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TI의 J성향이 뚜렷한 본인은 출산준비 체크리스트를 인터넷에서 보고 출산용품을 하나둘씩 준비했다. 굳이 사야 해야 하나 싶은 것도 있었지만 주위에 물어볼만한 사람이 없었다. 물어볼 사람이 없을 때는 맘카페가 최고다.
육아 선배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그 출산과 육아 정보의 산실. 첫 임신에 실패하고 난임 병원의 시술에 거듭 실패할 때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과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가입했던 곳이다. 이제는 출산을 기다리는 예비맘의 자격으로 중고 육아필수템을 찾아 나섰다.
꼭 필요한 몇 가지는 5년 전에 아이를 낳은 큰 형님의 물건을 물려받았다. 아이 손싸개, 턱받이, 내복 등은 양가 부모님과 동료들에게 출산 선물로 받을 예정이었다. 아이 물품을 둘러보던 중에 어느 유아복 매장에서 출산준비 목록이라는 것을 받았다. 목록은 꽤 많았다. 그래서 아이 키우는데 돈이 많이 드는구나 싶었다. 가진 것을 하나씩 체크하고 보니 없는 것이 많았다. 꼭 필요하나 싶으면서도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물건들이었다. 고민을 거듭하다 목록표를 버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필요한 것은 중고로 구하기로 했다.
하지만 배냇저고리와 외출복은 하나 좋은 것으로 사줘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유아용품 매장을 둘러봤다.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아기 이불을 사고 계셨다. 살까? 아니다. 왜냐하면 내 기준에 턱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현재 중고 겉싸개가 3개 정도 있고, 출산을 하면 나도 하나 받겠지. 드림으로 받은 겉싸개는 까는 용도로 쓰고, 내가 받은 건 덮을때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
아기 옷을 사고 계산을 하려는데 직원이 묻는다.
" 신생아용 베개는 샀어요?"
" 아니요. 그게 필요한가요?"
" 혹시 아기가 태열이 있으면 피부에 뾰루지가 날 수 있어요. 그래서 신생아용 좁쌀베개가 필요해요. (제품을 꺼내며)이건 베개 모양을 조절해 줄 수 있기 때문에 두상도 예쁘게 만들 수 있어요."
" 좀 비싸네요."
" 인터넷에 파는 저가의 베개는 천이 거칠거나 베갯속의 질이 나쁠 수 있기 때문에 아기에게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이건 숯이 들어서 땀냄새도 배지 않고 통풍도 잘돼요."
" 아, 그렇구나..."
베개는 물려받은 게 없는데 피부에 직접 닿는 것이면 새로 사야 할 것 같았다. 신생아 내의를 사러 갔다가 좁쌀베개도 샀다. 물건은 중고로 사도 처음 입는 것, 쓰는 것 모두 백화점에서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이러려고 돈을 모았으니까.
손바닥에 신발 한 켤레를 놓았다. 정말 귀엽고 예쁘고 깜찍했다. 하지만 신생아는 걷지 못하는데 굳이 사야 하나 싶어서 결국 사지 않았다. 고맙게도 신생아용 신발은 선물로 받았다.
아기 용품을 구입하면서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소중한 아기에게 이 정도도 못해줘?', '너희 아기는 좀 특별하지 않아?', '이거 안쓰면 아기가 고생할 수 있다.', 이런 느낌은 미용실에 가서 머리에 영양을 하지 않겠다고 했을때 받은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매장을 방문하기가 껄끄러워졌다.
젖병은 신생아부터 가장 오래 사용할 수 있는 용량으로 인터넷으로 주문했다. 아기가 모기에 물릴 수 있으니 신생아 모기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드림이 올라왔길래 잽싸게 약속을 잡았다. 물론 물건을 받으러 가기 전에 감사의 표시로 전달할 시원한 커피도 하나 샀다. 만삭의 몸으로 처음 가는 동네로 운전하여 갔다. 10분을 기다려 신생아용 모기장을 받았다.
이렇게 필요할 것 같은 육아용품을 하나둘씩 준비했다. 지역 카페 맘들과의 중고거래는 꽤 성공적이었다. 물건을 사러 가면 찾아보니 이런 게 있었다면서 책과 장난감을 더 주기도 했다. 운이 좋으면 쓰지 못한 새 육아용품도 받을 수 있었다. 그때마다 쿠키며 커피며 빵이며 나도 답례품을 준비해서 전달했다. 다들 손사래를 쳤지만 내가 받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중고거래와 드림으로 출산준비 목록을 채워 나갔다.
