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육헌 Jul 09. 2017

넷플릭스, 옥자, 그리고 영화관

영화 <옥자>를 보고 쓰다




영화관에서 <옥자>를 보다




1. 

상영 시작 전과 종료 후 보이는 넷플릭스의 로고는 이미 극장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넷플릭스 가입자의 노트북이며 모바일을 통해 이 영화를 감상할 수 있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이런저런 생각이 들더라. 뻔한 얘기지만, 배급이니 상영이니 하는 기존 산업에서의 역할 분담은 의미가 덜해질 거다. 이미 전 세계 1억 명이 넘는 사용자들이 넷플릭스를 통해 안방에서 또는 모바일을 통해 최신의 컨텐츠를 소비하고 있는 판이니까. 스마트폰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OS와 앱스토어로 헤게모니를 장악한 구글 애플의 역사가 컨텐츠 산업에서도 재현되고 있는 게 아닐랑가. '지금 그걸 보려면 거기 가야만 해서'라는 크고 중요한 이유가 사라진 판이다. 되묻는다. 우리는 도대체 왜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에 가야 하는가.







영화관만이 줄 수 있는 몰입의 경험




2. 

그러나 여전히 몇 가지 이유들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는 모바일로는 영상을 거의 시청하지 않는 편이다. 둘둘 말린 이어폰 줄 풀어 꽂는 것 귀찮고 작은 화면으로 동영상 보는 것이 답답하며 동영상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들(온갖 푸시와 알림 등)이 많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크지 않은 모니터에 크롬캐스트를 물려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종종 열어보는 편인데, 사실 이조차 잦지는 않다. 주의가 산만한 건지, 의지가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넷플릭스 유료 가입자라서 집에서 TV로 또는 모바일로 <옥자>를 볼 수 있음에도 내가 굳이 극장을 찾은 이유는 그래서였다. 널찍한 스크린, 어두운 상영관, 나란히 앉아 집중하는 다른 관객들이 도와주는 몰입의 경험.  


비록 이번의 <옥자>에는 해당사항이 없었으나, 일부 컨텐츠의 경우에는 이미 존재해왔던 IMAX니 4DX니 돌비 아트모스니 하는 기술 또한 차별화 포인트가 되겠다. 과거 극장 체인 간의 차별화를 위해 소구하던 이런저런 기술들이, 판이 바뀐 지금은 더 큰 틀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 상영관을 찾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주는 셈이다.











3. 

영화 <옥자>를 관람한 장소는 광화문 시네큐브였는데, 오래간만에 와서 그런지는 몰라도 참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다. 생수 외 식음료 반입 불가인 데다 예고편 외에는 광고 상영도 없으며, 상영 시작 10분이 지나면 칼같이 입장을 통제해준다. 더군다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쿠키영상이 다 끝날 때까지 상영관 조명을 밝히지 않는다. 상영이 시작된 지 한참 지난 중간에 스크린을 가리고 휴대폰 불빛을 밝히며 좌석을 찾는 민폐도, 신경을 긁고 집중을 방해하는 온갖 음식 먹는 소리며 냄새도 없었다.


조금은 빡빡할지도 모르는 규칙과 운영이지만, 끝까지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이러한 장치들이 '(넷플릭스로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장까지 와서 보길 잘 했네' 생각하게 해주더라. 그동안 극장이 갑의 지위에 있었던 게 사실이고, 수익성 증대라는 명목 하에 관객의 감상 경험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부분들이 여럿 있었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플랫폼들의 성장 - 특히 옥자의 극장 동시 상영을 그 시발점으로 하여, 관객의 감상 경험 극대화가 곧 극장의 수익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바뀌어나가길 기대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켓이라는 OS의 새 버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