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롭게 휴직기간을 보내던 중 불쑥불쑥 우울이 찾아왔다. 육아에 관심이 없는 남편은 가끔 나를 지치게 했다. 연년생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겠다는 사람들의 말에도 남편은 시큰둥했다. 집에서 살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돈'을 벌지 않아서일까라는 생각도 했다.
몇 달에 한 번 친구들과 약속이 잡히면 나는 남편의 눈치를 살폈다. 남편은 혼자 아이를 봐야 할 때마다 기저귀도 못 뗀 둘째와 호기심이 넘쳐서 눈을 못 떼는 첫째를 데리고 차로 한 시간 반 더 걸리는 시댁이나 시누 집을 간다고 했고, 나는 극구 말렸다. 남편은 나에게 화를 냈지만 나는 남편의 운전습관을 알기에 혼자서는 보내주지 않았다.
모임을 가기 전 남편에게 아이들을 봐(CARE) 달라고 '부탁'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아이들을 보기만(SEE) 했다. 배가 고파서 우는 아이는 보챈다며 화를 내고, 기저귀가 젖어서 축 쳐져 있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화가 났지만 그래도 고맙고, 수고했다며 아이대신 남편을 달랬다.
주말에라도 함께 육아하고 싶은 나와 주말에는 편히 쉬고 싶은 남편은 계속 충돌했다. 하지만 서로 원하는 것은 같았다. '시간'.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나 가끔씩 말이 통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고, 남편은 퇴근 후 오롯이 혼자 쉬는 시간을 바랐다.
그래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는 것을 시작했다. 먼저 잠을 줄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중간에 깨서 다시 이불을 덮어주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의 필요성을 느낀 후 새벽 두 시에 일어나 아이들 이불을 덮어주고 네 시까지 혼자 놀았다. 좋아하는 프로그램 보며 키득키득 웃고, 궁금한 것은 카페나 블로그를 보고 배우거나 사람들의 댓글을 찾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았다. 잠을 줄여 만든 시간은 행복했다.
육아휴직 3년 차부터는 돈도 만들었다. 오롯이 혼자 육아하면서 오는 스트레스는 내가 돈을 벌지 않아서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돈 벌 방법을 궁리하다 친정엄마의 권유(마침 내 사정을 모르는 엄마가 주식을 권했다)로 주식을 시작했다. 몇천원씩 잃기도 했지만 가끔씩 하루에 2~3만 원도 벌었다. 남편에게는 주식하면서 애들 간식값은 번다고 당당히 말했다. 주식을 알기 위해 경제 관련 서적과 주식 관련 책도 꾸준히 읽었다.
말이 통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가졌다. 놀이터에서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서 어른과 말 못 했던 답답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가끔 밤에 마음이 통하는 동네 엄마와 만나 간단히 술을 먹고 차도 마셨다. 독박육아하는 전업 맘끼리 통하는 게 많았다.
일 하면서 아이 둘 키우는 지금 생각하면 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고, 아이만 보고 살 수 있는 시간도 행운이었다. 당시에는 육아하는 시간이 종종 힘들고 우울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만들고 새로운 일을 시도했던 경험이 낮아진 자존감을 세워주고 우울한 감정을 줄이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휴직 4년 차, 복직을 마음먹었을 때, 아이 둘 데리고 출퇴근을 하는 것은 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살던 곳은 아이가 어릴 때는 살기 편했지만, 아이를 키우는데 적합하지 않다는데 남편과 의견을 같이 했다. 그래서 아파트를 팔기로 했다.
집 보는 사람이 언제 올지 모르니 쓸고 닦기를 3개월, 손가락 관절염으로 물리치료를 받고, 자존심 같던 집값을 슬그머니 내리자 집은 팔렸다.
남편은 집을 판매한 안도감에, 나는 청소를 안 해도 되겠다는 편안함에 기뻐했다. 그날은 크리스마스이브여서, 우리는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즐거워했다. 19년 12월 26일. 구매자는 예정된 날짜보다 일찍 계약금을 보냈고 나는 계약금으로 몽땅 배당주를 샀다.
그리고 딱 세 달 뒤 우리는 하루 만에 두 번 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