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행하는가? 일상을 탈출하기 위해? 새로운 문화를 경험하기 위해? 휴직 4년동안 제주도 한번 다녀온 게 다다. 왜 여행을 다니지 않았냐고? 간단하다. 외벌이에 남들과 비교하느라 외제차 산 돈을 다시 모으려면 여행은 나에게 크나큰 사치였다. 하지만 그것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1. 집에서 쉰다.
일상을 벗어나 집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 나에게 여행을 위한 준비와 여행 후 정리는 또 다른 일이다. 집이 나의 휴양지다. 나는 집에서 쉬는 것이 좋다. 집은 내가 에너지를 충전하고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원하는 모든 것이 가까이에 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장소다. 집은 가장 마음이 편한 여행지다.
2. 돈 돈 돈
결혼 전에는 여행을 좀 다녔다. 그때는 출발 전의 설렘, 여행지에서 자유와 낭만도 있었다. 하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달랐다. 다른 나라 항공권을 찾다가 이 돈으로 맘 편히 제주도나 갈까 싶었다. 3박 4일, 4박 5일 여행비가 한 달 월급에 맞먹는 것을 보면 해외여행은 아직 내 머리가 허락하지 않는 영역이었다. 또, 남편의 휴가는 늘 극성수기였다. 남편은 연차를 쓸 수 있었지만, 회사는 늘 연차를 쓸 수 없을 만큼의 업무량을 선물했고, 연차를 안 쓴다고 돈을 챙겨주지도 않았다.
3. 사람 사는 게 거기서 거기다.
많은 나라를 다녀본 것은 아니지만, 자세히 보면 사람 사는 게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탈리아는 생각보다 더러웠고, 소매치기당해서 갔던 영국의 경찰서는 매우 불친절(인종차별) 했다. 홍콩은 도시 전체가 계속 공사 중이어서 어수선했고, 호주는 좋았지만 공공요금이 너무나 비쌌다. 독일은 영어가 잘 통하지 않아 답답했고 안전하지 않다고 느꼈다. 룩셈부르크에서는 바에서 글을 쓰며 맥주를 마시다 술에 흠뻑 취한 외국인에게 원나잇 제안을 받은 충격적인 경험도 했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결론은 우리나라가 제일 살기좋다는 것.
그래도 해외여행을 갔다. 13년만에. 아이들과 여행을 간 이유는 마음 속으로 다짐한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이다.
1. 한글을 알아야 한다.
아이가 여행할 나라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찾고 책을 통해 읽어보기를 원했다. 그래야 기억에 오래 남는다. 2학년 아이들을 가르칠 때였다. 세계 여러 나라를 주제로 내가 가본 곳 소개하기를 했는데 손을 들어 발표하는 아이들 대부분 다녀온 나라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다. 몇몇 아이들은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유명 관광지 이름은커녕 나라이름도 기억하지 못했다. 어떤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나라 이름은 몰라요. 그냥 시장이 더러웠다는 생각밖에 안 나요."
"태국인가? 어딘지는 잘 몰라요. 거기서 수영했어요."
아이들이 여행할 나라에 대한 책을 읽고 여행지에 대해 기억하고 알고 가길 바랐다. 두 아이가 모두 한글을 떼고 다른 나라와 관련된 책을 읽을 때 여행 갈 나라와 관련된 책을 샀다. 그래서어디를 갈 것인지, 가서 무엇을 볼 것인지 아이들은 알고 갔다.
2. 지도를 보고 찾아갈 수 있나?
아이들은 놀이공원에 가면 지도를 갖고 다닌다. 지도를 통해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를 정한다. 아이가 보고 싶은 동물이나 가고 싶은 장소를 정하면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골라 찾아가고, 먹고 싶은 게 생기면 가까운 매점을 지도에서 보고 찾아간다. 여행지에서도 마찬가지다. 계획은 없었다. 책을 보고 동선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여행 일정을 짜는데 참여했다.
3. 이자와 배당으로 간다.
원금을 손대지 않고, 저축을 깨지 않고, 만기된 예적금을 가지고 가지 않는다. 오로지 이자와 배당으로만 간다. 작년, 이자와 배당이 여행비를 충당하고 남을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 내 마음이 허락했다. 이제는 다닐 수 있겠다. 그래서 다녀왔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돈을 지독히 모았다. 육아휴직 기간동안 절제하고 아끼며 살았다. 그렇게 모은 돈으로 현재 나는 아이들과 미래를 보는 여행을 계획한다. 아이들에게 미래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다. 나의 인내가 아이의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돈이 그렇게 쓰이면 아깝지 않을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고 내 삶의 우선순위는 돈에서 너희로 바뀌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