아이를 낳기 전, 나는 출산 가방을 싸두었지만 병원에서 필요했던 것은 개인용 유축기뿐이었다. 모든 것이 병원에 다 있었다.
산후조리차 간 친정. 아기에게 직수가 어려웠다. 내가 미리 준비한 A젖병의 젖꼭지가 아이에게 맞지 않았다. 그래서 젖꼭지만 신생아용으로 주문을 했는데, 새로 산 젖꼭지는 기존에 사두었던 젖병과 호환이 되지 않았다. 결국 병원에서 쓰던 G젖병을 주문했다. 또 K모유보관팩은 필요하지 않았다. 모유량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보관할 필요가 없었다. 비싼 좁쌀 베개는 누울 자리를 옮길 때마다 모양을 잡아줘야 해서 번거로웠다. 선물 받은 E아기띠는 안을 때 다리가 너무 벌어져서 결국 물려받은 포대기와 아기띠를 썼다. D카시트는 신생아부터 5세까지 쓸 수 있는 것으로 새로 샀지만 둘째 돌 때까지만 쓰고 결국 새것으로 다시 샀다. 아기 모기장? 두 번 쓰고 안 썼다. 모기장 때문에 에어컨 바람이 잘 들어오지 않는 데다 아이가 바로 보이지 않으니 생각보다 번거로웠다.
육아필수템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었고, 중고로 사거나 물려받은 몇 가지는 꼭 필요한 것이었지만 효율적이지 못했다. 출산준비 목록은 미리살 필요도 다 준비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나는 경제적인 면만 본다면 절반의 성공만 거두었다. 출산 용품을 준비하는데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각했다.
임신과 출산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지금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미리 사지 말라고. 아이의 기호도 다르고 내 상황도 다르고 아이의 상태도 천차만별이라 일반화할 필요 없다고.'
오늘 저녁에 배송 신청하면 내일 새벽에 물건 받는 세상이다. 그리고 비싼 것보다 아이에게 맞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남에게 좋았다고 내 아이에게 꼭 맞는 건 아니다. 그리고 후기처럼 올라오는 광고가 많으니 맹신은 금물이다. 갖고 싶은 것과 필요한 것은 다르니 머릿속으로 구분하자.
그래도 나에게 두고두고 유용했던 아이템을 소개한다.
1. 유아용 손톱깎이(10년째 쓰고 있다)
2. 병원에서 받은 겉싸개(슈퍼 울트라 만능템으로 처음에는 이불로, 차 뒷좌석 담요로, 그다음 웨건 바닥에 까는 매트로, 작년까지 아이 샤워하고 옷 갈아입힐 때 바닥에 까는 용도로 썼다-지금은 소장 중)
3. 인터넷에서 당시 만원 주고 산 아일렛 롱암막커튼, 아직도 쓰고 있다.
4. 접이식 유모차( 신생아 때부터 6년간 썼다. 잘 접히고 여행 가서 아이가 피곤해할 때 유용했다)
최근 아이한명을 키우는데 4억이 든다는 기사를 보았다. 내가 아이를 낳을 때만 해도 대학교육까지 2억이 든다고 했다. 그때도 돈이 많이 드는구나 싶어 나는 아이가 '초등5학년이 될 때까지 교육비 2억씩 모으자.'하고 결심했었다. 하지만 벌써 4억이라니... 육아와 교육비가 10년 만에 2배가 늘었다.
하지만 두 아이 교육비로 일 년에 전체 지출의 5% 정도를 사용(2023년 기준)하는 나로서는 이런 결과에 동의하기 힘들다.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그만큼 돈이 들지 않는다. 육아와 교육은 부모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신문기사에서 말하는 평균이라는 말도 다른 집의 모습이나 생활 방식도 참고만 한다. 육아는 집마다 다르고 아이도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고 했다. 나는 마을 대신 맘카페를 선택했다. 사람과 친해지기 힘들고, 동네 아는 사람도 전혀 없는 나에게 맘카페는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방향을 제시해 주고, 우울할 때 맞장구도 쳐 주는 친구였다. 마을과 내가 조화를 이루고 산다면 아이를 길러내는 일이 아이를 키우는 행복과 보람을 포기할 만큼 어렵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 주변의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다. 우리 어머니가 그랬고, 내 할머니가 그랬듯이... 내가 중고를 좋아하는 이유도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