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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육헌 Sep 16.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

책 <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를 읽고, 함께 이야기 나누고 쓰다



1. 독서모임 트레바리 국내이슈의 첫 책, <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작년의 경주 지진을 거치며, 뒤늦게서야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주목하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월성원전에서 불과 5-60km 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나고 스무 해를 자랐으니, 이건 참 늦된 관심이었다. 와중에 새로이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하고, 고리 1호기 폐로와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을 진행했다. 아니나 다를까. 탈원전 선언을 둘러싼 찬반 논란은 거세었다. 앞서 언급한 두 개의 큰 사고는 물론이고, 조금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밀양에서 있었던 송전탑 건설 분쟁 또한 신고리 원전으로부터 출발하는 송전선으로부터 기인한 사건이다. 더군다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근본적으로, 물이나 식량만큼은 아닐지언정 21세기 인간 생존과 직결된 전기와 관련한 이야기다. 트레바리 국내이슈의 첫 모임에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눌 이슈를 '탈원전'으로 정한 이유였다.


게르트 로젠크란츠의 책 <왜 원전을 폐기해야 하는가>는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쓰인 반핵운동가의 에세이다. 199 페이지의 짧은 내용이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선정하였으나, 저자의 모국인 독일의 사례를 위주로 서술하여서 그런지 쏙쏙 들어오는 맛은 덜하고, 번역 또한 다소 불친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에 대해 짧고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어 읽어볼 만한 책이다.




2. 데이터의 미로 속으로 빠지다


짧게는 신고리 5,6호기의 공사 중단, 좀 더 길게는 탈원전에 대해 나만의 찬성 또는 반대 의견을 정리하고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다듬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책 속의 내용에 더하여 이런저런 기사와 데이터들을 찾아볼수록 생각은 미궁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어떤 데이터를 보면 원전 가동을 하루빨리 멈춰야 할 것 같은데, 또 어떤 데이터는 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때로는 비교 불가능한 영역을 비교하게 되는 것 같아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를테면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사 한 노동자의 이야기를 원전 반대의 근거로 들려면, 같은 기간 화력 발전소에서 사고사 한 노동자의 수 정도는 언급을 해줘야 그게 문제인지 아닌지 알 수 있을게 아닌가. 어떤 이슈에 대해서건 각자의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다. 하지만 특히나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너무나 대립되는 숫자와 데이터들이 난무하고, 그 출처 또한 양 극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듯 보이니 쉽사리 가져다 인용하기가 난처하다. 이런저런 숫자와 도표나 이를 가져다 온 전문가도, 그저 받아쓰는 건지 혹은 의도가 있는 건지 모르겠는 언론도 하나같이 못 미더워지는 순간이었다. 




'인간 세상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가치중립적인 팩트란 없다'
- 문유석, <개인주의자 선언>



3. 그럼에도 불구하고 : 탈원전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 정리


개인적으로는 대안 없는 탈원전 기조에 반대하는 편이다. 결국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될 텐데, 전력 수요는 앞으로도 지속 증가할 테니까. 테슬라의 돌풍에 더하여, 우리가 익히 잘 아는 카메이커들이 순수 내연기관 자동차 시대의 종식을 선언하고,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전기차 비중을 높일 것을 발표하고 있다. 그러니 전기차의 시대는 생각보다 더 빠르게 올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이제는 커튼 블라인드마저 스마트폰으로 열었다 닫았다 하는 시대. 집안의 온갖 사물들은 인터넷으로 연결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들의 일을 대신해줄 로봇의 등장은 아직 고려하지도 않았음에도 그렇다. 탈원전에 동의하게 된다면 우리는 당분간 적어도 둘 중 하나는 선택해야 한다. 탈원전 기조를 내세우면서도 전력 공급량을 늘리던지, 전기에 지불해야 하는 가격을 올리던지.


