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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남미녀모친 Jan 11. 2024

중고 유모차학 개론(1)

(슬기로운 육아 휴직)

  아이를 낳고 휴직을 했기 때문에 우리는 외벌이였다. 당시 나라에서는 출생 후 1년간 육아비로 월 100만 원을 줬는데, 그중 15%는 복직 후 6개월 뒤에 소급하여 준다고 인질로 잡고 있었기 때문에 실제로는 세금 떼고 월 80만 원 정도를 수령했다. 그래도 가뭄의 단비 같은 금액이라 소중했지만 외벌이에도 저축을 해 나가기 위해서는 절약을 해야 했다. 임부복과 출산가방에 이어 나의 중고사랑은 유모차에서도 십분 발휘되었다.

  이 글은 아이를 키우며 6년간 5대의 유모차를 사용하며 경험을 정리한 것이다.  유모차는 '아이들의 차'라고 불리며 가격도 10만 원대부터 몇백만 원대까지 다양하다. 본인 역시 유모차를 중고로 거래하거나 구입하면서 여러 모델을 탐색했기 때문에 유모차에 대한 지식을 많이 쌓았다.

  하지만 나의 유모차 역사는 첫째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한다.


* 유모차와의 조우

  피자가게 옆 산부인과의 산모교실을 다녔다. 매월 한번 산모교실을 하고 추첨을 하여 경품을 주는데, 강사로 나오신 대표원장님의 말솜씨가 일품이었다. 하지만 말솜씨보다 눈에 띄는 것은 원장님 옆에 쌓여있는 경품이었다. 신상 유축기, 젖병 살균기, 그리고 유모차. 나는 경품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기에 6~4등까지 호명되었을 때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당첨자들에게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그러다 내 휴대폰 번호의 뒷자리가 강의실에 울려 퍼졌다. 믿을 수 없는 나는 자리에 앉아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내 뒷번호랑 같은 사람이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번호가 한번 더 불린 다음에야 '진짜야?'생각하며 일어섰다. 사람들이 나에게 박수를 쳐 주었다. 경품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 1등 당첨이라는 행운이 찾아왔다. 1등, 빨간 유모차였다.

  나는 유모차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아이는 여름생이다. 신생아라서 업거나 안고 다닐 테니 그러다 보면 겨울이다. 겨울에는 추울 테니 거의 나가지 않겠지.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4월쯤에나 나들이할 수 있을 테니 내년 3월쯤 준비해야겠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E브랜드 trip 모델 - 경차

  E유모차는 영국 브랜드로 이름에서도 영국 냄새가 폴폴 풍긴다. 유러피한 감성의 실용성을 겸비한 상품으로 가격은 10만 원대 후반부터 있었으나, 나의 레드트립은 한정판으로 인터넷으로 판매가 되지 않는 상품이었다. 자체는 크지 않으나 세로로 폴딩 하는 제품으로 현관 앞에 세워두기 좋다. 또한 차양이 길어 해를 잘 커버해 주었고, 시트 아래 트렁크(장바구니)는 매우 유용했다. 프레임이 얇고 무게가 가벼워 들고 이동하기도 편했다. 휠은 작지만 바퀴는 내구성이 강하여 6년을 탔음에도 한 번도 갈지 않았다. 바닥 시트는 사용자의 편의에 맞게 다리 부분의 각도를 조절할 수 있고, 등 쪽 시트는 3단으로 각도를 조절하여 탑승자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선사한다. 이 제품은 기본 옵션으로 레인커버가 포함되어 있어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 때 사용가능하다.


  공짜 유모차로 아기를 태우고 동네 공원을 종종 다니다 불편한 점이 생겼다. 인도의 상태가 좋지 않아 흔들림이 심했다. 그리고 신체를 편안하게 받쳐줄 수 있는 쿠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작고 단단한 바퀴는 지면의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 핸들링이 부드럽고 승차감도 높고 서스펜션을 갖춘 유모차가 필요했다. 그러던 중 친구가 당시 유행하던 핫핑크 중형 세단을 구매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Q브랜드 2 - 중형 세단

  친구가 아주 유려한 곡선의 핫핑크 세단을 끌고 왔다. 나는 친구에게 부탁을 하고 시운전을 해 보았다. 무거운 본체가 주는 안정감이 압권이었다. 핸들링이 매우 부드러웠다. 시트의 쿠션은 폭신했고, 패브릭은 탄탄했다.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도 갖추고 있었다. 나는 바로 그 유모차에 반했다. 나는 샌드베이지 모델을 중고로 찾았다. 거래 장소는 집에서 좀 멀었지만 가격대가 적당했다. 풀옵션 제품에 추가 구성품도 있었다. 시트가 보풀이 있는 것을 빼면 상태가 매우 좋았다.



 둘째가 태어나자 첫째는 빨간 경차를 탔고, 둘째는 세단을 탔다. 세단은 운행하기는 편했으나 프레임이 무겁고 접었을 때 부피도 커서 차에 싣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엣지 있고 깔끔한 디자인의 차양막이 짧아서 해를 가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점이 눈에 밟혔다. 그래서 추가 구성품이 필요한 거였다. 어린이집 등원을 할 때는 둘째는 안고 첫째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녔다. 둘째가 8kg가 되자 안고 다니기 힘이 들었다.


  그래서 둘 다 태울 수 있는 대형 세단을 구매하기로 했다. 유모차를 번갈아 써서 상태는 좋았지만 가장비싼 안전바를 분실기 때문에 가격을 낮추었다. 그래서 나는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게슈탈트 이론에 정면으로 맞서는 유모차 중고학 이론을 검증해보기로 했다. 중고학 이론에서는 부분은 전체의 합보다 클 수도 있다고 했다(누가? 내가!).

  풀옵션 세단의 부품들을 하나씩 팔았다. 유모차에 우아함을 더하는 검은 양산 2만 5천 원, 스크래치가 났지만 새 제품은 너무 비싼 차양막 2만 원, 유용할 것 같지만 두 번 밖에 안쓴 방충망 2만 원, 비 올 때 유용한 전용 레인 커버 2만 원, 그리고 바닥에 끌려 구멍이 났지만 고가의 새 제품을 대체할 수 있는 합리적인 가격에 내놓은 장바구니는 1만 원에 팔렸다. 정품 홀로그램 스티커가 박혀있는 컵홀더도 거래했다. 마지막으로 옵션을 뺀 본체는 집 안에서만 쓸 유모차가 필요하다는 친구에게 주었다.

  이렇게 처음 중고로 구매한 세단은 구매가와 옵션 판매가의 차액이 7만 원이었다. 중고학 이론을 100% 검증하진 못했지만 그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 안전바가 있었다면 유모차 중고학 이론을 완성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러나 어느 순간 이 모델이 중고 시장에서 찾기 어려워졌다.


 유모차 중고학 이론 정리

1. 부분의 합은 전체보다 클 수 있다.

2. 트렌드에 민감하다(중고시장에서 찾지 않는 물건이 될 시간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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