. 펼쳐놓은 여행용 가방은 그 자체로 장서가를 위한 서재가 되기도, 집필가의 작업공간이 되기도 한다. 이 전시실에서는 '부재의 시간'이라는 부제 아래, 집필이 필수이자 기쁨인 이들과 함께 한 루이 비통의 모습을 보여준다. 루이 비통의 손자인 가스통-루이 비통은 타이포그래피에 몰두하여, 모노그램을 새롭게 탄생시키고 그 용도를 확장시키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 모노그램 패턴의 탄생 비화.





이윽고 전시는 루이 비통의 최근 제품들과 여러 성취들, 콜라보레이션들을 다룬다. 말도 많았던 Supreme과의 협업을 비롯하여,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무라카미 다카시나 쿠사마 아요이와의 아트 콜라보, 그리고 여러 배우와 셀레브리티들의 소장품들까지. 할리우드 여러 배우들로부터, 우리에게도 친숙한 배우 배두나나 윤여정의 가방들까지 만나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되는 공간은 '예술적 영감의 나라, 한국'이라는 이름을 지니고 있다. 이른바 루이 비통이 한국에 바치는 헌정인 셈이다. 대금, 장구, 가야금 등 한국 전통 악기를 보관하는 가방과, 혼례함 용도로 주문 제작된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트렁크를 보며 신기해했다. 김연아 선수의 피겨 스케이팅 슈즈를 담은 흰색 트렁크는 또 어찌나 예뻤는지!


전시를 다 관람하고 나서는 길이 꽤나 즐거웠다. 그리고 여러 명품 브랜드들이 앞다투어 무료 전시를 여는 이유를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이라는 한 단어를 주제로, 루이 비통이라는 브랜드가 쌓아온 탄탄한 헤리티지를 체험할 수 있었던 알찬 전시. 여전히 마음놓고 지르기에는 부담스러운 럭셔리 브랜드이지만, 그럼에도 사람들로 하여금 탐내고 열망하게 만드는 브랜드 스토리의 힘을 한껏 느끼며 나왔다. 




나에게 여행이란? 당신에게 여행이란?







여행이라는 단 하나의 단어만으로 이런 저런 제품들의 역사를 묶을 수 있음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여행이라는 것에 대해 새로이 고민해볼 수도 있었던 전시였다. 앞서 열거한 온갖 용도의 -지금 기준으로는 여행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세간을 다 갖고 나서는 이사에 가까워 보이는- 맞춤형 트렁크를 바리바리 하인들에게 맡기고 아름답고 멋진 자태로 여행길에 오르는 귀족들의 여행이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여행과 또 달랐겠지. 생각해보면 여행이라는 것이 대중화된지도 얼마 안 되었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된 지가 채 삼십 년도 안 되니까. 그런 맥락 속에서 백 년도 더 된 옛사람들의 여행용 트렁크를 훔쳐보고 있자니, 여행이라는 컨셉에 대해 다시금 곱씹게 된다.


여행을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 웬만한 사람들보다는 훨씬 즐겁게 여행할 자신도 있다. 하지만 여행을 즐겨하지는 않는다. 대단한 여행을 경험한 적이 없는지라 감히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역시 나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다는 그 감각에 예민한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리하여 내게 여행지는 그 현실을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한 충전소이자, 또 발디딘 현실과 대어볼 수 있는 비교대상으로 기능한다. 내가 여행에서 느끼는 종류의 감흥이란 그런 것들이라서, 결국은 대단한 여행의 낭만을 꿈꾸는 대신 현실을 여행처럼 살고 싶은 편이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옮기다 보니,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궁금해진다. 뭐 이를테면, 당신에게 여행이란?




루이 비통 전시 'VOLEZ, VOGUEZ, VOYAGEZ -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
장소 :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기간 : 2017년 6월 8일 - 8월 27일
사전 예약 : https://lvseoulvvv.co.kr/m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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