그러나 탈원전 기조를 내세우고도 전력 공급량을 늘릴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데다 근 몇 년간 심각해져 온 미세먼지 이슈 또한 있으니, 화석연료를 사용한 화력발전으로 다시 회귀하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신재생 에너지로 급격하게 넘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평지보다 산이 높고 바람 잘 불고 비 잘 오는 우리나라의 자연환경에서는 더더욱. 결국 아직까지는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고 다른 대안을 선택할 때 추가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아직은 답이 없어 보인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발전 비중이 높은 원자로의 운영을 중단하고 탈원전을 선언하게 된다면, 이번엔 전기요금의 상승을 받아들여야 할 테다. 어떤 이들에게는 에어컨 틀어놓는 시간을 줄이고, 전자제품의 플러그를 뽑아놓는 정도의 귀찮은 품이 더 드는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또 어떤 이들에게는 전기요금의 상승이 곧 위험이고 재앙이 되기도 한다. 전기요금 미납으로 단전을 맞이해야 하는 가구가 늘어날 수 있다는 일이다. 전기조명 없이 촛불로 밤을 보내다 발생한 화재사고나, 뜨거운 여름 비좁은 단칸방에서 선풍기조차 못 돌리다가 더위에 목숨을 잃는 슬픈 사고들이 더 자주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군다나 전기요금의 상승은 결국 전기 수요의 절반을 넘어서는 산업용 전력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겠나. 이를테면 비용절감이라는 미명 하에 꺼지게 될 공장의 안전 보조 장치들, 소비자에게 전가될 물가 상승 등을 또한 우리는 모두 고려해보아야 하는 것이다.




2019년부터 내연엔진 자동차 생산을 중단하고, 대신 전기자동차(EV)와 하이브리드 전기차만 생산하겠다고 발표한 볼보




4. 토론하기 : 숫자에 앞서 가치관을 이야기해보기로 하다


원자력이나 에너지 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비전문가들의 독서토론 모임인 데다, 짧은 시간 진행되는 토론이었다. 숫자를 놓고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도 의미가 있겠지만, 앞서 쓴 제약조건들 때문에 숫자와 데이터들을 일일이 비교하며 싸우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야기해볼 수 있을 테다. 비록 정확한 수치로 검증하고 정답을 찾아내지는 못할지언정, 현실에서 당면한 문제를 조금 더 넓은 시선에서 바라보고, 내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에 기반한 나만의 가설을 세우는 데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책을 읽고 각자의 입장을 독후감으로 정리한 후 트레바리 국내이슈 독서모임 자리에 모였다. 주말의 반나절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가져온 생각의 빈틈을 이야기 나누며 서로 메꾸어 주기도 하고, 또 때론 반대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내 생각을 타인에게 설명하기도 하고, 새로운 생각을 담아갈 수도 있었다. 탈원전, 탈원전 반대 등의 입장을 정리해온 사람도 또 유보적인 입장을 가져온 사람도 계셨다. 원전 운영에 대한 찬반 의견이 갈렸던 것과는 별개로, 이 날의 모임에서 우리가 함께 고개를 끄덕였던 몇 가지 이야기도 있었다. 하물며 슈퍼마켓이나 마트에서 사는 식품에도 영양성분이 표시되어 있는데,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는 어떤 비중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또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를 유발하는지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들 정보에 대해 소비자인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친절하게 설명을 들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토론을 끝마치면서 이번 토론을 계기로 안 해본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고 말하신 분도 계셨고, 또 가져온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들과 그 논거들을 들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셨다. 그래, 우리가 언제 탈원전에 대해 이렇게 긴 시간 고민을 하고 자료를 찾고 또 토론을 해보겠나. 이래저래 괜스레 뿌듯해지는 순간들이 있었다. 책을 읽고, 이를 바탕으로 글을 쓰고, 또 다른 의견을 가져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부딪히고 깨지면서, 생각도 또 마음도 조금은 열리고 넓어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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